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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Sep 03. 2023

엄마, 나도 사랑받고 싶었어...

한 번만 내편 들어주면 안 돼?


40대 중반 선교단체에서 하는 '가족상담학교' 훈련을 받았었다. 상담과 내면의 상처 치유에 대한 것을 공부하고 소그룹으로 소통했다.

그 수업 중에 엄마에게 편지 쓰는 과정이 있었다.


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전혀 친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존재였다.

평생 엄마에게 편지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었기에 너무 어색하고 낯설었다.

' 뭐라고 써야 하지?'


그래도 애써 노력해서 첫마디를 썼다.

'엄마..'

엄마를 부르는 것조차 억지로 짜내야 했다.

지금 내용이 전부 기억나진 않지만 똑똑히 기억나는 건 '엄마, 나도 동생들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어' 란 내용이다.


평생 해보고 싶었던 큰딸의 속마음이었다. 엄마가 동생들 때문에 너무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는 말. 엄마의 편애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담은 편지였다.


하지만 그 편지는 차마 부칠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 편지를 받고 어떤 반응을 할지 불안해서였을까?

아니면 괜히 엄마 심기를 건드려 또 다른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였을까?

편지는 마치 숨겨야 하는 비밀처럼 노트 속에 꼭 꼭 숨겨놓았다.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엔 이 비밀을 말하고 싶다는 실낱같은 바람이 있긴 했었나 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확실히 통화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뭔가 또 엄마로부터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래서 있는 힘껏 용기를 내서 말하고야 말았다.

내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 엄마 나 수업시간에 엄마한테 쓴 편지가 있어. 한번 읽어볼게"

가슴이 두근두근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서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이 흘렀다. 엄마를 비난하는 얘기도 아니었고 내 마음의 진심을 담은 이야기였기에 아무리 냉랭한 엄마라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마 이때만 해도 엄마가 나르시시스트라는 인식이 없을 때였던 것 같다.

아니, 나르시시스트란 단어조차 몰랐을 때였다.


내 편지가 끝나자마자 내 예상과는 달리 엄마의 반응은

"나쁜 O "이었다.

헉!!! 이건 내 예상 답안지에 없던 반응이었기에 순간 넋이 나간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엄마가 남동생을 편애한건 이해가 되었어. 아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되었어. 하지만 여동생은 같은 딸인데 어떻게 그렇게 걔 편만 들을 수 있어?"

그러자 엄마는 또 여동생 편을 들며 두둔했다.

" 걔는 안쓰럽잖니. 걔는...."

" 아악~~~ 아악~~~ 악~~~~~한 번만 내 편 들어주면 안 돼?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내 편 들어주면 안 되냐고..."

내 속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이게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일 수 있을까? 하는....

그러자 엄마는 " 니가 진짜 미쳤구나..."라고 했다.


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서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쓰러져서 절규하고 절규했다.

' 왜 난 저런 엄마에게 태어나서 이런 상처를 받아야 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어릴 때부터 내 마음을 얘기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극성맞은 동생들 때문에 뭐든 양보해야 했고 힘든 엄마에게 거슬리면 안 됐다. 동생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 마음을 위로해줘야 했고...

착한 큰딸로 뭐든 혼자 알아서 했다.


'그럼 난, 난 누구에게 위로받아야 하는 거지? 나한텐 아무도 없는데.... 내 속마음 얘기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 번만이라도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지금도 이 글을 쓰며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난 정말 착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결국은 나쁜 딸이 되어버렸다.

그때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 이후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엄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너희 엄마가 나쁜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 나이가 되어서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 어린 질책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럼 난 또 '내가 나쁜 딸이구나...'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난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정서적 학대를 당한 딸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어떤 비난이나 악플이 달리더라도 난 쓰고야 말겠다.


결국 난 이런 오랜 학대와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로   암환자가 되었다.

오래된 상처는 내면에서 삭히고 삭히면 결국 신체적인 병으로 나타난다. 난 암뿐 아니라 목, 허리  디스크에 무릎관절염으로 걷는 것도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처럼 이렇게 오래 상처받아 결국은 병에 걸리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줄여야겠다.

병까지 걸리면 그 인생의 억울함은 어디서 보상받는가?


그래서 난 오늘도 글을 쓴다.

"편애의 상처는 치명적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lorin8993ksm03

대부분의 글은 브런치북으로 만들어졌으니 여기로 들어가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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