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떠오르는 단상들

계절

by 도또리

사람도 각자 자기만의 인생의 계절이 있고 그 시기가 다 다르다는 걸 여러 책에서 들어본 것도 같다.


지금은 내 인생의 어느 계절쯤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저 하루하루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재미있고 즐거웠던 나의 학창시절,대학시절은

즐거웠던 만큼이나 사랑받았던 기억도 가득 남은 뜨거웠던 여름.



스물 여섯,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2주 전 갑작스럽게 얼렁뚱땅 진행하게 된 결혼과 죽음까지 생각했던 결혼생활 그리고 나의 이혼과 동시에 아빠의 암 진단,1년 조금 넘는 시간 재활이 필요한 교통사고를 당한 남동생까지.

스물 여섯부터 서른 세살까지의 나는 땅마저 꽁꽁 얼어붙어 새싹 한번 싹 틔우기 힘든 겨울이었던 것 같다.



힘든 일이 하나 생기고 조금 적응하려면 다시 또 다른 힘든 일이 생기고 그게 계속 반복되서 나중엔 그런 생각까지 했었더랬다.

누군가 내가 어디까지 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건가...하고.


그래도 나는 잘 버텼다.

힘들수록 더 웃었고, 울고 싶을땐 가끔 울기도 하며 가득 찬 속을 비워냈고, 나만의 탈출구를 찾아가며 열심히 버텼다.

엄마밖에 모르는 아이가 있는데 체력적으로는 무너질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무너질 수 없었다.




이제 서른 넷.

육아 번아웃이 왔다.

그토록 사랑스럽던 아이가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반복되는 행동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육아하는 내내 화를 내지 않는 나를 보며 대신 훈육해주고 싶다면서 친구들이 답답해 하곤 했었는데

그런데 내가 언제쯤부터인지도 모르게 지치기 시작했다. 지치고 지겹고 벗어나고 싶어졌다.


내가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는 느꼈지만

어느 날 아이가

"엄마가 요즘 짜증을 너무 많이 내" 하는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병원을 가보게 되었다.

우울증검사를 여러 차례했지만 우울증은 아니라고 하고 그냥 이혼하고 아이와 둘이 지내며 혼자 양육과 직장생활, 집안일을 하다 보니 힘들거라고 가족이 양육을 조금이라도 도와 줄 수 있으면 도움을 요청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만 듣고 집으로 왔다.


그렇게 또 두 달을 보내고 여전히 아이에게 같은 감정이 들어 죄책감에 시달리다 우연히 인터넷에 육아 번아웃을 검색해보니 증상이 많이 비슷해보였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방문해

"저때문에 아이도 힘든 것 같아요. 육아 번아웃증상을 찾아보니 비슷해보여요."

하고 다시 검사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검사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의 판단과 상의 하에 소량의 약을 처방받는 걸로 하고 몇 달째 약을 먹고 있다.


내가 몇 년간 이 악물고 버텨왔던 게 이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근육통처럼 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모든게 조금씩 정리가 되고 숨통이 트이니 내가 너무 지쳐버렸나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인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나 밖에 없다는 아이에게

짜증이 많은 엄마, 화를 많이 내는 엄마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나는 오늘럼 내일도 마찬가지로 노력할거다.


아직 이 시기가 지나지 않아 정확하지 않겠지만

내 인생 중 가을의 시작점이지 않을까.


내 계절들은 뒤죽박죽이라 겨울의 힘든 것들을 이제야 추수하듯 걷어내고 난 뒤

지금은 깐 쉬어가면 되는 시기이지 않으려나.

나를 너무 채찍질하지 않고,

나를 조금 더 이해해주고 안아주고 돌봐주려고 한다.

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잘 도닥여서


이제 나에게 남은 다가올 봄을,

다른 계절들보다 더욱 더 오래오래 지속될 봄을,

화창한 날 만개한 꽃들이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드넓은 들판에 가득할 수 있도록.



씨앗을 잘 심고서

봄이 오기 전까지 이 가을을 한껏 사랑해봐야지.









지금 겨울을 보내는 중이시거나

아직 지나지 않은 분들에게는 겨울이 조금이나마 따뜻하고 짧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