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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듯한 눈빛의 남자

by 정민유



'누구보다 차가운 이성과 정말 포근한 감성이 공존하는 사람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하며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사람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

아주 사소한 정보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입력하고 필요할 때 기억해 내는 사람

자신의 멋짐을 드러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같이 있으면 그 멋짐을 알 수밖에 없는 사람.’



그를 만난 지 1달도 되지 않았을 때 페북에 썼던 글이다.

사실 1달도 안 된 시간 동안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직관형인 나는 그 사람의 선한 마음과 섬세한 마음결이 그냥 느껴졌던 것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주위의 여자들이 너무 좋아하는 인기남이라고 했다.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입증된 사실)

동그스름하고 하얀 피부에 속 쌍꺼풀의 눈, 5대 5 가르마에 자연스러운 곱슬머리, 비교적 오뚝한 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세련된 스타일,

약간 수줍은 듯한 태도,

검은 뿔테의 안경,

은근 유머러스한 말투,

게다가 이미 작가로서 매니아 층이 있는 그의 글솜씨,

게다가 막내로서 가지는 귀여움까지.


그냥 모든 게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첫날 내 마음에 가장 남는 것은 그의 ‘꿈꾸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린 왕자가 실체화되어 나타난 느낌이랄까?

대화 중간중간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의 눈빛은 나의 모성본능을 자극할 만큼 아련하고 조금은 슬퍼 보였다.

그걸 느꼈기 때문이었는지 내가

" 난 내가 안기는 남자보다 내가 안아주는 남자를 더 좋아해요"라고 말했을 때 그의 눈빛이 순간 '반짝'하는 걸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우리의 사귐을 식구 중에 가장 먼저 알게 된 분은 그의 누나였다. 2살이 나보다 많으셨지만 같은 대학 동기였다. 나이 든 남동생이 처음으로 소개해준 여자친구였으니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궁금하셨을까?

누나를 처음 만난 날 누나가

“우리 동생이 어디가 좋았어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난 주저함 없이

“꿈꾸는듯한 눈빛이요”라고 대답했고 누나는 5초 후에 큰웃음을 터뜨리셨다.

이성적인 사고형의 누나가 볼 때 이상주의자인 우리 두 사람을 보며 ‘끼리끼리 만났구나’라고 생각하며 웃으셨으리라.


식사를 마치고 가시면서 " 잘 사귀어보세요. 미래가 어떻게 되든 그것보다 오늘 행복한 게 더 중요하니까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딸이 셋이나 있는 이혼녀인 나와 결혼까지 하게 될 거라는 건 그 당시 상상도 못 하셨을 거다.

우리는 만난 날이 1일이었다. 사귀자고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우리가 되었다. 그때부터 거의 매일 만나고 붙어 있었다.

만난 지 2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아예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정말 이혼 후 혼자 살며 뼛속 깊이 외로운 날들이 많았고 누군가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서로 똑같은 강도와 양으로 사랑하기를 얼마나 바랐었던가?

그런데 그런 존재를 찾아 헤매다가 '그런 사람은 없나 보다' 하며 내가 찾기를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를 만나기 며칠 전에 일기를 썼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보내주세요’라고.

그러고 나서 우린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처음 만난 날 그가 노래방에서 ‘외로운 사람들’이란 노래를 불렀었다.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 견디게 가슴 저리네. 비라도 내리는 쓸쓸한 밤에는 남몰래 울기도 하고 누구라도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어보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그 가사가 그 사람 마음이라 느껴졌고 내 마음과 맞닿아 있었다. 어떻게 그 시점의 내 마음과 같은 가사의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아마도 그 노래를 부르는 그 시점에 그의 존재가 내 마음으로 거침없이 들어와 버린 것 같다.

50년 이상 혼자 살았던 그가 누군가와 한 공간에 산다는 것이, 그것도 여자집으로 들어와서 산다는 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책 보고 글 쓰고 동영상 보고 하던 그였기에.

아무래도 함께 사니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고 그게 답답하게 느껴졌겠지.


처음으로 크게 다투었던 날

그는 짐을 싸서 가겠다고 가방에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기가 막혔다.

이 정도의 다툼으로 헤어진다고?

“ 가긴 어딜 가?”라며 내가 붙잡았고 그는 못 이기는 척 다시 짐을 풀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누군가 자기를 붙잡아 주기를 바랐었다고.

“용감한 자만이 미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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