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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 일지>는 끝나지 않았다

존재론적 쓸쓸함을 채워주는 존재

by 정민유


닫혀 있던 마음에 단비가 돼주고

얼어있던 나의 마음을 녹여준다

다시 태어나도

너의 곁이라면 어디라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나의 해방 일지 OST-(함께 할 수 있기를..)



<나의 해방 일지>가 종영된 지 1주일이 되었는데 난 아직도 여운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렇게 마음의 울림이 큰 드라마를 만나기는 쉽지 않으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면의 가치와 맞닿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리라.


구씨와 미정


두 사람은 둘 다 자신의 현재 삶이 별 볼 일 없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미정의 대사를 살펴보면 왜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어릴 때부터 궁금해하는 아이였다.

누구에게도 묻기 힘든 실존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며 자라난 아이.


아마도 무뚝뚝하고 말수가 없는 아버지와 역할을 하기에 바쁜 어머니 밑에서 정서적인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자랐을 것이다.

언니나 오빠는 끊임없이 불평, 불만을 하며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며 살았으나 미정은 부모님처럼 입을 딱 닫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지독히 내향적인 그녀는 회사생활에서도 적응을 잘 못하고 만나는 남자들에게서 결국 실망감과 상처만 받게 된다.

그러면서 자존감은 바닥이 되었다.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슬플까? 왜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지 않았던 그녀.

남과 다른 자신에 대해 못마땅해할 수밖에 없는..

어차피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그냥 살아가는 존재로 살고 있었다.


구씨 또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으나 불우했을 거라 생각된다.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공을 바라보는 빛을 잃은 눈동자.

술 마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 세상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려는 듯 꽉 다문 입.

구씨의 얼굴은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만의 어두운 감옥에 갇힌 모습이었다.


호빠의 선수 출신으로 어두운 삶을 살아왔을 것이고 심지어는 같이 살던 여자가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더해져 거의 삶의 희망이 없어진 상태였으리라.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졌다.

처음엔 아무 말 없이 지나쳐 가던 두 사람.

차츰차츰 서로가 가까워지고 말을 잃었던 사람들이 대화를 하게 된다.


술만 마시며 사는 구씨에게 미정은 자신을 '추앙하라'라고 주문한다.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었던 자신이 한 번은 채워지고 싶다고..

추앙한다는 건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하는 것'



서로의 내면 깊숙이 숨기고 살았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있는 그대로 자신일 수 있는 대상을 발견한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면서 쓰고 살았던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안전한 존재를 발견한 두 사람은 추앙이라는 명목 하에 깊이 사랑하게 된 거겠지.


넌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 깜짝 놀란다.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꼼짝 안 해. 근데 너 날 쫄게해.

네가 눈앞에 보이면 긴장해. 그래서 병신 같아서 짜증 나. 짜증 나는데 자꾸 기다려.

응? 알아라 좀. 염미정 너 자신을 알라고.


하아... 이렇게 미정이 스스로도 몰랐던 미정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 준 대사.

못나고 자존감 낮고 지극히 평범하다고 믿고 살았던 미정에게 자신이 얼마나 존재감 있는 사람인지를 깨달으라고 말하는 구씨.


그리고 자신이 호빠 출신이라는 걸 고백하고 추앙하는 걸 그만하냐고 물어보는 구씨에게 과거에 무슨 일을 했던 상관 안 한다는 미정.

알코올 중독인 남자를 오히려 마음속 깊이 안쓰러워하며 그 모습 그대로 끌어안아주는 여자.

오히려 1살짜리 아이인 당신을 업어주겠다는 여자.

그런 여자를 떠났지만 구씨는 마음속에선 한시도 그녀를 잊지 못했을 거다.



평생 찾아 헤매었던 그런 존재 아니었을까?

두 사람이 서로를 추앙해줌으로써 두 사람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미정은 구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했지만 자신이 구씨를 추앙해 주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봐 주고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것'을 통해 두 사람 다 변화되었다.



생명력이 살아났다!!

표정이 밝아지고 가면이 아닌 해맑은 웃음을 웃게 되었다.


아..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변화된 미정이 한 말이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 드라마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좋아해 주는 존재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사랑만이 해답이다"라고 믿고 사는 나의 가치와 딱 맞아떨어지는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는 내 마음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래도록 인생 드라마로 먹먹함을 느끼게 할 거라 예상된다.


아무 의미없이 세상을 사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추앙'하며 그 우울함에서 해방되는, 구원해주는..

치유적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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