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스트로메리아
꽃 쇼핑을 즐기다 보면 꽃을 고르는 데 있어서 나만의 원칙을 몇 가지 세우게 된다.
실내에 두기에 향이 과하지 않은 꽃 선택
자잘한 꽃잎이 쉽사리 떨어지는 꽃은 피할 것(집안이 지저분해지니까)
이왕이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꽃 구매하기
이렇게 3가지가 주로 내가 꽃을 살 때 주안점을 두는 것들이다. 예쁜 꽃을 감상하면서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진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돈 주고 사는 일에 있어서 이 부분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내가 참 좋아하는 꽃이 알스트로메리아다.
알스트로메리아는 나비같이 화려한 화형에 초록 잎사귀의 싱그러움이 더해져서 처음 보는 순간부터 참 건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꽃이다. 줄기를 보면 이 꽃의 건강미는 한층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굵고 튼튼한 줄기가 버팀목이 되어 주니 그 위로는 꽃송이와 이파리가 한가득 모여있어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알스트로메리아는 첫인상에서 싱싱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줘서 마음에 들뿐만 아니라, 다른 꽃에 비해 오래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보통 절화 꽃을 집에 사 오면 1주일 정도 감상할 수 있는데, 알스트로메리아는 매번 사 올 때마다 2주 이상을 두고 볼 수 있다. 예쁜데 수명까지 길다니! 누구한테 선물해도 참 좋을만한 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꽃에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꽃 이모티콘을 만들어 주변에 인사를 할 때마다 종종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나는 인사치레 정도로만 여긴 게 아닐까? 진짜 내 건강을 최우선으로 아끼고 보살피며 살아왔을까?”
부끄럽게도 내 대답은 ‘No’이다.
아이가 백일 무렵 되었을 때였다. 아침에 우는 아이를 안아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오른쪽 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억지로 팔을 올리려고 하니 팔뚝 속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찌릿찌릿 아팠다. 젖 달라고 빽빽 울어대는 아이를 쳐다보니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팔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건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아줘야 하는 어린 아기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모유수유를 하며 우는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아기띠를 메고 친정으로 향했다. 잠시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드리고, 근처 정형외과에 가봤다. 팔에 근육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기를 매일 안아주니 몸에 무리가 왔다고 했다. 팔뚝 근육막이 파열됐는데 접합 수술을 하려면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아이를 분유식에 적응시킨 뒤 다시 오라고 했다. 나는 6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곧장 회사로 복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반년 동안은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다짐했고, 그중 하나는 모유수유였다. 예기치 못한 일로 모유수유를 중단하는 일은 내 모성애에 스크래치를 내는 일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초보 엄마의 마음은 그랬다. 모유수유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나는 침술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찾았고, 침술 치료로 나의 근육막은 석 달만에 재생됐다. 그 후로 나는 운동부족이라고 나 스스로를 흉보면서도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않은 채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안아달라고 소리 높여 우는 아이 앞에서 팔을 올릴 수 없어 심난했던 그날의 일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출퇴근하면서 지하철 역을 도보로 오가는 게 움직임의 전부일만큼 운동을 게을리하던 나는 10년 만에 또다시 몸의 불편함을 느꼈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자판기를 치고 있을 때면 오른쪽 팔이 자꾸 저린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잠을 잘못 잤나 보다 생각하고 넘겼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팔뚝 근육이 쿡쿡 쑤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팔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억지로 팔을 들어 올리려고 하면 예전에 아팠던 같은 위치에 통증이 느껴졌다. 한번 아팠다 치료됐던 경험이 있었던 게 오히려 내게는 득이 아니라 독이 되었던 건지, 나는 바로 의사를 찾지 않았다. 예전에도 수술이나 약 처방 없이 침 몇 번 맡고 치유됐으니까, 이번에도 시간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내가 의사도 아니면서 어디에서 이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병을 키워가더니 몇 달 후 나는 정형외과, 틍증 의학과, 한의원을 순서대로 찾아다니며 아픈 팔을 치료하느라 고생했다. 이번에는 근육막 파열이 아니라 힘줄 결절 발생이라고 했다. 진작에 병원에 왔으면 더 빨리 나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뒤늦게 의사를 찾은 탓에 예전보다 치료 기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프면 병원을 찾아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당연한데,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는 건방진 생각으로 스스로를 더 혹사시킨 꼴이 됐다.
반년이 넘게 팔 치료로 병원을 다니고 나니 이제 정신 좀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도 오래 쓰면 고장이 나기 마련이고, 고장 난 물건은 고쳐 사용해야 한다. 내 몸도 마찬가지다. 40년을 살아온 몸이 마치 20년 살은 몸처럼 부드럽게 잘 굴러갈 리 없다. 내 몸에 삐그덕거리는 곳이 있으면 기름칠을 수시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건강검진 결과서를 집어 들었다. 3년 전부터 이상 소견란에 난소에 혹이 있으니 산부인과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문구가 반복됐다. 그런데 나는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문구보다는 ‘암과의 관련성은 낮음’이라는 말에만 눈길을 줬다. ‘암은 아니라니까 괜찮겠지….’ 건강검진 결과지에 적힌 여러 가지 정보 중에서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선택적으로 읽어본 뒤 그냥 덮어뒀다. 경제 서적에서는 투자를 할 때 확증 편향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늘 경고한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투자에 있어서만 조심해야 할게 아니라 스스로의 건강에 대해 살펴볼 때도 이런 오류를 방지하도록 애써야 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긴다고 하지만 건강은 다르다. 건강은 한번 잃으면 자산보다 훨씬 회복력이 낮다. 이제는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잘 들어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최근 한 달 동안 두 군데 병원을 다니며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지 상담 중이다. 몸이 아프다고 이렇게 요란하게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일보다도 건강관리에 관심을 두고 신경 쓰겠다는 지금의 굳은 의지를 박제해두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 내 기준에서 좋은 꽃은 싱그러운 모습을 오랜 시간 보여주는 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자신에게 한마디 해본다.
“건강이 최고!”
그냥 듣기 좋으라고 건네는 덕담이 아니라, 명심하고 실천하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날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