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착한 남자가 그럴 줄은 몰랐어요"

연인 간의 정서적 학대

by 정민유


연애상담을 하다 보면 사랑한다고 하는 연인 관계에서 정서적 학대가 종종 일어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정서적 학대를 받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잃어버리게 된다.


정서적 학대의 가장 많은 것이 언어폭력인데

욕 퍼붓기

비난하기

모욕주기

소리치기

협박하기

창피주기

신랄하게 비꼬기

상대방에 대한 역겨움 표현하기 등이 있다


사실 언어폭력은 신체적 폭력보다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폭력이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심리적 충격이 크다.

비난하기나 비꼬기등은 언어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도 오랜 기간 지속되면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저도 전남편에게 지속적으로 비난과 지적질을 당했다.

"당신이 예쁜 데가 어디 있어?"

" 몸매도 날씬하지도 않아"

" 당신이 잘하는 게 뭐가 있어?"

" 정리정돈도 못한다"

" 시부모님한테도 잘하지 못한다"

" 기도를 안 해서 그래, 성경을 안 읽어서 그래"

비난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소위 가스라이팅을 당한 거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은데 10년 이상 이런 말을 듣다 보니 나 자신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런 언어폭력을 당한다고 인식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만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런 비난을 당할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아니 대응할 내면의 힘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와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관계 속에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학대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이걸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사랑을 잃을까 봐 그냥 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학대받은 사람들은 '반복 강박'을 갖게 된다.

반복 강박이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인데 이는 우리가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즉,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던 딸이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같은 남자와 사귀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혜정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언어폭력이 너무 싫었다.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쌍욕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싫어서 절대 폭력적인 사람과는 만나지 않으리라 결심을 한다.


그녀는 같은 교회를 다니는 남자와 사귀게 되는데 그는 모든 교회에 칭찬이 자자할 만큼 모범적이고 온순한 청년이었다.

3년 정도 사귀면서 그가 폭력적인 면이 있는지 주도면밀하게 관찰을 해보았으나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혜정 씨가 화를 낼 때도 차분하게 혜정 씨를 진정시키는 그를 보며 결혼을 해도 되겠다고 안심을 하게 되었다.


결혼 이후 그는 착하고 온순한 성향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그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건 결혼 2년 이후부터였다.


혜정 씨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거기에만 에너지를 쏟는다면서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욕을 하기 시작한 거다.

그렇게 한번 욕을 하기 시작하니까 봇물 터지듯이 수시로 언어폭력을 했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쌍욕을 하는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남편도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했었고 그 분노를 가장 만만한 아내에게 표출한 것이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은 혜정 씨는 믿었던 남편에게 정서적 폭력을 당하니 너무 고통스러웠고 자기가 남편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된 자녀들은 자신이 문제가 있어서 맞은 거라는 무의식적인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혜정 씨는 그런 모습을 견디다가 우울증으로 상담실을 찾아왔다.


"선생님 그 착한 남자가 그럴 줄은 몰랐어요.."

"3년 동안이나 지켜봤는데 그런 모습을 안보였으니 당연히 믿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손톱만큼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정말 욕하는 남자가 끔찍하게 싫은데 결국은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사실 남편분은 원래 그런 성향이 있는데 그동안 숨기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 알 수가 없었겠죠.."

"저 어떡하면 좋아요..?"



하지만 아내가 상담을 한다고 해도 남편이 함께 부부상담을 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남편의 폭력이 신체적 폭력으로까지 발전되고 혜정 씨는 이혼을 하게 되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상담을 통해 혜정 씨가 원가족에서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고 좀 더 건강한 자아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서 성취를 잘 이루어내고 있었고 당분간은 남자를 만나기보다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잘 사는 걸 해보고 싶다고 했다.


더 이상 그녀가 폭력적인 남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혜정 씨 다음에 남자 만나게 되면 결혼 전에 꼭 커플 상담받으러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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