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50대 신혼부부의 사랑법
18화
내가 만년필 덕후가 되다니!!
작가 남편 따라쟁이
by
정민유
Apr 15. 2022
아래로
내 인생에서 만년필이란 물건에 대한 관심은 거의 0에 가까웠다.
뭔가 구 시대의 유물 같은 느낌이랄까..?
만년필로 글을 써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작가인 남편은 만년필을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
결혼선물로 뭘 갖고 싶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몽ㅇㅇ 회사의 코랄색 만년필이라고 말하는 그.
꽤나 비싼 가격이어서 좀 놀라긴 했다.
'만년필이 이렇게 비싼 것도 있구나..."
사러 갈 때부터 들떠서 흥분을 하더니
사서 돌아오는 내내 얼마나 환호하며 기뻐하는지...
"내가 이 걸 갖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
처음에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이해해야 하는 이유조차 몰랐다.
(만년필 산 날 남편이 그린 나)
남편 책장엔 잉크를 넣는 커다란 박스가 있다.
거기엔 다 비슷해 보이나 조금씩 다른 색상의 잉크들이 잔뜩 들어있다.
그 잉크들도 물론 난 소 닭 보듯 했다.
그런 나에게 작년부터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올 2월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작가라는 말이 싫지 않았고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글을 쓸 때와는 사뭇 다른 무게감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게 나와는 먼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자 엄청난 에너지가 터져 나왔고 2달 동안 정신없이 글을 썼다.
그동안 쌓여있던 글감들이 많았었나 보다.
사실 난 글을 쓸 때 스마트폰에 엄지손가락 하나로 글을 쓴다.
굳이 종이에 만년필로 글을 쓸 필요는 없는 시대이니..
그래도 항상 옆에서 노트에 만년필로 글을 쓰는 남편을 3년 가까이 보고 있자니
나도
따라 하고픈 욕구가 올라왔나 보다.
작년부터 만년필의 세계로 들어오게 유혹하는 남편의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의 라미 만년필을 사주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그마한 만년필을 써보라고 하기도 했다.
남편의 물귀신 작전은 계속되었다.
"상담할 때 만년필로 쓰면 멋지잖아"
"아.. 그럴까..?"
처음엔 글씨가 굵게 써지는 만년필의 필기감이 부담스러웠다.
또 종이 뒷 장에 묻어나는 것도 신경이 쓰였고..
그런데 쓰면 쓸수록 만년필만이 가지는 촉감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어갔다.
그래도 잉크를 채워 넣어야 하고 수성펜보다는 조심스러운 만년필이 완전히 익숙하진 않아 다시 수성펜으로 쓰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내 눈을 홀리는 아이가 나타났다.
PARKER 51 GT 디럭스라는 아인데 PLUM 색에 황금빛 뚜껑을 쓴
.
.
딱 보기엔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짙은 보랏빛이 감돈다.
뚜껑은 골드색인데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고 영롱하게 빛을 발한다.
남편은 그런 아이를 나에게 쓱 내밀며
"당신한테 딱 어울릴만한 만년필을 찾아냈어"
"이게 뭔데? 엄청 예쁘네"
"그치? 그치? 한 번 써봐 봐"
"오올~ 별로 굵지 않고 느낌이 좋다"
"거봐 당신이 좋아할 줄 알았어"
"그렇게 좋슈?"
나보다 더 기뻐하는 남편.
"만년필이 왜 만년필이냐면 평생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야. 이건 3대 만년필 중에 하나인데 나도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거야.....(중략)"
남편은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는 그 후로도 쭈욱 이어졌다.
말을 하는 남편의 표정이 유난히 행복해 보였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쭈욱 같이 간다는 말이 날 만년필 덕후의 세계로 끌어들인 결정적인 말이었다.
작가에게 친구 같은 존재인 나만의 만년필을 갖는다는 거!!
생각만 해도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다.
(이건 남편 손입니다 ㅋ)
그래서 이렇게 그 아이의 집도 장만해 주었다.
이쁜 아이 뚜껑에 기스나면 안되니까...ㅋ
결국은 나도 남편 따라쟁이로 영락없이 만년필 덕후가 되어버렸다.
"얘야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꾸나.."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오후에 갑자기 든 생각.
그럼 내가 가수 남편을 만났다면 나도 노래를 부르고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화가 남편을 만났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
어릴 때부터 그림은 좀 그리는 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는 건 내 안에 있는 재능이나 욕구가 건드려졌기 때문이겠지.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건 아니니까.
keyword
만년필
라미만년필
손글씨
Brunch Book
50대 신혼부부의 사랑법
16
나는 아들 같은 남자랑 산다
17
아침형 아내와 올빼미형 남편
18
내가 만년필 덕후가 되다니!!
19
우리는 시간만 나면 떠난다
20
다낭 여행-2년 만의 신혼여행
50대 신혼부부의 사랑법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2화)
28
댓글
6
댓글
6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정민유
연애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심리상담사
직업
에세이스트
강릉이 좋아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강릉에서 노는 언니가 되었습니다. 중년 부부의 강릉살이를 씁니다.
구독자
892
제안하기
구독
이전 17화
아침형 아내와 올빼미형 남편
우리는 시간만 나면 떠난다
다음 1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