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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Oct 05. 2022

남편에게 갱년기가 왔다.

힘들 때 하는 셀프 상담 그 이후


요즘 마음이 너무 힘들다.

이럴 땐 나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존재가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떠오르질 않는다.

이런 생각을 30대 우울했던 시기에도 했던 것 같다.

그때도 휴대폰의 지인 목록을 쭈욱 보면서 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도 역시 없었다.


그래서 이럴 때 상담을 하게 되나 보다.

주위에 많은 상담 선생님들이 있지만 내 마음을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분이 있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땐 혼자서 셀프 상담을 해보자.




" 뭐가 그렇게 널 힘들게 만드는 거야?"

" 요즘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아"

" 어떻게 안 좋은데?"

" 남편이 갱년기가 왔는지 시시때때로 짜증을 내고 나에게도 말을 함부로 해서 그런 남편이 좀 무섭기도 하고 한 공간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

" 그렇구나.. 둘이서 계속 붙어 있고 그동안 남편만 의지하고 살아서 더 서운하고 힘들겠네"

" 응 너무 달라진 남편의 태도가 당황스럽고 이게 남편의 원래 모습이었나? 생각이 들면 모든 게 다 혼란스러워 내가 선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자존심 상하고.."


" 남편이 그런 태도를 보인 지 얼마나 되었는데?"

" 9월 초부터니까 1달 조금 넘었네"

" 그렇구나. 가족이나 친구들도 그 힘든 마음을 그대로 공감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드는 거야?"

"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을 했었고 그것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너무 슬프고 속상해"

" 만약 남편이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원래의 모습이 나타난 거라면 어떡할 거야?"

" 3년 만에 본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거라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난 이 결혼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 사랑 때문에 이혼했고 사랑 때문에 재혼한 거니까... 난 사랑 없는 결혼생활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갱년기 증상 때문이라면 확실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

"그럴 가능성이 크지"

"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 당분간 남편의 상태를 지켜보고 계속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난 이 결혼생활 그만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어"

" 그렇구나.. 그 정도로 힘든 거구나 그럼 또 혼자서 살 자신은 있어? 이혼하고 혼자 살 때 너무 외로워했잖아"

"  그랬었지 많이 외롭겠지만 딸들도 있고 어차피 둘이어도 외로우니까.."


" 그럼 이제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

"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면 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해"

" 그렇게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매었는데 넌 그런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거구나?"

" 맞아 그런 것 같아. 나한테 잘해주면 좋고 날 힘들게 하면 싫어지는 그게 내가 하는 사랑이었나 봐"

" 그럼 상대의 상태에 따라서 변하는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는 거네"


" 그럴지도 몰라 그럼 이건 내 문제인 것 같네.. 남편은 갱년기 증상 때문에 짜증이 나고 욱하는 건데..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든 거지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니니까... 남편은 내가 암에 걸리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암흑기에도 옆에서 날 정성껏 챙겨주고 간호해줬는데.."

" 그랬었지 헌신적인 사랑을 해줬었다고 했지"

" 내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힘들어했던 것 같아 진정한 사랑이란 건 그 사람의 장점, 단점을 다 받아들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건데..."


" 맞아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

"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원하던 진정한 사랑을 나부터 해봐야 할 것 같아"

"그런 마음이 생겼다니 좋네"

"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고마워  내 마음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줘서.."

" 뭘..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저 위에 글을 썼다가 발행 취소를 했었다. 그런데 어제 남편과 또 다투고 나서 또 마음이 힘들다.

남편과 만난 지 3년 4개월이 되었다. 처음엔 너무 자상하고 따뜻하고 헌신적인 남편이었는데...


어제 싸움의 발단은 냉장고 정리에 관한 거였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깔끔하고 청결하고 살림을 잘한다. 그에 반해 난 집안일엔 소질이 없다.

예를 들어 난 재활용 쓰레기를 일주일 정도 모았다가 버렸었는데 남편은 매일 버린다.


깨끗한 모습이 좋아서 나도 이젠 남편을 따라 집안일을 조금은 잘하게 된 거 같은데 남편 성에는 안 차는 것 같다. 어제 냉장고 상태는 내 눈엔 지극히 깨끗했다. 문제는 먹다가 반쯤 남은 호박죽을 용기에 담지 않고 랩을 씌워서 넣어놨었는데 남편이 그걸 쏟은 것이다.

그 화살이 나에게로 향해서 화를 냈다.


어제는 나도 참지 않고 불만을 다 토로했고 거의 하루 종일 불편했다. 어머님이 살림을 너무 잘하시니 남편의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 난 이렇게 사사건건 불만을 가진 사람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의 그런 모습이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이걸 해결할 에너지가 없다. 지친다.

'결국 우리의 사랑이 이 정도였구나...'

'부부상담을 하는 상담사도 자기 문제는 어쩔 수 없구나...'

우리 부부에게 이런 시간이 올 거라 상상도 못 했었다.


아직도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쓴다

'오늘은 정말 일어나고 싶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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