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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5

by 도또리

나는 마음 놓고 펑펑 울 곳이 없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친정에는 아빠, 엄마, 남동생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5살 아이가 있었다.

나는 비록 이혼숙려기간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가족들 앞에서 울거나, 힘든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나만큼이나 다들 마음이 힘들고 아팠을 테니까.


나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있는 눈에 보이는 아무 벤치에나 가서 앉아 울었다.

집에 가서 얼른 육아를 해야 했기에 바깥에 오래 있을 여유가 없었다.

얼른 울고, 얼른 눈물 닦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아이를 보며 웃었다.


이혼숙려기간 중에도 나는 남편 얼굴, 목소리를 보고 들어야 했다.

아이와의 영상통화 때문에.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데 어쩔 수 없었다.

아빠를 찾는 아이가 있으니.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너희 족은 참 화목하다는 말을 제법 들었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우리 아빠는 회사에서 회식을 하는 날이면 항상 집에 제일 먼저 오고

회식한 곳에서 포장을 잔뜩 해오셨다.

대게 집에서 회식을 하시고 대게를 여러 마리 포장해 오신 날, 나와 동생은 아빠가 발라주시는 게살을 신나게 먹어치웠다.

그 이후, 아빠는 틈만 나면 대게를 사 오셨다.

처음엔 신나서 좋아하던 우리가

점점 대게 냄새조차도 맡기 싫어질 정도 될 때까지 사 오셨다.


나와 남동생은 그때 대게를 너무 자주, 많이 먹은 탓에 이제 대게를 먹지 않는다. 냄새도 맡기 싫어한다.

하지만 대게를 보면 언제나 우리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의 사랑이 생각난다.


아빠는 바깥에서 일어난 일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으셨다. 집에서는 언제나 든든하고 긍정적이고 농담을 좋아하고 웃음이 많은, 그리고 직장과 집만 오가는 정말 가정적인 분이셨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 같았다. 어릴 때부터 조용한 방안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책을 읽고 계셨다. 말과 행동도 소녀같이 여린 우리 엄마를, 아빠와 나, 남동생은 챙겨주는 게 익숙했다.


말 수가 없지만 자기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고 관심 있는 분야에는 말 수가 많아지는 남동생은 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어주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동생이지만 오빠 같은 듬직함이 있었다.


우리 가족도 물론 트러블은 있었다.

부딪히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나 많아서 그런 것쯤은 아무도 아니었다.


그렇게 화목하다면 나름 화목한 집에서 지낸 나에겐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어른이 되기 전의 기로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 늘 그렇듯 우리는 걱정과 고민도 많았다.


친구들의 가정사를 들으며 나는 항상 마음이 아팠다.

아빠랑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아서 헤어졌는데

어째서 어른들은 같이 살지 않는, 양육권을 가지지 않은 아빠 엄마와 자식이 연락도 하지 못하게 하고 만나지도 못하게 막는 걸까.

아빠와 엄마는 사이가 안 좋다지만

자식은 다른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상황에 놓여 있던 내 친구들은 항상 그리워했다.

같이 살지 못하는 아빠나 엄마를.


나는 그래서 남편과 합의이혼서를 작성할 때

남편에게 강조했다.


우리가 이혼을 하더라도 네가 ㅇㅇ이의 아빠인 건 변함이 없는 사실이라고.

너는 세상에 하나뿐인 ㅇㅇ이 아빠라고.

너랑 나는 비록 헤어져서 남남이 되겠지만

ㅇㅇ이는 언제나 너의 가족이라고.

그러니 ㅇㅇ이를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는 아이로 자라게 하지 말아 달라고.

지금 네가 제주도에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겠지만 대신 영상통화라도 매일 하라고.

ㅇㅇ이는 우리가 같이 지낼 때도 언제나 아빠를 그리워했다고.

같이 있을 때 잘못해 준 것들 이제는 정신 차려서 잘해주라고.

대신 네가 우리 ㅇㅇ이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나는 너랑 모든 연락을 다 끊을 거고

네가 죽을 때까지 ㅇㅇ이를 볼 수 없을 거라고.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뜯어말렸다.

네가 그동안 어떻게 살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혼하고서도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려고 하냐고.

애한테 그런 아빠 없어도 되니까 연 끊고 살라고.

이혼까지 하는 마당에 왜 그놈을 편하게 해 주느냐고.


어느 누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도 난 굽히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아이 아빠를 마주해서 다투기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힘이 들 때가 다.

내가 왜 힘들게 이혼하고서도 아무 짝에 쓸모없는 감정소모를 해가며 다퉈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내가 한 발짝 물러섬으로써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 같은 나의 아이가

이혼한 아빠와 엄마의 사이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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