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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욜란다 May 30. 2022

02 언제나 시작은 있었다

브런치 작가 지원 첫 번째 탈락 이야기

언제나 시작은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언제나 금쪽같은 시작이 있다. 시작이 그냥 시작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기막힌 인연과 작은 우연이 만나 시작 다음의 이야기를 지어 낸다. 나에게도 그런 시작점이 있었다. 그런데 일이  풀리지 않게  때는 시작점이 원망점으로 바뀌게 된다. 나는 편의상 이것을 원점이라고 부른다. 살면서 종종 내가 지금  원점에 되돌아와 있다는 느낌이  때가 많이 있다. 아니, 차라리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길을 몰라 마음에게  묻기도 한다.   


나의 원점은 20대의 막바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막막했던 어느 청춘의 시기에 새로운 꿈을 좇아 물 건너온 2004년 위에 있었다. 새로운 꿈이 사실은 또다시 갈아탈 준비를 하는 나의 다음 직업일 뿐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았어도 모른 척했다. 다음 직업의 길이 막히니 방황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누구이며 지금 여기는 어디인지 어디로 또 무엇을 향하여 가야 하는지 꽤 오랜 시간 질문조차 하지 않고 달리는 시기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분명 뛰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가쁘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차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나의 원점이 어디였더라 하며 되돌아가 묻고 싶어 졌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내가 지금 여기 와 있는데 어떻게 다시 원점으로라도 돌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되 물었다. 마음이 몸처럼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되풀이 말을 하게 된다. 역시 사람이라고. 나의 20대 마지막이 고이 접어질 무렵 미국에 와서 처음 만난 소중한 인연, 그리고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귀국 한 친구가 떠 올라 무작정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2004년의 만 스물일곱 나의 여름을 향해. 그렇게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며 California San Marcos시절인 2015년 어느날 나의 아지트 Old Cal Café에서 친구 희린이에게 강의 노트를 한 장을 골라 손 편지를 써 내려갔다. 희린이는 나의 20대에 미국에서 만나 중간에 잠시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다시 연결되어 그로부터 몇년 째 지금까지 독서클럽 '鄭(정) 李(리)의 책'을 함께 하고있는 나의 '정이'이다.

브레이크 타임이면 북적이는 저 카우치는 팬데믹 이후 칸막이와 긴 테이블로 바뀌었다.


그때도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편지나 쓰고 있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카페에서의 호사는 그냥 전공을 바꾸어 지친 노동탓에 3개월 계약직 인턴으로 일하던 중 퇴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몸을 이동해 카페인으로 나를 달래는 역전 대합실같은 찰라의 휴식 시간이었을 뿐 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밀린 교과서 읽기도 하고 숙제도 했다. 아무튼 도서관은 너무 멀고 인터넷이 필요하니 겸사겸사 애용했던 휴게소와 같은 공간에서 비가 오는 어느 날 어쩐지 공부를 접어두고 희린이에게 며칠에 나누어 손 편지를 썼다. 얼마나 오래 이 편지뭉치를 가지고 다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무렵 그냥 이번에는 이것을 꼭 부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락할게 하며 말 빚만 지고 갚지 못한 심정으로 써 내려간 편지는 친구의 이름을 빌려다 놓고 실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지어 낸 것이었다.   


어떻게 내가 희린이와 연락이 끊어졌는지도 불분명 하지만 어떻게 다시 연락이 닿았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도 지금도 나는 떠들고 친구는 미소 지으며 듣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이 올라오고 진드기가 있을지 모르는 대학 캠퍼스 잔디밭 위에 막 앉아서 비 위생을 값으로 지불하고 카탈로그의 낭만을 얻는 놀이도 함께 했다. 41번 순환버스 정류장 돌 의자에 앉아 미래에 대해 답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서로 읽은 책이나 즐겨 듣는 음악이야기며 수능 때 언어영역에서 몇 개 틀렸는지 등의 꽤나 쓸데없는 이야기도 공들여 공유하는 비밀스러움을 나누었다.

 

나는 그때도 무엇이든 돈을 벌어 성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의미를 찾아 중노동 하는 삶은 더 이상 싫다며 미국에서는 새로운 일을 할 것이며 그 일은 내가 하는 만큼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쩌면 곧 전공을 바꾸어 더 이상 말도 안통하는 이 곳에서 아동학을 이어가지 않고 생물학을 이수해 간호학교에 입학할 계획이라는 것도 이야기한 것 같다. 앞으로 내가 하는 공부는 무조건 얼른 직업으로 바꾸어 돈을 벌 수 있는 쪽으로 잽싸게 찾아보겠노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했던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희린이는 미소 지으며 듣고만 있었다. 친구는 '나는 무엇이 될 것이고 어떻게 할 것이다'라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때도 지금처럼 웃고 있었다. 1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희린이는 어린이 그림책을 트렁크 한가득 싣고 귀국 했고 그런 우리의 만남은 벌써 10년도 더 넘은 옛 일이 되어 버렸다. 10년 후 지금 나는 교통사고로 6개월의 재활 기간을 거친 후 간호학교 재입학의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유학생의 생명도 체류 기간과 함께 사그라질 무렵 가까스로 MBA 프로그램으로 갈아타며 심폐소생술을 하여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중 이었다. 꿈도 없이 계속 떠밀려 가야만 하는 길 위에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같은 10년 후 희린이는 그림 작가가 되었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으로 꿈에 한발짝 더 가깝게 있었다. 내 주변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한 길을 걸어 성과를 이룬 사람을 직접 처음 본 경우였다. 게다가 이름 있는 디자인 회사를 박차고 퇴사한 것까지도 멋지게 보였다. 나는 내 일처럼 기뻤고 희린이가 귀국하며 준 선물 중 그녀가 직접 그리고 쓴  ‘나무 이야기’라는 책을 십년 째 내가 아직도 소장하고 있었던 것을 장하다 칭찬하며 다시 읽어 보았다.


[나무 이야기] 글 그림 정희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길을 가며 그 자리에서 묵묵히 도전하는 유일한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꿈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만난 것 같아서 기뻤고 그런 희린이와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이 꿈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원점과 반갑게 마주하게 되었다.  


손 편지를 받고 희린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언니, 글을 이렇게 잘 썼어요? 편지가 재미있어요. 글을 한번 써 보는 거 어때요?”


그림 작가인 희린이가 잘 쓴다고 하니 진짜일 수도 있겠구나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작가가 되고 출간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꾸준히 글을 써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혹시 브런치라고 들어 보셨어요?”

“브런치? 아침에 먹는 거?”

“네 그 브런치인데 이거는  글쓰기 플랫폼이예요.  꾸준히 글을 써서 모으면 출간의 기회까지 갖게 된다고 들었어요. 언니도 브런치 해 보세요.”



2016년 7월 31일 사용하고 있던 구글 이메일로 가입을 하고 작가 신청을 했다. 어떻게 신청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좋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써 놓은 글은 아직 없습니다. SNS도 하지 않습니다 하며 온통 빈칸 빈칸으로 지원을 했던 것 같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일상에서도 많은 탈락의 경험이 있던 중 이었기에 또 탈락이구나 별로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기하던 간호 프로그램에 5년 만에 입학해서 첫 학기에 탈락, 재 입학의 기다림 중 지원하였던 병원에서 외국인 비자 만료로 채용과 동시에 탈락, 프로그램 재 입학의 기회가 주어져 다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준비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며 입학의 순위에서 탈락하며 학교에서도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으니 전공을 바꾸던지 그만 나가 달라는 메일을 받고 난 후였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이런 시점에서 글을 잘 쓴다는 뜻밖의 능력을 인정받은 주인공은 갑자기 막 일필휘지로 글을 써 대고 공모도 하고 유명해지고 그럴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저 잠잠한 브런치 작가 탈락이었다. 내가 글을 쓰다니. 지금이 그럴 때 인가. 브런치 작가도 탈락했는데. 열심과 열정도 없었던 시도는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도 못 느끼는 사건이었지만 마음만은 오래간만에 순수하게도 야속함을 마구 드러냈다. 여기서도 나를 탈락시키는구나. 브런치 플랫폼에 작가 지원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구나.


나는 탈락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며 그 후로 몇 년을 묻어두었다. 학습된 무력감이 점차 나의 삶을 지배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럼에도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은 따발총처럼 연속으로 일어나며 일상에서 브런치 탈락 정도의 사실은 잊어도 그만 이었다. 그것은 ‘지금은 내 꿈 정도는 잊고 살아도 된다’ 고 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쳇이다. 그냥 안 하고 말겠다는 대답같은 첫 번째 탈락 그리고 또다시 원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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