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몇 달 앞두고 있던 시기, 그 당시 내 마음은 매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육아휴직을 쓸 생각 때문이었다. 간절히 바라던 일을 목전에 두었을 때만큼 설레는 순간이 또 있을까? 워킹맘 세월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기쁨, 아이가 등교한 시간 동안에는 내 취미 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행복감. 이 두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은 두근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과 함께 첫 달은 참 분주했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 적응기 동안 하교를 일찍 하기 때문이었다. 하교 시간이 되면 학교 앞 풍경도 꽤나 북적거렸다. 행여라도 하굣길에 아이가 길을 잃지는 않을까, 오후 학원 시간을 잊고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엄마들이 교문 앞에 서서 내 새끼가 언제 나올까 기다리고 있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꼬마들의 무리 속에서 우리 아이 손만 꼭 잡고 집에 오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늘 곁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따라서 놀이터로 달려가곤 했다. 일하는 엄마라고 그동안 엄마의 스케줄에 아이를 맞춰야만 했던 게 미안해서, 나는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놀이터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다 들어오곤 했다. 아이한테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쥐어줬을 때보다, 방학이면 한 번씩 해외로 여행을 데려갔을 때보다 아이의 얼굴에는 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승진 좀 늦게 하면 어때? 지금 이 시간 아니면 언제 또 아이랑 이렇게 시간을 보내겠어?’
나는 휴직 기간 동안 아이와 함께 매일 작은 행복으로 우리의 일상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늘 불안했다. 내년에 복직하면 아이가 다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매일 씩씩하게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년에는 내가 이렇게 등굣길을 함께하지 못할 텐데 싶어 마음이 짠해지곤 했다. 나는 왜 풀타임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택했을까?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20대 중반에 선택했던 나의 직업에 대해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라도 프리랜서나 파트타임이 가능한 일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일 여력은 안 되니, 근처에서 뭐라도 가볍게 배울 수 있을만한 것을 알아보고 싶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동네 구립 문화센터에 들려 수강 안내 브로셔를 펼쳐봤다. 취미생활과 자기 계발을 위한 다양한 수업 목록 중 내 시선을 끄는 수업이 하나 있었다. ‘창업 지원 과정 - 플라워 클래스’. 수업명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어 고민도 없이 그 자리에서 수강 신청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주 1회,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구립 문화센터로 향했다. 가끔 꽃시장에서 꽃 한 단씩 사 와서 내 마음대로 화병에 꽂아 보던 게 전부였는데,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체계적으로 꽃꽂이 방법을 알아간다는 게 꽤나 흥미로웠다. 매주 다양한 꽃의 종류와 특징을 익히고, 상황과 목적에 맞는 꽃 어레인지 방법을 익히다 보니 나도 제법 꽃 전문가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수강했던 플라워 클래스는 창업 지원을 목적으로 개설된 수업이라서 수업을 여러 달 꾸준히 들은 수강생한테는 플라워 협회에서 인증해주는 수료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중에 꽃과 관련된 일을 할 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나는 수료증 취득 시험에 응시했다. 반년 넘게 수업을 듣다 보니 초급, 중급 플로리스트 수료증 2개를 받을 수 있었다. 나도 이제는 지금껏 해오던 회사원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어 기뻤다.
수료증을 손에 쥐고 난 뒤 나는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자리 검색을 할 때 나의 검색 키워드는 2가지였다. ‘꽃과 재택근무’. 운 좋게도 2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일자리 구인 공고가 보였다. 꽃을 매개로 기부 활동을 하는 스타트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을 통해서 사회 공헌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니…. 꽤나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재택근무 병행 가능이라는 업무 형태는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당장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입사 지원을 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다른 사람이 먼저 꿰차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며칠 후 서류 전형 통과 및 면접 안내를 받았다. 그 회사 대표는 내가 아이 엄마라 낮 시간에 자유롭게 시간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을 했는지 저녁에 회사 근처 카페에서 편안하게 면접 보자고 제안했다. 회사에 대한 첫인상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워킹맘에게 이렇게 배려해주는 회사를 나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지금껏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면접 보는 날, 일찍 저녁 밥상을 차려두고 단정한 옷을 갖춰 입은 채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면접 보러 가는 내내 기분이 참 묘했다. 10년 넘게 일하던 사무실이 있던 동네가 아닌 낯선 곳에서 사무적인 만남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참 신선한 느낌이었다. 나는 약속 장소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카페 사장님인지 직원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 모습도 멋있어 보였다. 내가 하던 일과는 다른 유형의 일을 하는 사람, 답답해 보이는 사무실이 아닌 아늑하고 멋스러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 보였다. 남의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뻔히 알면서, 그 순간에는 그냥 다 남의 것이 좋아 보였나 보다. 잠시 후 카페 문을 열고 한 여성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카페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나랑 비슷한 나이이거나 한두 살쯤 더 어려 보이는 그녀가 왠지 오늘 나를 만나러 온 회사 대표인 것 같았다. 나랑 눈이 마주친 그녀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OOO님 이세요?”
마치 소개팅을 하는 것 같은 설레는 기분으로 면접이 시작됐다. 아니, 면접이라기보다는 그냥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나처럼 꽃이 좋아서 옛 직장에서 사무실 근처의 꽃시장을 종종 찾아다니다가 지금은 자신만의 회사를 차린 젊은 스타트업 대표였다. 게다가 그녀도 아이 엄마였다. 나와 그녀 사이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화제가 여러 가지 있었다. 꽃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대기업 생활의 고충, 워킹맘의 고민거리 등으로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넘나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회사를 차리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니 나와는 고민의 차원이 다른 분이었다. 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강한 사명감으로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모험에 도전한 그녀였다. 그녀의 모습 뒤에서는 금빛 후광이 반짝이는 듯 보였다. 이렇게 멋있는 사람 곁에서 함께 일하면 나도 서서히 물들어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합격 소식을 듣지도 않았는데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대표님께 이메일이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해온 경력과 무관한 새로운 분야에서 나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리고 나도 이제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런데 나는 대표님의 합격 안내 이메일에 바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그날 카페에서 느꼈던 그녀의 열정 가득한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히 재택근무라는 근무 형태가 매력적이고,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꽃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일을 택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남의 비즈니스에 내가 걸림돌이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과연 나는 꽃을 매개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다정함을 전달할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사명과 열정이 있는가?’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아이를 곁에서 잘 돌보고 싶고, 동시에 월급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근무 형태에 맞춰 직장을 바꾸려고 마음먹는 나 자신이 너무 속물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짧은 생각으로 쉽사리 직장을 바꿨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며칠 고민 끝에 나는 대표님께 정중한 거절의 편지를 보냈다. 아직은 내가 그분과 함께 일할만큼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지만 좋은 기회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물론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꽃에 관련된 그 어떤 업무 경험도 없어서 일과 살림을 병행할 만큼 능숙함이 내게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가슴속에 그 업무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열정이 없었다. 자본금이 많고 업의 경력이 길어 안정화된 회사라면 부족한 나를 직원으로 채용해서 나의 업무 능력을 키워달라고 부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게 베풀어준 만큼 나도 노력하고 성장해서 추후에 보답하면 되니까…. 하지만 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큰 뜻을 이루려고 시작하는 스타트업에 미숙한 내가 겁 없이 뛰어들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회는 또다시 찾아올 거라 믿는다. 그날을 위해 나는 내 안에 붉은 장미와 같은 열정을 한껏 품어본다.
나도 덕질 끝에 덕업 일치를 이루는 그날까지,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힘껏 달려보자!
열정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