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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검은 약

by 화진 Mar 14. 2025


 “당신이 부추긴 거야. 쉬운 방법이 있다는 말로 현혹하고, 어둠의 주술을 쓰는 데 필요한 주문과 소품을 일러줬을 테지. 그게 얼마나 사악한 건지, 어떤 희생을 가져오는지, 한 번 그 길로 들어서면 어떻게 되는지는 제대로 경고해 주지 않은 채로 말이야.”


 지긋지긋하다는 말투였다. 


 “선택은 네 아들이 한 거라니까.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네 아들 데세르, 요사이 꽤 건강해진 것 같지 않니?”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데세르가 기운을 차린 건 시스가 오고부터였어. 시스가 데세르에게 좋은 운을 가져와준 거라고.”


 말리티아가 소리 높여 비웃었다. 


 “다피넬. 정말이지 넌 여전히 어리석고 순진하구나. 사랑? 그런 무익한 감정 나부랭이가 인간에게 실질적인 힘이나 도움이 된다고 믿다니. 네 아들에게 힘을 준 건 나란 말이다. 결혼식이 있기 전에 내가 그 아이에게 검은 약을 먹게 했거든.”


 “검은 약?”


 다피넬은 얼굴이 납빛이 되어 비틀거렸다. 결혼식 날 데세르의 병세가 갑작스럽게 악화했던 까닭을 알 것 같았다. 병약한 그의 몸은 필경 말리티아의 검은 약을 감당하기 버거웠으리라. 그날 데세르가 쓰러졌던 건 그 약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말리티아의 검은 약은 나팔꽃 씨앗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약초에 그녀 자신의 피를 첨가해 만들었다. 그 약은 즐거운 기분과 신체의 활력을 북돋우고 환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환각의 당사자는 그 환각을 예지라고 믿지만 기실 그건 갈망하나 결핍된 것에 대한 장면이었다.


 검은 약은 사실상 독이라고 해야 옳다는 걸 다피넬은 일찍이 보니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복용으로도 의존성이 생기는 약이었다. 늦기 전에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정신적으로 말리티아에게 종속되는 동시에 몸에는 독성이 축적되기 때문이었다. 


 데세르가 왜 그토록 말리티아를 호의적으로 대하고 옹호하는지 다피넬은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 말리티아를 없애 버리면 적어도 데세르가 말리티아의 마리오네트로 죽어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터였다. 


 뒷짐을 진 다피넬은 단검의 손잡이에 댄 손을 떼지 않았다. 가죽을 감은 손잡이는 차갑지 않았고 오래 간직하고 손질해온 작은 무기는 손에 착 감겼다. 그러나 이 날붙이를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다피넬은 확신할 수 없었다. 


 마음의 날은 단검의 날만큼 충분히 벼려지지 못한 걸까? 기어이 감행한다면 일격으로 치명상을 입혀야 하는데. 그러자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게 좋겠어. 


 긴 식탁을 천천히 돌아 다피넬은 말리티아가 앉아 있는 쪽으로 갔다. 태연자약하게 행동했지만 심장은 끝도 없이 긴 계단에 떨어진 공처럼 튀고 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내 아들에게까지 그런 짓을 해선 안 되는 거였다고. 왜 그렇게 악한 거야? 어떻게 그렇게 변함없이 사악한 거야, 도대체가 당신은?”


 다피넬은 데세르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가 자신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어려서부터 꾸준히 흑주술의 반력에 노출되었던 여파가 자신의 몸에 남아 아이에게까지 미친 거라고. 


 그런데 이제는 말리티아가 그에게 검은 약까지 먹였다. 말리티아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데세르가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니 다피넬의 가슴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나야말로 왜냐고 묻고 싶구나. 왜 너희들은 다들 똑같은 질문을 하지? 보니타도 죽기 전에 그런 말을 했거든.”


 보니타, 아아 나의 보니. 보니타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선명하게 되살아나 다피넬의 눈시울이 젖었다. 


 다른 사람은 싫어. 네가 해줘.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며 보니타는 다피넬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자신을 죽은 자리에서 그대로 화장해 달라고. 


 포르투나 가의 온실에서 보니타는 죽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흑주술을 펼치고 나서였다. 보니타는 주술의 힘으로 말리티아를 자신과 함께 온실에 가뒀다. 그러고는 말리티아의 능력을 없애는 주문을 외웠다. 반력은 보니타 스스로에게 돌아오게끔 설계했다. 


 “시각의 차이야. 너희들은 나를 악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너희 같은 위선자들이 악이란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서 내가 악이라 치고 대답하자면. 악은 명료하고 선은 흐리터분하니까. 악은 사소하고 어설퍼도 악이지만, 선은 사소하고 어설프면 의심을 받지. 악은 즉시적이고 편리하지만, 선은 느리고 불편하지. 악은 단순하지만 선은 복잡하고, 복잡하다는 건 곡해를 받거나 왜곡되기 쉽다는 거지. 그리고 말이다, 세상에 완전한 선 같은 건 없단다. 모르는 척, 아닌 척하면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 안의 악을 묵인하며 살고 있지 않나? 그 묵인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즐기면서?”


 “궤변이야. 평범하게 선한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 그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이 안녕하기를 바라기에 서로를 배려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 그리고 보니타는 말이지, 보니타는 절대 선이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보니타가 널 죽였을 거야. 하지만 보니타는 널 죽일 힘이 있으면서도 널 죽일 마음이 없었어. 네가 우리를 낳은 여자여서가 아니라, 보니타가 세상 무엇도 훼손할 수 없는 선함 그 자체였기 때문에.”


 입가를 일그러뜨린 말리티아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네가 그렇게 믿는 것까지 말릴 생각은 없다.”


 다피넬은 말리티아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하지만 넌 네 손으로 보니타를 죽였잖아. 자기 속으로 낳은 딸을, 잔인하게.”


 “그거야, 나도 가장 뛰어난 흑주술사가 될 그릇인 보니타를 죽이는 건 아까웠어. 그런데 어쩔 수 없잖니? 죽여서라도 주문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면 내가 모든 능력을 잃고 허섭스레기가 될 판이었으니 말이야.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지. 보니타가 고작 너 같은 걸 지키겠다고 그런 일을 꾸미게 되었으니. 보니타의 이름을 걸고 단언할 수 있겠니? 보니타의 죽음에 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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