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18

by 도또리

아빠가 암에 걸렸다.

아니 암에 걸려있었다.


아파도 병원에 가는 법이 없던 아빠가 골반쪽이 많이 아프다며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골반뼈에 육종암이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많은 검사를 했다.


검사 끝에 갑상선 암으로 인해 골반뼈에 전이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게 된 건 아빠 엄마가 병원을 다니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아마도 나를 위한 배려였겠지 싶.

한 차례 합의이혼이 엎어지고 난 뒤였기에.


엄마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눈물이 쏟아졌다.

내 잘못 같았다.

내가 행복하게 못 살아서 이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았다.

내 불행을 우리 가족에게 전염시킨 내 탓 같았다.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 더

사위를 믿어주고

한 번이라도 더 보듬어 주려했던

우리 아빠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었을 우리 아빠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다며 엉엉 울었다.

다 내 잘못이라고.

아빠는 울 일 아니라고 했다.

아빠는 덤덤했다.

무서울 텐데도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다.

아플 텐데도 아픈 내색조차 한번 하지 않으셨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예전에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어 장애판정을 받은 아빠는 지자체에서 하는 공중화장실 청소 일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일을 그만두실 생각이 없었다.

수술하고 나서도 일을 할 생각이었다.


그때 나는 아빠가 앞으로는 일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하고 난 뒤 상황을 설명하고 직장에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감사하게도 조언과 위로를 해주셨다.

그리고 계속 붙잡아주셨다.

당장 돈을 더 벌려고 해서 무슨 일을 할 거냐며.


그래도 끝까지 그만두겠다고 하는 나에게

합의이혼이 끝난 날

이혼파티를 해주려고 했

이혼파티는 같이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미리 축하한다며 좋은 일만 생길 거라며 퇴사하는 날 케이크를 사다 주셨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고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또 울고 말았다.

나는 힘든 와중에도 좋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났던 것 같다.

하늘은 죽지 않을 만큼만 고통을 준다더니.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면 언제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위로를 받고 응원을 받았던 것 같다.


마침 내가 그만둔 시기에 아빠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다.

공중화장실 청소 일을 계속하려고 하는 아빠에게

마침 일을 그만두었으니 내가 대신하겠다고 했다.


아빠는 관련된 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와중에 전화로 하나하나 다 알려주셨다.

하루에 5~6곳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해야 했고

그중 한 곳은 산 중턱쯤 있었다.

산 중턱에 있는 곳은 가는 길도 무서웠고

화장실도 무서웠다.

다 부서져 가는 나무로 된 화장실.

그렇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싫을 것도, 힘들 것도 하나 없었다.


일주일 내내, 주말에도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아이를 봐줄 사람 없는 주말에는 아이를 조수석에 태우고 청소를 하러 다녔다.

아이는 놀러 다니는 줄 알고 마냥 신나 했고 좋아했다.


처음 청소를 하러 간 날

첫 번째 화장실을 들어서자마자 울컥했다.

정말 정말 더러웠다.

온갖 쓰레기가 쓰레기통에서 흘러넘쳐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댄 많은 사람들 인해 바닥은 짓이겨진 담배와 담뱃재로 곳곳이 누렇고 까만색이었다.

변기가 더러운 건 당연한 거였고.

이런 곳을 하루 내내 다니며 청소를 했을 아빠 모습이 그려져서 울컥했다.

어쩌면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일 텐데도 이 일을 놓치기 싫어 아픈 와중에도 계속 아쉬워한 아빠가 생각이나 속상했다.


아빠대신 하는 거니까 나는 더 열심히 했다.

원래 깔끔한 걸 좋아하는 것도 한 몫했다.

아빠는 내가 너무 고생할까 봐 걱정이었는지

너무 힘들게 청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청소에 진심이었다.

공중화장실 전체가 반짝반짝해지면 그때서야 또 다른 화장실로 이동했다.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면서 아빠를 더욱 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하 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우리 아빠.

집에 와서도 화장실 청소를 묵묵히 했왔던 우리 아빠.

나는 우리 아빠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아빠는 다시 일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져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나는 또 다른 직장을 구했다.


그렇게 제주지방법원으로 가야 할 날이 다가왔다.
















keyword
이전 18화거짓말 거짓말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