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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y 22. 2022

까다로운 남편의 입맛 맞추기를 포기했다.


나도 식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았다.

오히려 우리 딸들은 음식을 해주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엄지 척을 해줬었다.

 맛있다는 기준이 아주 높지 않은 평균치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고 내가 50년 동안 믿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연애 초기 집 근처에 나름 맛있다고 생각하던 양곰탕을 먹으러 갔을 때다.

한 입을 먹어 본 남편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나온 한 마디!!


" 아... 요 정도?"

난 내심 맛있다는 말을 할 거라 기대했기에  깜짝 놀랐다.

"맛이 없어요?"

묻는 나에게 그 이상 아무 대답도 안 하고

"내가 많이 데리고 먹으러 다녀야겠구나.."

라고만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먹는 문제로 가장 많이 다투게 될 거라는 상상도 못 했었다.

남편은 음식이 단 걸 지독히 싫어한다.

그리고 하루 첫끼는 생선 종류를 못 먹는다.

너무 강한 양념도 안 좋아하고

재료도 신선해야 하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도 싫어한다.


고기류보다는 야채를 좋아한다.

청국장과 된장찌개, 된장국, 나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밥도 정말 조금 먹는다.

나는 육식녀이고 생선, 회, 해물 다 좋아한다.

야채는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나물 반찬도 좋아하게 식성이 변했다.

남편 입맛에 맞는 음식은 흔치가 않다.

미식가이기도 하지만 일반 미식가보다도 기준이 훨씬 높다.



내가 처음 해줬던 음식이 돼지갈비찜이었다.

먹어 본 누구든 평가가 좋았기에 야심 차게 설탕을 듬뿍 넣고 입에 짝짝 달라붙는 맛으로.

"맛이 어때요?"

"으응.. 맛있어"(참 영혼 없다)

그리고는 1~2개 먹고는 마는 것이었다.

심히 실망했다. 서운하기도 하고.


남편의 맛있는 음식의 기준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기준치보다 훨씬 높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한 건 3년 동안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기껏 열심히 만들었는데 대충 먹고 숟가락을 놓아버리는 것에 마음이 상해 이젠 거의 음식을 안 하게 되었다.




남편과 만나 오래된 노포 맛집들을 정말 많이 다녔다.

내가 모르던 신세계였다.

나도 맛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이젠 남편이 맛있다고 하는 게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안다.

그러니 나 정도의 요리 솜씨로 남편의 기준을 맞추는 건 역부족이다.


그러니 외식을 많이 하는 우리가 제일 힘들어하는 게 메뉴 정하는 것이다.

난 웬만한 음식은 뭐든 잘 먹기 때문에 남편이 정하는 대로 따라가는 편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난 남편의 표정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변한다.

그리고 평소 양의 2배 이상 먹는다.


제철에 나는 좋은 재료로 최소한의 간을 하시고 모든 정성을 다해서 요리를 하시는 어머니의 음식을 50년 먹었으니... 하며 이해는 된다.

하지만 아내로서 밥 먹는 문제로 항상 예민해지고 다투게 되는 게 여간 성가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이 문제는 진행 중이다.



금요일에 공주로 여행을 가서 식객에 소개되었던

<별난 주점>을 찾아갔다.

나물 하나하나를 먹을 때마다 탄성을 지를 만큼 맛이 기가 막혔다.

재료의 본래 맛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간으로 만들어진 나물들과 깊고 구수하면서 매력적인 맛의 된장찌개, 적당한 양의 고추장과 대추청으로 닷 맛을 낸 더덕구이.


최고의 밥상이었고 그날 남편은 된장찌개를 한 번 더 주문해서 먹었다.

물론 행복한 웃음과 함께...

이번 공주여행은 이 밥상으로 끝났다.

나도 덩달이 기뻐 사장님과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미식가 남편이랑 사는 거 쫌  많이 힘들다...ㅜ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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