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건 병아리하고 비슷한데 병아리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둥글잖아? 보통 병아리의 네다섯 배는 되겠는데?”
크기와 무게 그리고 생김새를 하나하나 확인한 앙켑세라가 녀석을 시스에게 돌려주었다. 잔뜩 긴장하여 보고 있던 시스는 겨우 안도했다.
“독수리 종류인가? 아니야, 너무 뚱뚱해. 어쨌든, 꼬마 레이디. 나는 글라키에사 가에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 편지를 쓸 거야. 공작이 거절한다면 이 녀석은 내 저택에 둘 수 없어. 알겠니?”
“알겠어요.”
“좋아. 그리고 저 녀석에게 추가되는 비용 중에서, 지금부터 공작의 답신을 받을 때까지의 금액은 선불이야. 공작이 새로운 비용이 추가되는 걸 거절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자, 어서 내. 아까 말했지? 계산은 확실히.”
앙켑세라가 시스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지금 당장 그 비용을 받아야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잠깐만요.”
시스는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들 중에 비용으로 내놓을 만한 것이 있을지 가늠해 보았다. 샬린에게 거의 다 빼앗기고 남은 게 뭐가 있는지.
방으로 가지고 올라온 짐 상자를 열어 뒤적거리면서 시스는 값나갈 만한 물품을 열심히 찾았다. 옷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물려준 반짇고리가 나왔다. 시스는 그것을 열어 보았다.
“이건 어때요? 비용이 될까요?”
손잡이에 금으로 장식을 넣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재봉가위를 들어 보이며 시스가 물었다.
“어디 보자.”
가위를 받아든 앙켑세라는 자그마한 확대경까지 동원하여 예리한 감정에 들어갔다.
“순금이고, 장식이 아주 정교하고 꼼꼼하고 아름다워. 보기 드물게 훌륭한 물건이야. 어머니가 물려주신 거니?”
“네.”
“아마 네 어머니도 누군가에게 물려받았을 거야. 꽤 오래된 물건이거든. 아주 호화롭고 날도 훌륭해서 조금만 손질하면 잘 쓰겠어. 그런데.”
앙켑세라가 가위를 반짇고리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 정도면 비용으로 충분할 줄 알았던 시스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시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했다.
“순금이라면서요. 그럼 비용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조심스러운 시스의 물음에 앙켑세라는 호탕하게 웃었다. 물정 모르는 아이의 순수함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오늘부터 해서 공작의 답장을 받을 때까지 저 녀석을 내 하숙생의 반려동물로서 용납하는 비용에 비해 가위의 값어치가 너무 크다는 말이야. 계산은 확실히 그리고 공정하게 해야 하는 거니까 꼬마 레이디. 협상을 하자고.”
“아, 그런 거였어요? 해요, 협상.”
시스는 마음이 놓인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단은 내가 이걸 받아 둘게. 그리고 글라키에사 공작에게 추가 비용을 청구할 때 비용 발생 시작 날짜를 오늘로 잡아서 청구하는 거지. 공작이 비용을 지불하면 이건 다시 너에게 돌려주기로 하고. 어때?”
“좋아요.”
어머니의 재봉가위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나머지 시스는 경쾌하게 대답하고 미소까지 지었다.
“자, 그럼 이 협상에 근거한 우리 거래를 문서로 남겨야지.”
앙켑세라가 약정서를 만들었다. 그녀와 시스 두 사람이 각각 서명을 했다. 앙켑세라는 두 사람의 서명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약정서를 둘로 찢었다. 그리고 한 쪽씩 나누어 가졌다.
시스는 반쪽짜리 약정서를 감명 깊게 바라보았다. ‘거래’라는 건 이런 식으로 하는 거구나. 무언가 중요한 걸 배운 기분이었다.
“아 그리고 꼬마 레이디.”
“또 뭐가 남았나요?”
“그 병아리도 아니고 독수리도 아니고 솜뭉치도 아닌 이상한 녀석 말이야. 이름을 지어줘야 하지 않겠어?”
겉으로는 무심한 척했지만 사실 앙켑세라는 녀석이 싫지 않았다. 크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었다.
“아, 그렇군요.”
침대 위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놀고 있는 녀석을 보던 시스가 마침내 체리 같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페로. 페로라고 부를 거예요.”
어머니의 이름 페로니아에서 따 온 것이었다. 시스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페로. 부르기 쉽고 듣기 좋은 이름으로 잘 지었네.”
앙켑세라도 알고 있었다. 시스의 돌아가신 어머니 이름이 페로니아라는 것을.
“자, 이제 아침을 먹어야지? 또 식당에 안 내려가고 여기서 먹을 거니?”
화제를 돌리고 시스의 기분을 전환시킬 목적으로 앙켑세라가 식사 이야기를 꺼냈다.
“네.”
시스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래로 사람에 대한 실망과 피로감이 많이 쌓인 상태였다.
“그럼 네 식사는 이리로 갖다 주라고 하지.”
식당으로 내려가기 전 앙켑세라는 옷을 갈아입었다. 산책용 옷을 벗고 우아하고 고상한 드레스를 떨쳐입고 방을 막 나서려는 그녀를 시스가 불렀다.
“레이디 앙켑세라. 같이 가요. 나도 식당에서 먹을래요.”
“좋으실 대로.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지?”
“그냥요.”
사실은 지난밤에 전망대 난간에서 마주쳤던 남자아이도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꼭 다시 보고 싶다거나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은 궁금했다. 밤눈을 맞으며 잠시 동안 슬픔과 쓸쓸함을 공유했던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시스는 식당 손님들로부터 대단한 이목을 끌었다. 새초롬하고 귀티 나는 인형 같은 시스에게 호기심을 품은 사람들이 저마다 말이라도 한 마디 시켜 보려고 안달들이었다. 다행히 레이디 앙켑세라가 모든 접근을 원천 봉쇄했으나 쏟아지는 시선까지 차단할 재간은 없었다.
그리 달갑지 않은 주목과 관심을 꾹 참고 견디며 시스는 일부러 느릿느릿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끝내 그 남자아이를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시스는 솜다리 여관을 떠났다. 그다지 아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밤의 짧았던 만남은 그저 스쳐간 우연 가운데 하나로 기억 창고의 구석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