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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3

by 도또리

아이를 어린이집 보낼 준비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던 아침.

집을 나서는데 처음 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평소의 나는 모르는 전화가 오면 잘 받지 않는다.

부재중이 들어와 있어도 전화를 하지 않고.

그런데 이상하게 왠지 상간녀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합의이혼서를 제출하고 나서부터 조금 이상해졌다.

자기 휴대폰을 던져서 부수고, 또 우울해했다.

우울해한다는 건 그냥 나에게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상간녀와의 사이가 틀어졌나?

아니면 나랑 막상 이혼을 하게 되니 후회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혼자 하고 있었던 터였다.


상간녀일 것 같은 번호를 저장했다.

저장하고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상간녀가 궁금해서 메신저에 추가를 했다.


노출이 아주 많은 수영복 입은 사진을 해놓은,

20대 초반의 어린애 같은 여자애였다.

그리고 온몸에 명품을 휘두른 사진들.

내가 봐도 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화려한 사람.

그때 알았다.

이 둘은 얼마 못 가겠구나.

잠깐의 설렘이겠구나 하고.

겉치레가 요란한 사람치고 실속 있는 사람을 아직까지 나는 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문득 기억 속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남편과 지인의 결혼식장을 다녀온 그날,

나에게 싸구려 옷을 입었다며 타박하던 당신의 말을 듣고 어이없었지만 그 말이 또 철없는 어린아이가 하는 것만 같아 웃고 있던 내 모습.

그래서 나에게 그랬었구나 당신.


나는 항상 남편이 귀여웠다.

철없고 상처 많은 아이 같은 남편의 모습에 감싸주고 싶고 내가 보듬어 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었다.

많이 많이 사랑해주고 싶었다.

사랑을 많이 담아주면 이 사람도 조금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나를 만나고 남편이 많이 따뜻해지고 사람이 좋아졌다는 말을 계속 들었었다.

그게 또 그렇게 좋았다.


아이 같은 면이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사실 그런 면들 때문에 상처를 더 많이, 자주 받았다.


그런데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참 비슷한 사람끼리 만났구나 싶었다.


상간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전화한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그날 하루 종일 연락을 기다렸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또 똑같이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바로 했는데 또 받지 않았다.

혹시 나에게 미안해서 연락을 한 건가?

미안하다고 하고 싶은데 그게 어려우니 이렇게 하는 건가 싶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 보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번째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나서 나는 화가 났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문자를 남겼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연락하는 게 아니라면

더 이상 전화하지 마세요.


답장은 없었다.


나는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살이 6킬로그램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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