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다리 여관과 솜다리 언덕 일대의 소유주는 실렌다 가문이었다. 현재 살아 있는 실렌다는 단 한 명뿐이었다. 테스티스 실렌다. 그녀가 몇 살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대리인이자 충실한 하인인 늙은 트라토르뿐이었다. 트라토르도 범상치는 않은 인물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입이 무겁고 행동은 신중했으며 조심성과 경계심이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사람들은 트라토르의 말을 통해서만 테스티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실렌다 가는 진즉에 대가 끊겼으며 테스티스는 트라토르가 내세운 허구의 주인이라는 둥, 트라토르가 테스티스를 죽여 없앴을 거라는 둥.
그런데 아주 드물게 테스티스를 만나봤다는 사람도 있었기에 음모론은 정설이 되지 못했다. 문제는 테스티스를 만났다는 사람들이 저마다 테스티스의 외모에 대해 다르게 묘사한다는 사실이었다. 혹자는 젊은 처녀, 혹자는 중년의 레이디, 혹자는 백발의 노파로 그녀를 기억했다.
“솜다리 여관의 주인인 테스티스는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트라토르는 솜다리 여관을 사고 싶다는 수많은 제안에 콧방귀조차 안 뀌는 사람인데 무슨 수로 솜다리 여관을 인수해? 그 언덕에 새 여관을 짓는 일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해.”
앙켑세라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시스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소하지만 근거 삼을 만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페로. 조그맣고 동그랗고 하얗고 이상한 새. 시스가 그 새를 주운 것이 바로 그 솜다리 여관에서였으니까.
“트라토르를 잘 구워삶아 봐야죠. 테스티스를 만나게 해 달라고.”
문득 시스에게 의뢰했던 첫 번째 임무가 떠올라 앙켑세라는 잠시 회상에 젖었다. 의뢰인은 부유한 바람둥이 기사였다. 그는 연인에게 썼던 연서를 몰래 빼내 오기를 원했다. 그의 연인은 유부녀였고 그의 마음은 이미 식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무언가 낌새를 챈 상황이었다.
앙켑세라는 어린 시스를 데리고 바람둥이 기사의 연인이었던 남작 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 다음부터는 시스의 몫이었다.
남작 부인에게는 시스 또래의 딸이 하나 있었다. 시스는 친근한 태도로 그녀의 호감을 얻어내고 그녀를 부추겨 남작 부인의 침실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에서 시스는 현기증으로 쓰러진 척했고, 남작 부인의 딸이 사람들을 부르러 간 사이에 연서를 훔쳐냈다.
바람둥이 기사가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연서는 화장대 서랍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남작 부인과 거리를 두고 있던 사이에 연서 보관 장소가 바뀌어 버렸기에 시스는 화장대 서랍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시스는 침착하게 자물쇠 채워진 보석함을 찾아냈고 긴 옷핀을 구부려 그것을 열었다. 연서는 거기에 있었다. 연서를 성공적으로 빼내온 경위를 묻는 앙켑세라에게 시스는 별것 아니었다는 듯 태연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날 앙켑세라는 자신의 방문 안쪽에 빗장을 덧댔다. 시스는 그야말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였다.
“참, 페로는 잘 있지? 내가 못 본 사이에 좀 커졌니?”
“잘 있긴 한데 몸집은 그대로예요. 여기 올 때 같이 왔으니까 바깥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왜 그렇게 자라지를 못할까? 정말 이상한 새라니까. 여전히 제멋대로고?”
이상하지만 몹시 귀엽기도 하지. 앙켑세라가 실소를 터뜨렸다.
“그럼요. 아, 저기 창밖에 왔네요. 제 얘기 하는 줄 알고 온 것처럼.”
창 너머에 흰 공처럼 떠 있는 페로를 시스가 가리켰다. 앙켑세라는 창가로 걸어가서 손을 흔들었다. 페로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몇 바퀴를 돌았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페로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앙켑세라는 시스에게로 돌아왔다.
“저어, 혹시 말이야. 찾고 싶은 마음 없어? 진짜 부모님 말이야.”
처음이었다. 앙켑세라가 시스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궁금하지 않아요. 그들도 버린 아이 따위 궁금해 하지 않을 거고. 내 엄마는 레이디 페로니아예요. 다른 가족은 필요 없어.”
“난 좀 궁금한데. 어떤 사람들이 시스처럼 독특한 아이를 낳았는지. 아기 때는 제법 귀여웠을 텐데 어떻게 버릴 수가 있었는지.”
‘독특한’이라고 말했지만 앙켑세라의 본심은 ‘특별한’이었다. 시스는 앙켑세라가 믿는 유일한 타인이었다. 말하자면 앙켑세라가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로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려 있다 해도 위에서 그 줄을 잡고 있는 이가 시스라면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시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 달갑지 않은 서늘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앙켑세라는 굴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꺼낸 얘기인 만큼 끝까지 가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잖아? 아기를 멀리 보내지 않으면 안 될,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든지.”
“이만 가 봐야겠어요. 저녁 식사에 늦지 않겠다고 말해 두었거든요. 그럼 텔룸으로 조심히 잘 돌아가세요. 레이디 앙켑세라.”
어느새 담담한 눈빛으로 돌아온 시스가 쾌활하게 인사하고는 모자를 고쳐 쓰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시스의 등에 대고 앙켑세라가 말했다.
“지급 증서 가지고 찾아올 날을 고대하고 있을게. 레이디 시스.”
앙켑세라 딴에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를 낸 거였지만 시스는 깨닫지 못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한 손만 슬쩍 들어 보이고는 계속 걸었다.
저택으로 돌아온 시스는 공작 가족의 저녁 식탁에 걸맞게 차려 입고 식당으로 갔다. 아직 저녁 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이었기에 시스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이었다.
“말한 대로 저녁 식사 시간을 지켰구나. 넬리사의 소개장을 들고 화구상에 갔었다지? 그래, 괜찮은 물건이 있던?”
다피넬의 목소리에 시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