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4
당신에게 이야기했다.
자꾸 나에게 연락이 오는데 오지 않게 해달라고.
아무 말 없이 이혼해 주는데 나한테 연락할 일이 도대체 뭐가 있냐고.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모르는 사람이라고 우겼다.
사진도 보내주고 네 여자친구이지 않냐고 하니
끝까지 아니라고만 했다.
차라리 그냥 인정을 했으면 했다.
차라리 나에게
내가 미안하다. 잠깐 내가 외로워서 실수한 것 같다. 잘못했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
이렇게 말해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비참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당신에게 주었던 그동안의 내 모든 사랑이 부정당하는 느낌.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눈앞의 위기만 잠깐 모면하려는 당신의 말과 행동에 나는 더 실망했고 도대체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이렇게나 나를 기만할 수 있는 것인지.
그 모든 게 너무나 비참했다.
너무나 사랑해서 나에게 언제나 우선순위였던 사람이 이것밖에 안 되는 치졸하고 파렴치한 인간이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당신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던 그간의 나의 노력들과
밑 빠진 독인 줄도 모르고 퍼붓기만 했던 내 사랑들이.
너무 너무나 안타깝고
이렇게나 너덜너덜해진 내가 불쌍했다.
그때의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 백번 감정이 요동쳤다.
화가 나서 죽을 것 같다가도
슬퍼서 죽을 것 같았다.
미워서 죽을 것만 같다가도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것에 죽을 것 같았다.
많은 감정의 끝에 결국 몰려오는 건
자책이었다.
내가 왜 저런 사람을 만나 이렇게 불행한 걸까.
결혼에 대해 너무나 가볍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 잘못인가.
친구들은 이제 막 결혼을 준비하며 행복해하는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너무나 쉽게 믿어버리는 내 잘못인가.
나는 왜 결혼 전 당신의 실수와 반복된 잘못을 보고, 느끼고도 파혼을 하지 않았나.
나는 왜 바보 멍청이처럼 상처 입은 나 자신은 돌봐주지 못했을까.
나는 왜 당신과의 말도 안 되는 결혼생활을 순종하며 버틴 걸까.
왜. 어째서.
나는 왜 그렇게 살았던 걸까.
도대체 내 어디가 문제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