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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1

by 도또리

그날 밤은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아무 사이 아니라고 말도 안 되는 궤변만 늘어놓는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바람피워줘서 고맙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 안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딱 세 마디 했다.


이혼해.

이혼하고 혼자 아이 키우며 잘 사는 사람 많아.

너도 할 수 있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어젯밤 남편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 끝내 꾹 꾹 참아온 눈물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엉엉 울고 나서 다시 남편에게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법원을 갈 수 없

난 지금 아이 데리고 친정으로 갈 테니까 너는 알아서 내일 아침까지 법원으로 와.


남편에게 통보를 하고 운전해서 아이와 함께 가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짜 이혼할 거냐는 남편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꾸 말도 안 되는 변명만 하지 말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나한테 사과하라고 했다.

사과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묻기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고.

사과를 하던, 하지 않던 우리는 이혼하는 거라고 했더니 그럼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남편.


그리고는 나에게 흠집을 내고 싶은지

이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소한 것들로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제발 좀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앞이 안보였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 현실감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워야 했다.

이제는 정말 이혼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막상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내가 너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항상 나를 힘들게 해왔어도 나는 너를 일정하게, 같은 온도로 꾸준하게 사랑해 왔다는 것을.

이 상황에서 더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이혼이 무섭고 두려웠던 것도 있었지만

나는 아직 남편에게 사랑이 남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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