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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신혼부부의 사랑법
17화
아침형 아내와 올빼미형 남편
휴일 아침 스타벅스
by
정민유
Mar 13. 2022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촉촉한 아침.
새벽에 눈을 뜬 아내는 이 귀한 시간을 뭘 할까?
머리를 굴린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남편이 일어나려면 최소 3시간은 남았다
.
어제도 새벽까지 뭔가를 하다가 잤겠지
.
남편은 밤에 잠자는 걸 아까워한다.
난 새벽에 잠자는 게 아깝다.
남편은 한밤중의 고요함을 사랑하고 난 새벽의 공기를 사랑한다.
일단 배가 고프니 어제 먹다 남은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는다.
역시 아침엔 빵이지.. 흡족해한다.
남편은 아내가 빵 먹는 표정이 세상 행복해 보인단다.
하지만 처음에 아침마다 빵을 먹는 걸 마땅치 않아했다.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아내의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고 이제는 포기한 듯하다.
그다음은 내 사랑 커피를 마실 차례.
하지만 일리 캡슐에서 커피를 추출하려면 소리가 커서 남편이 깰 수도 있다.
그래~2층에 있는 스벅에 가서 마시자!!
요즘 아침마다 걷기를 시작했으니 밖으로 나가볼까? 창밖을 보니 비가 오네~
우산을 쓰고 걷는 건 뭔가 번거롭다.
그럼 어디를 걷지?
실내를 걸으려면 상가 지하 1층이 좋겠어
밖에 나갈 필요가 없으니 검정 코르덴바지와 노란색 후드티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걷기 전 커피부터 마시려고 2층에 있는 스벅 매장에 들어선다.
휴일 아침이라 아직 매장에 사람이 별로 없네.
평소엔 공부하는 젊은이들로 가득 찬 이곳 매장에서 앉아서 커피 마신다는 건 하늘에 별따기.
아내는 오늘은 기필코 넓은 통창으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겠다 결심했다.
커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숏 사이즈로 주문했다.
머그컵에 드릴까요?
어떻게 알았지? 커피는 역시 머그컵이지..
아주 흡족하다.
A-19번 손님!!
커피를 들고 그녀가 노렸던 그 좌석으로 돌진한다.
커다란 통창에 빗방울이 몽글몽글 맺혀있다.
선별 진료소가 있는 넓은 광장엔 비가 군데군데 고여있다.
바깥의 공기를 맡을 수 있다면 비 냄새를 오랜만에 맡아볼 수 있을 텐데...
확 트인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실실 피어오른다.
사실 2년 전 그녀는 같은 층에 카페를 차렸었다.
그때 '스벅보다 훨씬 커피맛이 좋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스페셜티 원두를 사용하여 정말 깊은 풍미가 있는 진하고 고소한 그 커피맛이 문득 그립다.
1년 반 만에 코로나란 녀석 때문에 카페 문을 닫았다.
그 이후에 비슷한 커피맛을 찾아 동네 여기저기를 순례했지만 비슷한 맛을 찾는 건 포기했다.
정말 슬픈 일이었다.
아주 많이 슬펐다.
아침마다 그 독약같이 진한 커피를 마시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는데...
요즘 그 커피를 못 마셔서 피곤했던 거야.
그녀는 커피맛에 유독 예민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왜 유독
이렇게 커피맛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것도 무슨 무의식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사실
그녀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건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다.
(그전엔 믹스커피를 하루 3잔이상 꼭 마셨다는~~ㅋ)
그땐 드립커피가 뭔지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니..
아메리카노란 그냥 싱거운 보리차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스벅의 지극히 평균적인 커피로 만족하기로 했다.
좀 전까지 기다란 창가 소파에 한 명의 여성이 앉아있어서 글을 쓰는데 약간 불편했었는데 그녀가 갔다.
헤헤헤~~ 이제는, 그리고 아직까진 전부 내 차지다!!
요즘은 글쓰기 친구가 생겨서 외롭지 않다.
예전엔 남편이 늦게까지 자면 조금은 허전했었다.
같이 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내 친구인 글쓰기는 언제든 나만 원하면 나에게 와준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만큼 함께 있어준다.
통제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은 정말 편안한 친구이다.
원래도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친하게 된 건 1달이 좀 넘었다.
어떤 친구보다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난 글쓰기와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너~~~ 무 좋다!!
이제 슬슬 걸으러 가볼까..?(남편이 일어나려면 1시간 남았다 ㅋ)
처음엔 바이오리듬이 다른 부부여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게 많았다. 하지만 3년 정도 같이 살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따로 또 같이'로 함께 하니 이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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