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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26. 2022

극성맞은 올 A형 가족

어린 시절의 추억


친정식구들은  A형이다.

엄마, 아빠, 2남 2녀(2살 터울로 딸, 아들, 딸, 아들),사위, 며느리, 손주들까지 15명 모두.

A형이라고 하면 소심하고 내향적일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나만 빼고 모두 외향적이었다. 그래서인지 형제들은 유독 많이 다퉜다.

"다른 집 아이들은 안 싸운다는데 우리 애들은 왜 이렇게 싸우냐? 정말 너희들 키우기 힘들다"

엄마가 하루 종일 짝을 바꿔가며 싸우는 우리들에게 지칠 때쯤 항상 하시던 멘트다.

'그땐 안 싸우며 크는 애들이 어디 있겠어?'란 생각으로 무심히 지나갔지만..






싸울 때도 과격했다.

서로 잡으려고 식탁을 뱅뱅 돌다가 안 잡히면 화가 나서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도망가서 문을 잠그면 열라고 문을 열 때까지 쾅쾅거리며 소리소리 지르고.

장난감을 서로 가지고 놀겠다고 뺏다가 부서져서 울고.

여동생과 난 한 침대에 잤는데 눈 뜨면서 가운데 선을 넘어왔다고 이불 킥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온 집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러다가도 TV에서 만화를 하는 시간이 되면 만화 주제가를 넷이 합창으로 목이 터져라 불렀다.

노래를 부를 때조차 자신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내려고 경쟁적으로 불렀다.

만화가 시작되면 유일하게 조용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신기해하며 TV를 보고 있는 우리를 쳐다보시며 웃었다.




엄마는 성격이 강한 남편을 만나서 자식들이 다 센 거라 하셨다.

그래서 너희는 착한 남자랑 결혼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일리가 있는 듯하다.

함경도에서 17살에 혼자 월남하신 아버지는 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셨으리라.

자수성가하신 분들의 특성상 강하고 권위적이셨다.

그렇게 싸우던 형제들도 아빠가 퇴근하시는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각자의 책상으로 가서 공부하는 척을 했다.

아빠가 혹시 기분이 안 좋으신 날엔 눈에 띄는 자식이 불호령을 맞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극성맞은 동생들은 식탐도 엄청났다.

엄마가 생활비의 큰 부분을 식비로 쓰면서 부족함 없이 음식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햄소시지 선물이 들어오면 자기 것을 먼저 먹어버리고 다른 형제들 것까지 빼앗아 먹느라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단 소시지를 젓가락에 쭈르륵 최대한 많이 꽂았다. 그리고 자기 걸 다 먹으면 다른 형제의 젓가락에 꽂힌 소시지를 빼서 먹는 식이었다.

유난히 빵을 좋아해서 아빠가 커다란 태극당 봉투에 가득 빵을 사 오시곤 했는데 아무리 많이 사 오셔도 그날로 바닥이 났다.


난 맛있는 걸 아껴먹는 스타일이었다.

끝에 가서 제일 맛있는 걸 먹을 때 가장 희열을 느꼈기 때문에. 하지만 맛없는 걸 먼저 먹고 있으면 아껴둔 맛있는 음식은 영락없이 동생이 약탈해갔다.

그래서 나중엔 어쩔 수 없이 맛있는 걸 먼저 먹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먹는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내 것을 지키려면..


남편은 음식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먹는 나를 이해 못 했다.

"어떻게 10분 만에 밥을 다 먹을 수가 있어?"

정말 기가 막히다는 듯.. 연애 초기엔 이 문제로 많이 다퉜었다. 아무리 천천히 먹으려고 해도 수 십 년 된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질 않았다.

하지만 친정 식구들과 몇 번 식사를 하더니 나를 좀 이해하는 눈치다.

각자 옆의 사람 눈치 안 보고 맛있는 건 무조건 전속력으로 후다닥 먹어치운다.





난 사춘기 이후 이런 동생들의 기에 눌려서인지 점점 더 내향적이 되어갔다.

동생들은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해도 다 1등을 했고

웅변대회를 나가도 수상을 했다.

외향적인 식구들과 함께 사니 내가 내향적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부각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도 40대 이후엔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눌려있던 것들이 분출되는 시기였나 보다.


지금도 친정식구들이 모이면 정말 시끄럽다. 

서로 말을 하고 싶어 누군가 얘기하고 있으면  끼어들 순간을 노리다 영락없이 치고 들어간다.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그 프로 볼 필요도 없는 만담과 코미디가 수시로 연출되어 시끌벅적 깔깔깔이다.




그런 가족들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도 있고  때론 힘들지만 참 역동적이면서 재미있다.

외향적이긴 하지만 A형이라 섬세하고 예민한 면이 많다. 삐지기도 잘한다.

삐지는 건 막내 남동생이 1등이었다. 식구들을 챙기는 것도 막내가 1등이었다. 어릴 때부터 용돈을 모았다가 형, 누나들에게 비싼 선물을 사줬다.

지금도 막내부부가 부모님과 함께 살며 엄마, 아빠를 챙긴다.

막내 남동생과 비슷한 막내이면서 A형의 남자와 결혼했다.

엄마 말씀대로 착한 남자와.

A형에 진정한 내향성인 남편은 처음엔  우리 가족이 적응이 안 되었을 거다.

첫 친정식구들 모임에 혼이 빠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좀 적응이 되자 처가에 갈 때 기대를 하면서 간다.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기려나..?"

그런 남편이 마냥 귀엽다.



남편의 출현으로 인해 우리 친정 가족모임의 색깔이 약간은 부드러워진 느낌이라 좋다.

식구들도 말이 별로 없지만 속정이 깊은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없는 캐릭터니까...

"여보야 당신은 참한 A형이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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