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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의 노가다 현장을 가다

by 정민유

"나 요즘 노가다 뛰어 괜찮겠어?"

4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나서 사귀기로 한 날 나에게 그가 한 말이다. 그가 작가라는 사실만 알았던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흠칫했다.

" 어 괜찮아"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즉시 대답했다.

겉으론 괜찮다고 했으나 그 말을 듣고 마음속 깊이 괜찮을 수는 없는 노릇.


'겉으로는 곱게 자란 미소년처럼 보이는 사람이 노가다라니...'

상상도 못 해본 얘기에 사실 걱정이 되었던 건 당연했다. 평생 노가다를 하는 남자를 만날 거라는 생각을 스쳐 지나듯 이라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과 사귀기로 했을 때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그의 존재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막노동을 할 수 있는 남자라면 이 험한 세상을 함께 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더 컸다.

우린 이미 운명의 강한 이끌림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노가다'는 막일이나 막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고

여기서 막일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을 뜻한다.

남자 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건설현장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고 작업복을 입으신 분을 보면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되었다.




작가인 남편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게 힘드니 처음엔 아는 작가 형인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본격적으로 막노동 일을 하게 되었단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솔직 담백하게 하는 그가 오히려 놀라웠다. 남편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남성적이고 결단력이 있다.

나중에 그는 괜찮다고 하는 내가 더 놀라웠다고 했다.


모든 예술하는 분들의 딜레마가 아닐까..?

작품 활동의 결과물로 돈을 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게다가 글은 배고프고 힘든 고통 속에서 더 빛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으니..


그래서 함께 지내게 되었을 때 내가 상담이 끝난 시간이면 그를 데리러 건축 현장으로 가곤 했다.

결혼 생활할 때 타던 외제차를 타고..


뜨거운 햇살이 온통 내리쬐는 여름날

강남 국기원 근처 현장이었다.

보통 4시 반이면 끝나는 시간인데 20분이 지나도록 그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난 기다리다 지쳐 철문이 쳐져있는 현장으로 다가갔다.


슬그머니 철문을 열었다.

그러자 남자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작업복과 작업모를 입고 삽을 옮기고 있었다.

" 작업복 입고 이렇게 멋진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열심히 일하느라 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난 잠시 지켜보다가 냅다 소리쳤다.

" 끝날 시간 지났어요!!"

그 안에 계시던 인부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날 쳐다봤다.

" 여기 위험해요. 문 여시면 안 돼요"

여자가 겁 없이 문을 열고 소리를 치니 이상하게 봤을 게 당연하다.

남자 친구도 기가 막힌 듯 쳐다보았으나 이내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입가에 살짝 미소가 스쳤다.

' 내 여자 친구 참 대단한 여자구나' 했을 거다.


다시 차에 와서 기다리니 10분도 안되어 남자 친구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루 종일 온통 땀에 쩌들어 지친 모습이었으나 날 보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마치 하교시간에 엄마가 데리러 온 듯 해맑게 웃으며..

" 어떻게 문을 열고 소리칠 생각을 했어?"

" 끝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끝내니까 화나서 소리 지른 거지 모"

"그래 잘했어"


지금도 남편은 이 에피소드를 지인을 만나면 의기양양하게 한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정말 두 분이 잘 만났네요.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라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남편이 일을 하고 온 날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면서 끙끙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었다.

' 이 사람과 무슨 일을 하면 이 막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에겐 커다란 숙제처럼 다가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막노동을 하고 와서 앓는 소리를 하는데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우리가 만나고 2~3개월이 되었을 즈음에 남편을 설득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3개월 후 함께 심리상담카페를 차리게 되었다.


지금도 남편은 노가다 일을 했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노동이란 숭고한 거야.

내가 일한 만큼의 대가가 꼬박꼬박 나와.

남자로서 해 볼만한 일이야"

나도 남편의 그런 당당함과 은근 남자다움이 있기에 이 글을 쓸 수 있는 거다.

인생의 밑바닥을 쳐 본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이 호기 어린 행동이 남편에게 그 외롭고 혼자인 것 같은 시간에 대한 선물 같이 느껴졌을 것 같다.

이 세상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우린 참 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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