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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16. 2022

1000일 기념으로 간 오마카세 스시우미

초밥의 신세계를 맛보다


남편과 내가 만난 지 1000일째 되는 날!!


우리 오피스텔 지하 1층에 오마카세 맛집 스시우미가 있다. 항상 젊은 친구들이 예약하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가는 식당이다.

몇 번 예약하려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갈 엄두도 못 내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제 남편이 무심코 전화를 했는데 예약이 되었다.

약간은 얼떨떨한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20~30대로 보이는 커플들이 벌써 앉아있었다.

차분한 조명과 나지막한 재즈음악이 흐르는 차분한 공간, 엄청나게 친절한 직원들.


오마카세를 처음 가보는 내게 남편은 조용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이런 곳의 초밥은 밥알이 살아있어서 젓가락으로 집으면 흐트러질 수 있으니 손으로 집어서 먹는 게 좋아요"


음식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셰프님이 세심하게 설명해주셨다.

처음 전복이 나왔는데  

어쩜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

눈이 휘둥그레진 날 보며 남편이 웃는다.

더 일찍 이런 곳에 데려와주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묻어있었다.

그다음엔 문어조림, 장어튀김, 자신의 맛을 뽐내며 등장하는 각종 초밥들...



차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셰프님은 초밥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놓아주시고 맛이 어떤지, 밥양은 적당한지  물어봐주셨다.

"너~~~무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내 표정은 안봐도 느껴진다.

아마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처럼 환희에 차 있었으리란 걸.

입안에서는 초밥이 살살 녹았다. 녹는다라는 표현밖에 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초밥은 초밥이 아니었었네.

50년 넘게 먹어 본 음식 중에서 거의 최고라고 할 정도의 맛!!

황홀했다.



 그중에서 고등어 초밥이 1등이었다.

남편은 비린지 반을 나한테 넘겨줬다. 아싸!!

난  물 말아서  자반고등어랑 먹던 사람이라고..ㅋ


음식이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 온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의 혀가 생전 처음 맛본 완벽한 맛에 익숙해져 감을 느꼈다.

뒤로 갈수록 배도 부르고 맛이 너무나 꽉 차서 약간의 여운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완벽한 느낌의 사람 옆에 있을 때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지나치게 맛있어서  질린다고나 할까?

(간사한 혀 같으니라고..)

그래도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을 정도였고 귀한 대접을 받은 느낌에 9만 원이라는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1000일 동안 우리의 만남은 어떤 맛이었을까?

물론 처음엔 솜사탕처럼 엄청 달콤하면서도 강렬한 맛이었고 레몬에이드처럼 새콤함과 톡 쏘는 맛도 섞여 있었다. 서로의 다른 점들이 충돌하는 100일 정도엔  쓰고 매운맛이었을 것이다.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점점 담백해지고 여러 맛들이 어우러져 갔으리라.


지금의 우리 관계는 적당히 따뜻한 황탯국 같다고나 할까?

황태와 계란과 파가 아주 잘 어우러져 있는..

아주 강렬하거나 자극적이진 않지만 편안하고 너무 잘 아는 맛!!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관계.


1000일까지 크고 작은 시련과 우여곡절이 많았다. 나의 암 진단과 수술, 코로나 한가운데서 했던 결혼식, 새로운 사업을 3개 오픈하는등... 하지만 우린 버텼고 이겨냈고 두 손을 꼭 잡고 함께했다.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변할 수 있지만 오히려 색이 변해가며 더 깊어지고 연결 감은 강해질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잘 숙성되어 가는 된장처럼..

서로 다른 재료들이 끓일수록 어우러져 더 깊은 맛을 내듯 우리의 관계는 더 아름다운 맛을 낼 거라 생각한다


우리의 10000일을 기대한다.

"여보 10000일엔 어디 가서 뭐 먹을 거유?"

"그때까지 회에 밥이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당신 옆에 꼭 달라붙어 있겠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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