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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밤에 응급실에 갔다
장폐색의 공포
by
정민유
Sep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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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도 자다가 배가 너무너무 아파서(장을 쥐어짜듯이) 두 번이나 응급실을 갔었다.
첫 번째는 꽁치통조림과 명란젓을 먹었기에 식중독이 온 줄 알았다.
두 번째는 저녁때 치킨을 급하게 먹은 날이다. 밤에 누워서 또 배가 아파 오길래 한 번 참아보자는 마음으로 몇 시간을 누워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못 참을 정도가 되어서 남편에게 얘기하고 병원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다가 기절을 할 뻔했다.
그 통증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극심했다.
응급실에서 여러 검사를 하고 수액과 진통제를 맞으면 통증이 없어져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병명도 모르고 그저 위경련이 왔나 보다, 스트레스성으로 생긴 건가 보다... 생각했다.
추석 전날 송편을 사러 동네 떡집을 찾아갔다.
떡을 유난히 좋아하지만 그중에 송편을 제일 좋아한다.
추석 대목을 맞은 떡집은 엄청난 양의 송편을 쪄서 펼쳐놓았다.
그중에서도 질기지 않고 보드라워 보이는 녀석으로 두 팩을 집어 들었다.
계산하려고 주인아저씨를 보니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계셨다.
일 년에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날이니 얼마나 좋으시겠는가!!
차에 앉자마자 랩을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서 송편을 맛봤다.
"우와~~~ 너무 맛있다"
" 역시 떡은 동네 떡집이 최고야"
그 촉촉함이 쉽게 만나기 어려운 질감이었다.
남편도 맛있는지 내가 주는 송편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맛있는 송편을 영접했기에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10개 정도 배속으로 사라졌을 거다.
다음날 추석까지 20개는 족히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밤 또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극심한 고통이 오기 전에 남편은 날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그날 당직의는 CT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보더니 소장이 부어있고 장폐색이라고 했다.
2년 전 자궁경부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했어서 그 후유증으로 장유착이 생긴 거 같다고 했다.
추석 연휴라서 입원을 권유했지만 일단은 집으로 돌아왔다.
장폐색을 검색해보니 피해야 될 음식에 떡과 곶감이 있었다.
안 그래도 추석 선물로 곶감 선물세트를 받고 신나서
열심히 먹었었다.
장폐색은 특별한 치료 방법도 없고 재발도 잘 되는 질병이라 음식을 최대한 조심하고 천천히 잘 씹어먹어야 한다.
음식을 너무 급하게 먹어서 남편은 항상 나무라는데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았었는데 이젠 무조건 고쳐야 한다.
게다가 기름진 고기 종류도 되도록이면 먹지 않아야 하고 빵, 과자, 케이크도 금지다.
5월 달에 밀가루 끊기를 해서 잘 지키다가 최근 들어 다시 먹게 되었었다.
이틀 금식을 하고 죽을 먹기 시작했다. 미음을 처음 먹는데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미음이 달짝지근했다.
그다음 먹은 전복죽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맛났다.
사과를 조금 갈아서 먹었는데 달콤함의 정도가 엄청났다. 뭔가 입맛이 초기화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떡도 곶감도 기름진 고기도
못 먹게
된 상황이 너무 슬프다. 왜 하필이면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건지...
왜 난 유독 그런 음식들을 좋아하는 건지..
남편은 건강한 음식들을 좋아해서 좋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신선한 야채와 과일과 두부 등 건강한 음식들과 친해질 기회로 삼아야겠지.
올해의 송편이 내 인생의 마지막 송편이 될 줄이야...
나의 마지막 송편아... 안녕...ㅜㅜ
오늘 저녁은 남은 전복죽에 된장과 계란을 풀어서 된장 계란죽을 만들어 먹었다.
' 오~ 맛있다'
뜨끈한 새로운 맛의 죽을 음미하며 먹었다.
남편도 맛나 보인다고 해서 주니 너무 맛있다고 매일 먹고 싶단다.
이렇게 건강한 음식들을 만들어 먹는 재미도 괜찮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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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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