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뜨거워진 바다를 만지며
갑자기 부는 찬 바람에 아직 아기 겨울 옷 마련을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 때마침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접종이 무료이고, 기간 내에 꼭 맞으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바다와 첫겨울을 맞이할 때가 왔음이 실감 났다.
“아기 첫 독감 주사는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맞아요. 처음만 그렇고. 중요한 건 이 주사는 열이 날 수 있어요. 열이 심하게 나면 병원 바로 오시고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예방접종하며 열이 나거나 크게 아팠던 적이 없어서 별 걱정 안 했다. 씩씩하게 주사 맞고, 밥도 잘 먹고, 곤히 잠든 평화로웠던 밤. 바다의 몸은 조용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으엥! 으에엥. 으엥!! 으에엥. 으에엥-“
잠자면서 울지 않는 바다가 괴로운 듯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심상치 않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이 번쩍 깼다.
서둘러 바다를 안아 달래려는데 안기도 전에 누운 자리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바다가 뜨겁다. ‘아! 열나는구나!’ 불덩이가 된 아기를 안고 체온을 재보니 38.7도. 체온계에서 삐-하고 경고음이 났다.
방문을 열어 실내 온도를 낮추고, 잠옷과 기저귀를 벗겼다. 남편이 적셔 온 물수건으로 천천히 몸 구석구석을 닦았다. 열이 잘 내리고, 더 튼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바다는 엄마 손길이 닿는 동안 울음을 그치고 눈을 댕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 눈으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차분하게 입을 움직여 쪽쪽이를 물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시네요. 바다 씨~" 혹시 무섭지는 않을까 싶어 농담을 하며 바다를 돌봤다.
0.5도. 1도. 1.2도. 체온이 조금씩 정상 범위에 가까워지고 그만큼씩 마음도 놓였다. 50분쯤 흘렀을까. 물을 몇 모금 먹이고, 시원한 민소매로 갈아입혔다.
졸려서 눈을 비비는 아가의 엉덩이를 규칙적으로 토닥이며 다시 잠을 재웠다. 여전히 미열이 남아 방심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금세 곤히 잠들어주어서 고마웠다. ‘다시 민소매를 입히게 될 줄이야. 금방 열이 내려 다행이다.’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키니 나도 모르는 새 눈이 감겼다.
얕은 잠이었을까. 아직 어떤 말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린 존재로부터 엄마라고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잠깐 뭉클했다. “엄마가 도와주니 나을 것 같아요. 엄마 손은 약손인가요." 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자주 말했었다. 엄마 손이 약손이라고. 머릿속에 불현듯 엄마와 나의 어릴 적 모습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내 손도 약손이구나. 나 엄마 맞구나.
사실 약손은 손의 온기와 부드러운 마사지가 복통이나 아픈 부위를 낫게 해주는 원리라 누구나 그런 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엄마 손이 약손이라 불리는 이유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도 아가를 끊임없이 돌볼 수 있는 고유의 사랑이 더해져서가 아닐까.
내게도 그런 사랑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 밤이었다. 이 사랑이 더욱 커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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