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시댁만 두 번 간 며느리

사람은 사랑이 있는 곳에 가게 되어있다

by 정민유


추석 때 며느리가 스스로 원해서 시댁을 두 번 간다고?

내가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니, 3년 전만 해도 내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할 판에 명절에 스스로 원해서 두 번을 간다고?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 버렸다.


추석 당일 어머님이 아프셔서 둘째 아주버님 댁에 모였다. 나와 형님 두 분이 음식을 준비해 와서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자 이제부터 윷놀이 시작하는 거야" 큰 시누이 말에 못 이기는 척 놀이가 시작되었다


장장 8시간 동안 윷놀이, 퀴즈대회, 고스톱 3종세트로 초등학생이 된 듯 천진난만하게 놀고 나서 집에 오려니 못내 아쉬웠다.

'따뜻한 가족의 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루종일 사랑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서 보내고 나니 조금 더 거기 머무르고 싶어졌다.


그다음 날 오후에 남편에게

" 내가 만든 갈비찜 가지고 어머님댁 다녀올까?"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믿어지지 않은 듯, 하지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 그래 그러자. 형이 당신이 한 갈비찜 제일 좋아하잖아"


남편은 내가 어머님이 좋다고 하면 어린아이가 된 듯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표정이 밝아진다. 하지만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어머님이 날 환대해 주시고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던 게 먼저다. 친정 부모님이나 전 시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웃어른은 긴장되고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결혼한 지 3년이 되어오는 지금 시부모님은 나에게 누구보다 따뜻하신 분들이다. 두 분은 나에게 부모사랑의 원형을 보여주셨다.

맨날 아픈 며느리를 위해 항상 걱정하시며 기도해 주신다. 그리고 따뜻한 눈빛으로 웃어주신다.


어머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컥하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사랑에 목말라 본 사람은 안다. 존재로서 사랑해 주시는지 아닌지.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어머님 댁에 가는 길에

" 여보 오늘 수산시장 하려나? 어머니 회 좋아하시잖아. 회 좀 떠갈까?"라고 하니

" 그러자. ㅇㅇ수산 하는지 확인해 봐"

" 오늘 영업하네"

" 그럼 내가 주문할게. 그러면 집으로 배송해 줘"

회까지 주문한 남편은 계단을 날아가듯 올라갔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무릎이 아파서 조심조심 4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 아이고 잘 왔데이 "

역시나 어머님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시누이와 아주버님도 문 앞까지 나와서 반겨주셨다.

" 민유가 어무이 회 좋아한다고 회도 주문했어"

남편은 시댁에 뭘 사갈 때는 무조건 내가 샀다고 한다. 그런 작은 것 하나도 배려해 주는 사람이다.

"우리 식구들은 나보다 당신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결코 서운해하지 않아 하며 말하는 남편.


회와 갈비찜으로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고 나서 어제에 이어 2차전으로 고스톱이 시작되었다.

사실은 어제 평소와는 달리 생기 없는 표정으로 소파에만 앉아계시던 어머님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 평생 자식들 음식 만들어주는 걸 기쁨으로 사셨던 어머니가 딸과 며느리들이 만든 음식을 드시는 게 마음이 어떠셨을지...

그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었다.


오늘 어머님 댁에 가자고 한 이유 중에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머님이 고스톱을 좋아하시니 함께 효도고스톱을 쳐서 기쁘게 해 드리리라, 천 원짜리 20장을 챙겨서 다 잃고 오리라 마음먹었다.


" 와 이리 묵을 게 없노?"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고스톱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님의 연승이었다. 회를 드시면서부터 어머님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시더니 고스톱에서 계속 연승을 하시자 어머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지셨다.

" 오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몸은 지쳐서 피곤했지만 어머님의 환한 웃음이 생각나 자꾸 미소 짓게 되었다.

" 여보 오늘 어머님댁 오길 잘했지?"

" 그러게 당신이 오자고 해줘서 고마워"

우리는 마주 보며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다.


커다란 달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 밝은 빛을 보며 어머님께 마음을 전했다.

' 어머님 보름달 같이 환한 사랑으로 저희를 오래도록 비춰주세요. 어머님이 음식을 못해주셔서 괜찮아요. 평생 자식들 위해 힘들게 일하셨으니 이제는 마음 편하게 받으셔도 돼요.

그저 어머님의 존재만으로 충분해요. 건강하게 저희들 곁에 계셔주시면 돼요.

항상 감사하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사람은 사랑이 있는 곳에 가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