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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Feb 07. 2022

암환자가 된 첫날


머리가 하얘지고 어안이 벙벙하고 세상에서 분리된 느낌이 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암이에요.."


의사의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그 말을 듣기 전과 그 말을 들은 후로 내 삶이 나누어지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에서 들었던 말 중에 최고로 충격적인 말..

살면서 들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말..

하지만 난 들었다, 아니 들어버렸다.


'내가 암환자라니...'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에 1%라도 내가 암일 거라는 걸 상상했더라면 덜 충격을 받았을까..?


그때만 해도 오랜만에 생긴 여유로움을 마음껏 즐길 생각이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병원을 나와 택시를 집어탔다.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얼떨떨함 그 자체였다.


집으로 걸어가는데 바닥을 딛고 걸어가는 것 같지 않고 그냥 붕붕 떠서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무조건 안전한 침대로 들어갔다.

사귄 지 10개월 된 에게 제일 먼저 카톡을 보냈다


"나 암이래요.."

"말도 안 돼 일단 기다려요 마무리하고 얼른 갈게요"


그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서 최대한 담담하게 보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 암 이래..."

그 말을 하는 동시에 진한 피 같은 눈물이 터져 나왔다.

부정하고 싶었다.

억울했다.

화도 났다.

오진이었길 바랬다.

그리고 자책을 했다.


'왜 암 검사를 몇 년 동안 안 받은 걸까?'


 집에 돌아올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2~3 시간쯤 흘렀으려나..?


앞으로 어떡해야 하는 거지?

나 죽을 수도 있는 걸까?

그럼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우리 딸들은 어떡하지?

랑하는 그는?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은 지진이 난 듯 시끄러웠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넘실댔다.

하지만 이미 나에게 닥친 일!!

어떻게 잘 이겨낼 수 있을까?로 생각이 흘러가면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돌아올 즈음에는

현실감각이 되살아나 수술 잘하는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동생에게 부탁했다.


그가 왔다.

애써 힘든 표정을 감추며 날 위로하고 담담한 척했으나


처음 그 카톡을 본 순간


'이제 난 이 여자 없이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자신의 사랑을 더 확신하게 되었었다고..


난 그것도 모르고 헤어져야 하는 걸까..? 란 생각도 했었는데...


다음 날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민유가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아서 그렇구나..."

울먹이시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니

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내 삶을 인정받는 느낌...


그렇지... 난 상처 덩어리였지..

항상 말하고 싶어도 못하고

뭐든 참고 억눌려 살았었지..

지난 과거의 삶은 고통의 늪 같았다.

불안하고 우울했었다.


암이 걸리니 모든 식구의 관심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만나 지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며 행복해하는 순간에 암이란 친구는 귀띔도 없이 무례하게 찾아왔다.


그래도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또 주시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나는 암환자가 되었고 내 옆에는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을 함께 해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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