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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Mar 24. 2022

오늘도 너는 내게 빛이 되어준다.

해바라기

  어느 날 엄마의 서랍장에서 빛바랜 흑백 사진을 한 장 보게 됐다. 사진 속의 아가씨는 우리 엄마를 참 많이 닮은 풋풋하고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설마 이게 우리 엄마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와 닮았지만 어딘지 어색함이 느껴지는 이 사람은 큰 이모나 막내 이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한테 사진을 들고 달려가 물어보니 엄마 사진이 맞다고 하셨다. 그 당시 내 나이보다도 훨씬 더 어리고 고운 엄마의 모습이 신기하고 어색했다. 엄마한테도 젊고 예쁜 리즈시절이 있었는데, 나와 오빠를 키우느라 탄력을 잃은 엄마의 얼굴과 거칠어진 손을 보니 기분이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사진 속 젊은 엄마가 낯설었다. 내 눈에는 세월의 흔적만큼 주름살과 나잇살이 더해진 엄마의 모습이 더 편안하고 예뻐 보였다. 어린 손주를 안아주고 서른이 넘은 딸의 얼굴을 어루만져주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좋았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떠나보내는 대신에 단단함과 푸근함으로 한층 더 근사해지는 엄마의 인생. 나 역시 엄마라는 인생의 길 위에 서있다.


  뜨거운 여름날 내게 찾아온 우리 딸은 태양처럼 밝게 내 삶을 비추었다. 아이가 세수도 못 하고 누워있는 내 양 볼과 이마에 돌아가며 입을 맞추는 순간에는 첫 키스의 기억보다 더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엄마, 예뻐!”하고 말해주는 아이. 이 한마디를 들으면 화려한 여배우가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20대의 날씬한 몸에 화사한 옷을 걸친 채 포즈를 잡고 있는 사진 속의 엄마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꼬질꼬질한 엄마가 좋다고 말해주는 딸아이. 나의 팬이 되어준 아이 덕분에 나는 엄마라는 인생의 무대 위에서 그 역할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내 팬의 두 눈을 보면 다시 힘을 내 일어날 수 있었다.


  내 삶의 원동력이고 희망이었던 아이가 요 며칠 많이 아팠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오미크론의 폭풍이 우리 집에도 들이닥친 것이다. 전 국민이 한 번씩 다 아프고 나야 이 팬더믹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왜 하필 우리 가족 중 제일 어리고 약한 아이가 바이러스에 맞서 싸울 첫 번째 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원치 않던 상황이 벌어져 내 마음은 속상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면에 아이는 덤덤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왜 내가 제일 먼저 아파야 하냐는 불평의 말 한마디 없이 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방에 들어가서 마스크를 쓴 채 엄마의 상황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이 딸려있는 안방에서 아이가 며칠 지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안방에 있던 부부의 물건 몇 가지를 거실로 꺼내왔다. 그리고 아이가 먹을 약과 물, 갈아입을 옷가지, 심심함을 달래줄 책과 태블릿 PC 등을 안방에 챙겨두고 아이만 그 방에 격리시켰다.


  방에 혼자 격리된 아이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수시로 체온계를 확인했다. 방문 너머로 내게 체온계의 숫자를 불러주던 아이는 체온계에 40도가 넘는 숫자가 나타나는 순간, 두려움에 비명을 질렀다. 해열제를 먹여도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조금씩 올라가는데 내 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네가 지금 바이러스랑 싸우는 중이라 그래. 조금만 견디면 네가 이길 거야! 네가 이기는 순간 네 몸의 열기도 식어서 다시 정상 체온이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난생처음 겪는 일에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나는 문고리를 붙잡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이 말 밖에 없다는 게 답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엄마의 포옹으로 아이의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고민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 전문가들이 당부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고 가벼운 감기 수준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면역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오미크론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안 걸릴 수 있으면 피해 가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앓으며 아이의 고통에 공감하는 엄마가 되기보다는 내가 아이 옆에서 밥과 약을 챙겨주며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게 현명한 길이라 판단했다.


  밥과 과일, 약을 쟁반 위에 가지런히 올린 뒤 방문을 열었다. 그때마다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도 안쓰러웠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하루 사이에 반쪽이 됐다. 침대에 축 늘어져있는 아이는 마치 무더운 날 아스팔트 도로 위에 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같았다. 당장이라도 품 안에 안고 토닥이며 편안히 재우고 싶었다. 우리 딸은 13살이지만 여전히 엄마랑 함께 자고 싶어 한다. 억지로 아이 방에서 잠들게 하면 새벽녘에 어김없이 내 침대로 건너온다. 아파서 엄마 품이 더 그리울 텐데도 씩씩하게 잘 견뎌내고 있는 아이가 대견했다. 꼬박 이틀을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흘 차가 되니 열이 잡히기 시작했다. 귀와 목이 많이 아프다 하면서도 차려준 밥상을 말끔히 비워내는 아이가 기특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나는 삼시세끼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건 도대체 언제쯤 끝나냐며 투덜거리는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간절함과 감사의 시간이 되었다. 골고루 잘 먹고 빨리 이겨내길 애타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밥상을 준비했다. 식사를 마친 쟁반을 들고 나올 때면 힘든 시기를 견뎌낼 에너지를 충전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하고 고마웠다.


  우리 딸은 처음 겪는 일에 씩씩한 편이다. 유치원에 처음 가던 날이나 새 학기 첫 등교일이나 아이는 언제나 걱정하는 기색 없이 즐겁게 집을 나섰다. 두려움보다는 늘 자신감과 용기로 도전하는 아이의 성향 덕분인지 이번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도 아이는 당당히 이겼다. 오미크론과 아이의 한 판승이 끝나고 나니 다음 라운드는 내 차례가 되었다. 아침부터 목이 까끌거리고 머리가 무거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차례 더 받았다. 사흘 전과는 다르게 나의 검사 키트에는 두줄이 그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많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언제나 내게 햇살처럼 밝은 빛이 되어주는 아이는 오늘부터 내가 겪게 될 힘든 길을 환하게 밝혀줄 거라 믿는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을 앞장서서 올라선 아이처럼 나도 그 뒤를 따라가려 한다. 오늘도 나는 해바라기처럼 내 마음속의 태양을 바라보며 한 뼘 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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