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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Jun 23. 2022

미슐랭 스타 셰프의 요리를 맛보던 날

프랑스 여행

  유명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미슐랭 가이드가 시작된 곳이 타이어 회사 미슐랭(미쉐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티브이 광고에서 보던 하얗고 팔다리 울퉁불퉁하던 캐릭터, 미쉐린인가? 도대체 타이어와 레스토랑 별점이 무슨 관련이 있지? 설명을 조금 듣고 나니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에서 여행하는 운전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무료로 배포하던 여행 및 식당 정보 안내지가 바로 미슐랭 가이드의 시작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여행지와 맛있는 식당을 소개해주는 배후에는 고객들이 타이어를 더 자주 교체하게 만들려는 사업 전략이 숨어있었다는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간에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은 오랜 세월 동안 신뢰도 높은 정보로 인정받게 됐다. 최근까지도 엄격한 평가를 거쳐 맛과, 가격, 서비스 등 다양한 면에서 훌륭한 식당을 선정해서 별을 부여한다고 한다. 미슐랭 별(스타)은 최고 3개까지 부여될 수 있는데, 별의 개수에 따라서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식당

★★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식당


  미슐랭 별 2개 이상이면 그 집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갈 만하다니…. 당연히 미식의 나라, 프랑스로 여행을 간다면 미슐랭 레스토랑에 방문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여행을 떠나기 전에 파리에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검색해봤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레스토랑의 사진을 보는 순간, 여기는 내가 갈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 장소에 어울릴만한 격식 있는 옷을 차려입고 가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랑 둘이 여행 가면서 짐을 최소화하고 옷도 가볍게 입고 갈 계획이었는데, 한 끼 식사를 위해서 번거로운 준비를 해야 할까 싶었다. 그리고 레스토랑 사진을 보니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예리한 입맛을 가진 미식가도 아닌데, 혹시라도 갔다가 비싼 돈을 쓰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오면 속이 쓰릴 것 같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방문을 더 먼 훗날의 여행 계획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우리는 여행 도중 식사는 되도록이면 숙소나 관광지 근처에서 하기로 했다. 먹방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관광지를 즐기면서 발품을 덜 팔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슐랭 가이드의 취지와는 정반대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내가 한 일은 근처 갈만한 식당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구글 지도 어플만 켜면 인근 레스토랑 위치와 메뉴, 고객 평가까지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니스 숙소 근처를 살펴보던 중 La Merenda라는 레스토랑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평점이 꽤 높은데, 후기 내용 중 미슐랭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궁금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니스의 최고급 호텔로 유명한 네그레스코 호텔에 미슐랭 2 스타 레스토랑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셰프가 은퇴 후 니스 구도심에 작은 레스토랑을 차린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일부러 이 식당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도 아닌데,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인기가 많은 곳이라서 예약을 미리 하고 가야 하는데, 직접 찾아가서 예약해야 한다는 후기가 보였다. 식당이 숙소에서 멀지 않으니 지나가던 길에 한번 들려보기로 했다.


  니스 거리를 걷던 중 La Merenda를 만났다. 레스토랑 입구에 가려져있던 구슬 커튼을 조심스레 걷고 고개를 살짝 들이밀어 봤다. 작은 식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봤던 셰프 할아버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마른 몸매에 윤기 나는 은발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묶으신 셰프님은 굉장히 샤프해 보였다. 왠지 깐깐하고 진지하게 요리를 하실 것 같은 인상이었다. 바쁜 시간에 내가 괜히 영업 방해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살짝 긴장됐다. 할아버지는 내가 외국 여행객인걸 알아보시고 영어로 인사를 건네주셨다. 예약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번 주 저녁은 예약이 가득 찼고, 점심은 가능하다고 하셨다. 점심 식사만 해도 그게 어디인가? 미슐랭 스타 셰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지덕지했다.


  셰프님은 식당 안에 들어가서 노트를 가져오셨다. 손때가 묻은 노트의 사방 모서리는 닳아서 구부러져있었다. 그분이 내게 이름을 물어보셨는데, 한글 이름을 외국인이 단번에 알아듣고 쓰기는 힘들 것 같았다. 내가 노트에 직접 이름을 적어도 될지 여쭤보았더니 셰프님은 흔쾌히 내게 노트를 주셨다. 노트에는 날짜별로 점심, 저녁 예약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노트를 돌려드리며 마주한 셰프님의 온화하고 편안해 보이는 표정에 내 기분도 좋아졌다.


  “엄마, 저 할아버지 굉장히 친절하시고 관대하신 것 같아.”


  아이한테는 셰프님에 대해서 내가 사전에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유명한 셰프라는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의 눈에 비친 할아버지 셰프님의 모습이 인자해 보였나 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그분이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분인지 설명해줬다. 그리고 이틀 뒤 우리는 예약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깔끔하고 소박한 느낌의 카페 외관에 어울리게 내부도 굉장히 아담한 사이즈였다. 작은 공간 안에 테이블이 오밀조밀 붙어있어서 편안하고 조용히 식사를 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기 레스토랑인 만큼 정오가 되자마자 손님으로 꽉 찼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담소로 시끌시끌했다. 하지만 스타 셰프의 요리인데, 우리 돈으로 인당 3만원이면 식사와 음료 한잔까지 곁들일 수 있으니 대단한 기대를 하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홀 서빙 담당을 하는 남자 직원이 내게 와서 영어 메뉴 설명이 필요한지 물어봤다. 이곳은 그날그날 식재료에 따라서 메뉴가 조금씩 변경되고, 그날의 메뉴를 작은 칠판에 써두었다. 그래서 프랑스어 메뉴판 밖에 없는 듯 보였다. 바쁜 식사 시간이지만 직원은 성심 성의껏 내게 메뉴 설명을 해주었다. 고기 메뉴가 좋은지, 생선 메뉴가 좋은지 등 나의 선호 사항을 먼저 물어보고 간략히 설명하는 요령을 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친절히 메뉴 설명을 해주는 직원의 태도에 감사했다.


  샐러드 메뉴가 먼저 나왔다. 샐러드를 1 접시만 시켰는데, 아이와 내가 편히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작은 그릇에 나누어 담아주셨다. 작은 배려와 센스가 마음에 들었다. 눈에 보기에는 별거 아닌 재료들이었다. 루꼴라, 방울토마토, 리코타 치즈, 올리브가 샐러드 구성의 전부였다. 우리 집에서도 충분히 해 먹을 수 있는 샐러드다. 하지만 좋은 식재료에 간이 적당한 드레싱을 뿌려줘서 그랬을까? 신선하고 깔끔한 샐러드 맛에 첫 번째 메뉴부터 아주 만족스러웠다.



  메인 식사로 시킨 바질 파스타와 비프스튜가 나왔다. 바질 파스타는 고기 한점 없이 아주 깔끔해 보이는 초록 파스타였다. 그런데 한입 맛을 본 순간 우리 아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엄마, 이거 엄청 고급스러운 맛이야.” 초등학생 아이 입에서 고급스러운 맛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면 일단 성공적인 메뉴다. 생면 파스타에 진한 바질향이 느껴지고, 마지막에는 진한 쑥떡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맛이 느껴졌다. 진짜 쑥이 들어가지는 않았겠지만,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짧은 우리 모녀의 느낌은 이랬다. 보통 서양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간이 좀 짜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파스타는 적당히 짭조름한 것이 내 입맛에도 아주 괜찮았다.


  비프스튜 역시 맛있었다. 오랜 시간 고기를 정성 들여 푹 삶았는지, 아주 부드러워서 식감이 좋았다. 간간한 스튜와 곁들일 수 있도록 두부같이 생긴 튀김을 주셨는데, 담백하고 고소한 콩 맛이 나는 게 마치 쌀밥에 갈비찜을 함께 먹는 느낌이었다. 주문한 메뉴들이 모두 맛있어서 메뉴 설명을 해준 직원에 대한 고마움이 두배로 커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음식에 집중하게 되다 보니, 초반에 느껴졌던 레스토랑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식당에는 총 24명의 손님들이 있었다. 직원은 주방 직원 2명, 서빙 직원 2명이 전부였다. 좁은 공간에서 일시에 사람들이 식사 주문을 하게 되면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셰프님은 물론이고 직원들 모두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한결같이 친절하고 사방에서 주문하는 사람들의 요청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서빙해내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셰프 할아버지의 요리 솜씨도 훌륭했지만, 나는 이렇게 레스토랑 운영을 능숙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더 멋있어 보였다. 생각해보니 호텔의 2 스타 레스토랑을 담당하려면, 요리 실력은 물론이고 주방을 총괄하는 매니징 능력도 출중해야 가능할 것 같다. 호텔은 일반 레스토랑보다 가격대가 높은 만큼 손님들의 기대치도 높고 요구사항도 많을 테니까. 그걸 다 해내고 오랜 기간 2 스타를 유지하던 셰프 할아버지의 실력은 호텔 은퇴 후에도 줄지 않았나 보다.


  이곳은 음식과 서비스 품질이 훌륭하지 않았더라면 소란스럽고 좁은 식당으로 기억될 뻔했던 곳이다. 그런데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생기는 단점을 다 커버할 만큼 우수한 요리와 서비스 덕분에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약간의 친절을 더하기. 그리고 전체적인 프로세스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총괄하는 리더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내가 이날 식사를 하며 이곳의 셰프와 직원들을 보며 느낀 모습이다. 식당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다 마찬가지이겠지?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내 나라에 여행 오는 관광객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을 보며 마음속에 되새겨봤다.


  여행 사진을 둘러보다가 이날의 기억이 떠올라 이곳의 셰프, 도미니크 르 스탄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봤다. 이분은 호텔 은퇴 후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트렌드에 맞춰 식재료 온라인 마켓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는 기사를 보니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을 보여주시는 모습, 나의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운 경험과 만족을 선물해주시는 모습에 감사하다.


  “다음번 니스 여행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때도 꼭 셰프님의 요리를 맛보고 싶습니다. 그날은 어떤 메뉴가 준비되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그날까지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셰프님!”


 

+ 제가 찾아봤던 La Merenda의 예약 관련 이용 후기는 과거 정보였습니다. 제가 매장에 방문(2022.6월)해서 확인해보니 요즘은 매장 방문 예약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예약을 받는다고 합니다. 니스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곳의 계정 정보(@lamerendanice)를 남겨둡니다.


++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곳이니, 미리 현금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 젠틀하고 프로페셔널한 인상을 주신 셰프님의 모습은 레스토랑 인스타그램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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