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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Mar 31. 2022

나이 먹어서 사귄 친구들

미모사

나이 먹어서 새로운 사람 사귀는 건 너무 피곤해!


  옛 친구들을 만나면 늘 하게 되는 말이다. 이 말은 어릴 때부터 사귄 친구가 편안하고 좋다는 애정 표현이면서 동시에 나이 먹어서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는 게 힘들다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나이 들어서 알게 된 관계는 직장 동료이거나 아이 친구 엄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 동료와는 아무리 마음이 잘 맞아도 업무적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순간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버리기 쉽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 또한 만족스럽기 어렵다. 아이들끼리 친하다고 해서 엄마의 취향이 서로 잘 맞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에 진심을 다 하지 않게 됐다. 적당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만 하고 지내다 보니 그 결과 또한 늘 적당한 수준만큼이었다. 새로운 인맥이 늘지 않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외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만나도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오랜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키우랴 일하랴 각자의 생활에 바쁘다 보니 뜻대로 만나 지지가 않았다. 이런 내게 최근 들어서 마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로 글 친구들과의 우정이다.


  갑자기 자기 계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나는 2  온라인 영어 스터디 그룹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스터디 메이트들은 내게 공부 페이스를 유지하게 해주는 조력자 이상의  의미가 됐다. 그들은 영어 공부만 하는  아니라 각자의 SNS 공간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모습을 쌓아가고 있었다. 가족의 사진첩 또는 경험과 소비의 플렉스 공간으로만 SNS 사용해오던 나에게 그들의 공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괜찮은 친구들 곁에서 지내다 보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성장을 꿈꾸는 친구들 SNS 수시로 오가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며 나는 랜선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그림일기로 마음치유와 성장을 경험했다는 킨더줄리 카페 운영자, 줄리 님을 알게 됐다. 아이패드를 비디오 시청용으로만 사용하던 나는 줄리 님의 그림일기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매일 밤마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일상을 아이패드에 예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같지만 매일 기록하다 보니 뻔한 하루 안에서도 감사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일기를 킨더줄리 카페에 올려두면 나의 하루에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는 댓글이 달렸다.    없는 하루에도 수고했다며 토닥거려주는 일기 메이트들의 댓글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날이 많았다.


  여러 달 동안 우리는 그림일기로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하지만 한 페이지의 일기에 내 안의 많은 생각들을 다 쏟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 걸까? 어느 날 우리는 같은 주제를 두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10명의 엄마들이 진솔한 마음을 담아 쓴 글이 모여 한 권의 두꺼운 책 분량이 됐고, 얼마 전 우리의 이야기는 <뻔한 인생에서 숨은 나 찾기>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매일 밤 그림일기를 쓰며 뻔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 같지만, 그를 통해 나만의 아름다운 빛을 내게 된 소중한 경험담을 실은 책이다. 나를 비롯하여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엄마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책은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프로 작가들의 책에 비하면 어설프다. 하지만 한 편의 글로 나에 대해 소개하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험은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됐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 과정 중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었고, 돌아가신 엄마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소식이 끊긴 옛 친구에게 마음으로나마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자세히 알아가는 시간은 글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솔직하게 소개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 또한 친구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그녀들과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매주 한편씩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서로의 인생사를 들려주고 있다.


  랜선 친구들 덕분에 시작하게 된 글 쓰는 일은 요즘 나의 최애 활동이 되었다. 내 노트북 메모장은 요즘 나의 감정 해우소가 된 것처럼 답답한 날 내 안의 소리를 다 받아주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한 날 친한 친구를 만나 신나게 수다 떨다 오면 기분이 개운해진다. 그때처럼 나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말 대신 글로 쏟아낸다. 어떻게든 밖으로 끄집어내고 나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렇지만 나 혼자 글을 쓰면 오래가지 않아 외로움에 그만뒀을 게 뻔하다. 허공에 대고 혼자 소리치는 기분이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함께 글을 쓰기로 약속한 친구들이 있고, 또 브런치에서 활동하면서 새로 알게 된 글 친구들도 있다.


  글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 보니 얻을 수 있는 아주 큰 장점은 어른들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집에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어른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친구와 약속 시간을 맞추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고, 요즘은 사회 분위기 상 누굴 대면하고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글 친구들의 공간은 24시간 언제든 열려있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편안한 시간에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 그곳에서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자녀양육에 관한 걱정, 집안일의 고충, 어린 시절의 추억, 노후준비에 대한 걱정 등 다양한 어른들의 고민거리와 수다거리를 글로 나누고 있다.


  친구들의 글을 읽다 보면 글 안에 담긴 이야기 속에서 내가 모르고 살았던 그들의 지난 인생이 보인다. 문장에 스며든 그들의 결이 느껴지고, 가끔은 행간에 숨어있는 그들의 진심이 보이는 날도 있다. 나이 먹어 사귀는 친구는 찐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제 나는 그 공식을 깨버리기로 했다. 요즘 나는 글을 통해 대화 나누는 벗들과 진솔하고 깊은 우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글 친구가 있다는 기쁨에 나는 힘이 닿는 데까지 글 쓰는 일에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다.


  꽃 이모티콘을 그리면서 그리는 내내 참 기분 좋았던 날이 있다. 미모사 꽃을 표현하느라 노란 솜방울 같은 꽃잎을 동글동글 그리던 날이었다. 솜털처럼 따스하고 환한 빛처럼 밝은 미모사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 준다. 그 향 또한 은은하게 코끝을 스치며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그래서인지 미모사 향은 섬유유연제 향으로도 유명하다. 사람들이 옷을 입는 순간 편안함을 느끼게 되니까 이 꽃이 오랜 기간 섬유유연제 항료로 사랑받는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해본다. 글 친구들과 글 안에서 함께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며 서로에게 편안하고 은은한 향기를 전할 수 있는 사이가 지속될 수 있길 소망해본다. 영원한 우정을 기원하는 미모사의 꽃말을 나의 글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우리 우정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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