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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Mar 03. 2022

내 별명은 멍게였다.

핀쿠션

  꽃집에 가면 내 시선은 나도 모르게 색감이 예쁘고 모양새가 좋은 꽃으로 향한다. 엄마한테 매일 잔소리를 듣는 딸아이가 알면 펄쩍 뛸 일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겉모습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하는 엄마지만, 꽃 구매를 할 때만큼은 솔직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내 돈 내고 꽃을 살 때는 청순한 소녀처럼 여리여리한 꽃이나 생기발랄한 어린아이처럼 귀여운 꽃을 고른다. 그런데 가끔 꽃다발 선물을 받아보면 이게 꽃인가 싶을 만큼 괴기스러운 꽃이 포함될 때가 있곤 하다. 바로 핀쿠션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반짇고리에서 뾰족한 바늘이 잔뜩 꽂혀있는 바늘꽂이 쿠션을 본 기억이 있다. 이 꽃은 마치 사방에 바늘이 꽂힌 바늘꽂이를 닮아서 핀쿠션이라고들 부른다. 정확한 이름은 레우코스페르뭄이지만 기억하기 어렵고 긴 이름보다는 모습을 바로 연상시킬 수 있는 핀쿠션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정글 속에서 갑자기 거인처럼 쑤욱 자라나는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열대식물이 나오곤 한다. 이 꽃을 보고 있으면 나는 자꾸만 그 장면이 떠올라 눈살이 찌푸려진다. 핀쿠션이 독특해서 매력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내 눈에는 영 거슬린다. 아마도 핀쿠션의 울퉁불퉁하고 울긋불긋한 모습이 어릴 적의 나를 연상시켜서 그런 것 같다.


  중학교 때 내 별명은 멍게였다. 친한 친구들이 그냥 웃자고 지어준 재미있는 별명이 아니었다. 진짜로 내 얼굴에 멍게처럼 붉은 트러블이 잔뜩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춘기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생일대의 가장 못생긴 외모로 기억되는 시절일 것이다. 보통은 호르몬의 왕성한 분비로 여드름이 나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이다. 그런데 내 얼굴 트러블의 원인은 아토피였다. 요즘은 아토피가 소아부터 성인까지 많은 현대인이 달고 사는 만성 피부 질환이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 때만 해도 주변에 아토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나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입학 후, 2차 성징과 함께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얼굴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가렵기만 하면 나 혼자 괴롭고 말면 되니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렵던 피부는 점점 붉게 부어오르고 울퉁불퉁해져 보기 흉한 모습이 되었다. 피부과를 찾아가 봐도 그냥 일시적으로 피부 트러블을 가라앉혀줄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해줄 뿐 뾰족한 치료방법을 찾지 못했다. 낮이고 밤이고 따가운 얼굴 때문에 괴롭던 사춘기 소녀에게 어느 날 가슴까지 따끔거리게 하는 말이 있었다.


  “야! 네 얼굴 멍게 같아.”


  쉬는 시간 고개를 돌렸는데 뒷자리 앉은 아이가 내뱉은 말이었다. 저 멀리서 날 한번 쳐다보더니 키득거리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 창피하고 속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쉬는 시간이면 책상 위에 펼쳐진 책만 쳐다봤다. 공부가 좋아서 책을 본 게 아니었다. 누가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게 싫어 나는 되도록이면 남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의 수다 타임을 위해 50분 수업 시간을 견디는 학창 시절이었다. 그 시기에는 친구와 나누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쉬는 시간까지 참지 못하고 수업 시간에 쪽지를 접어 전달하다가 선생님께 들켜 혼나곤 하는 게 일쑤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남들의 시선을 끄는 행동을 일체 끊어버렸다.


  딸의 얼굴을 쳐다보면 나만큼이나 아프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인터넷 검색이라는 게 없던 시절에 갖은 인맥을 동원하여 아토피 치료에 관련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충청도에 살던 우리는 서울의 아토피 치료로 유명하다는 양방, 한방 병원을 여러 군데 찾아다녔다. 병원 치료도 시원치 않다 싶어 민간 치료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엄마는 어성초로 물을 수시로 끓여 내게 목욕물로 쓰라고 준비해주시기도 하고, 보습에 좋다는 로션을 찾아 멀리까지 찾아가 사오시기도 했다. 엄마는 당연히 도시락 반찬에도 신경 쓰셨다. 인스턴트 음식 대신 웰빙 반찬으로 싸주시느라 매번 반찬 준비에도 공을 들였다. 하지만 엄마의 갖은 노력과 정성이 무색하게 내 피부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나는 못생기고 흉한 얼굴을 하고 다녔다. 세안제 광고에 나오는 맑고 깨끗한 피부를 자랑하는 여학생들처럼 나도 평생 하루만이라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채 사춘기를 보냈다.


  사춘기가 지나가면 여드름이 좀 수그러들 듯 내 아토피도 성인이 되니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아예 깨끗하게 나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경험해서 그런지 예전보다는 살만해졌다는 게 속상한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 세월 동안 아토피에 대처하는 나의 노하우가 늘어서 이제는 많이 괴롭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피부가 가렵고 붉은 발진이 생기곤 한다. 그럴 때면 거울을 보며 혼자 가만히 최근 내 생활 습관을 되돌아본다. 밥 차라기 귀찮다고 빵을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던 내가 보인다. 인생이 재미없다며 술을 홀짝이던 나도 떠오른다. 얼굴에 보습제를 듬뿍 바르며 다짐해본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아토피가 이제는 내 몸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경고등을 내 얼굴에 켜주곤 한다.


  “너 조심해! 이렇게 계속 건강관리 안 하면 나중에 더 큰 병으로 고생한다. 빵 먹지 말고, 밥 해 먹어. 술도 줄이고….”


  지긋지긋하다 싶다가도 가끔은 이렇게 내게 사전 경고를 해주는 만성 질환이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자꾸만 붉은 발진이 뾰족뾰족 올라온  얼굴을 떠올리는 핀쿠션을 만나면 애써 외면해버린다. 그러나 일단  손에  꽃이 들어오면 측은한 마음에 소중히 아껴주고 싶다. 그래서 핀쿠션을  보이는 위치에 가장 돋보이게 꽃꽂이를 해준다.


  너도 남들 앞에서 화려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봐! 네게도 그런 날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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