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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새벽 Jul 16. 2022

습관 훈련을 위한 "허들 낮추기"

지치지 않고 롱런하는 홈스쿨링을 위하여

 

 

 둘째가 걸음걸음마다 블루베리즙을 떨어트리고 다니는 아침이다. 그 덕분에 마음이 또 흔들린다.

 "선물아 이리 와보세요."

 입 주위에 블루베리즙 범벅을 하고 와서는(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인데 그때는 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엄마가 치우라는 곳을 순순히 치우는데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무엇이 내 마음을 또 조급하게 만드는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화를 내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조급증 때문이다. 아이가 빨리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조급함이다.


 홈스쿨링을 하며 훈육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적지 않다. 사실 아이들의 훈육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엄마의 마음이 어려운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 또한 훈육에 대해 배우면서 적용하는 기준과 원칙들은 높아져만 가는데 아이들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그 시간들 가운데 내 조급함의 열기를 식히고 좀 더 여유롭게 아이를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걸음들이 있다. 그 걸음들에 대해 오늘 이야기하려고 한다.



 문제가 많아 보이는 내 아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 걸까, 얘는 언제 행동이 고쳐지는 건지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아이와 부딪치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홈스쿨링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부모의 기준이 너무 높고 또 단시간에 교정하고자 하는 조급함은 엄마가 느끼는 심리적 허들을 높인다.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이 아이의 훈육 문제가 어렵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허들 낮추기"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 부모가 현재 갖고 있는 기준을 조금 낮추는 방법이다. 지향해야 할 기준을 낮추고 타협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걸어내야 할 걸음의 보폭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느끼는 부담감도 함께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부담감을 낮추는 방법이라는 면에서 '심리적 허들 낮추기'라고 이름할 수 있다.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방향으로 훈육에 임하면 홈스쿨링의 푯대를 향하여 지치지 않고 롱런하게 된다. 오늘은 아이들의 '습관 훈련'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5가지 팁을 제안하고자 한다.


아이의 습관 훈련에 대한
심리적 허들 낮추기 5가지 팁


 첫째, 한 번에 하나씩만 훈련한다.

 자녀양육서 좀 읽어봤다 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아이들의 습관을 훈련할 때에는 한 번에 하나씩만 훈련해야 한다. 당연한 거 아니냐 하는 분이 있을 것 같다. 나도 책으로 읽을 때에는, 혹은 들었을 때에는 당연하지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손댈 곳이 많아 보이는 내 아이의 하루를 보노라면 전부 다 고쳐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잔소리가 쌓인다. 한 번에 하나씩이 안된다. 이 소리 저 소리 다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꾹 참고 한 번에 하나씩만 훈련하자. 성벽을 쌓아나가듯, 벽돌을 한 장 한 장씩 쌓아올리듯 하나씩 훈련하자.


 엄마 눈에는 쉽게만 보이는 '기도손'이 안돼서 아이에게 잔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눈 감고 손 모아 기도하는 습관이 들지 않아 잔소리만 몇 년. 가정예배 때 이것부터 하자는 심정으로 기도손 훈련만 했다. 예배 태도에 대해 잔소리할 것은 너무 많지만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기도손 훈련만 했다. 몇 년을 잔소리해도 안되던 것이 단 몇일만에 기도손! 하면 손 모으고 기도가 끝날 때까지 눈 꼬옥 감는 습관이 들었다. 습관의 벽돌 한 장이 쌓이면 그다음에 새로운 습관의 벽돌 한 장을 그 위에 쌓는 것이다. 습관 훈련은 그렇게 한 번에 하나씩 하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너무 중요하다. '일단 이거 하나부터 시작하는 거야.' 하는 여유로운 마음이 심리적 허들을 현저하게 낮춘다.


 둘째, 당장 고칠 생각보다 지금은 '연습'부터 한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지금 바로 고칠 생각을 내려놓자. 성급하게 생각하는 대신 지금은 딱 10번만 연습하자. 10번이 아니더라도 정한 횟수만큼만 좋은 습관을 연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훈련에 임해보자.


 남자아이들은 흥분하면 엄마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다. 몇 번을 눈앞에서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 둘째에게 화가 나려는 찰나가 있었다. 타임아웃을 해야 하나 싶다가 "네, 엄마" 연습을 그 자리에서 10번을 했다. 10번이라니 너무한가 싶지만 정작 아이는 너무 즐거워한다. 노는 시늉을 하다가 "선물아" 부르면  "네, 엄마!"하고 달려오는 단순한 연습인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10번을 채운다. 10번이 끝난 후에도 조금만 더 하자고 조를 정도.


 엄마가 지금 당장 아이의 행동을 고칠 수 없다는 것만 받아들여도 엄마가 느끼는 심리적 허들은 많이 낮아진다. 대신 푯대를 향하여 걷기를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지금은 딱 10번만 연습'하는 것이다. 화내는 것을 잠시만 뒤로 미루고 기억하자! 지금은 고칠 시간이 아니라 연습할 시간이다.


 셋째, 용납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엄마가 아이의 문제에 대해 인식할 때 어떤 영역의 문제인지 구분해야 한다. 용납해야 할 문제인지, 이해시켜야 할 문제인지, 아니면 선을 그어줘야 할 문제(또는 훈련해야 할 문제)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용납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것만 인식해도 아이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부담감은 크게 감소한다.


 어떤 행동이 용납해야 할 영역에 속하는 문제일까.

 1) 아이가 실수로 한 행동인가? 화를 뒤로 미루자. 쏟거나 엎거나 동생을 넘어트렸거나. 모든 것이 배워야 할 일 투성이인 우리 아이들에게 실수를 통해 배울 기회를 허락하자.

  2) 아들의 생물학적 특성인가? 혹은 딸의 특성인가? 화를 뒤로 미루자. 화를 안내도 되는 영역이다. 아들은 책을 읽을 때, 몸놀이를 하느라 과도하게 흥분했을 때, 뭔가 만들고 있을 때 등등 과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정말 엄마의 목소리가 안 들리기도 한다. 엄마가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아들의 특성이고 아이의 창조섭리적?인 특성임이 머리로 이해가 된다면 가슴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화내지 말고 인내해보자.

  3) 평상시의 양육관과 크게 부딪치는 부분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용납해주자. 자잘한 거절감은 아이에게 큰 결핍감을 만들어 낸다. 소탐대실하지 말고 작은 것을 내어주고 큰 것을 얻어내자.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해서 이해시켜주기만 해도 행동이 수정되는 영역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굳이 행동 수정을 위해 훈련까지 시키지 않아도 된다.

 첫째가 입에 침 거품을 머금는 장난을 치던 때가 있었다. 보기에 지저분해 보여서 여러 번 야단을 쳐도 고쳐지지 않았는데 똑같은 행동을 하는 다른 형의 모습을 보더니 단번에 고쳐졌다. 말로 설명한 경우는 아니지만 굳이 야단치고 훈련하지 않아도 자신의 행동을 타인의 시각에서 보게 되자 저절로 고쳐졌다.


 용납할 것은 용납하고, 설명해서 이해시킬 문제는 설명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을 그어줘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훈련을 하자. 이 경우에도 아이에게 용납할 문제와 용납이 되지 않는 문제가 따로 있음을 단호하게 설명해주기만 해도 문제행동이 수정되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에도 역시 지금은 고칠 타이밍이 아니라 연습할 시간임을 기억하며 연습을 시켜주면 될 일이다.

 

 넷째, 말로 하지 말고 몸으로 도와주자.

 말로만 반복적으로 지시하다 보면 아이들이 말을 너무 안 듣는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아이들 습관 훈련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높아지는 것이다. 말로 지시하는 편이 쉬운 것 같지만 몸을 움직이는 편이 훨씬 쉽다. 내가 도와주지 뭐 하는 생각은 엄마의 심리적 허들을 한층 낮추는 효과가 있다.


 계속해서 싸우는 형제에게 "사이좋게 놀라"는 반복적인 지시는 행동 수정에 효과가 적다. 아이들 옆에서 지켜봐주며 놀이 훈련을 시키는 편이 아이들 습관 훈련에도 가시적인 효과가 있고 엄마의 입장에서도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치우라, 치우라 하지 말고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이가 다 놀 때쯤, 아이가 간식을 다 먹을 때쯤 바로 치우도록 도와주는 일 역시 말로만 가르치기보다 몸으로 가르치는 일이라 더 효과적이다.


 다섯째, 사랑과 공감의 지름길 위에 있자. 

 일에는 늘 순서가 있다. 지금 내가 사랑을 부어주어야 할 때인지, 사랑이 쌓인 기반 위에 훈련을 시켜야 할 때인지 생각해보자. 사랑이 먼저 갈 때 아이의 습관 훈련에 들여야 할 품은 반 이상으로 줄어든다. 사랑과 공감이 항상 지름길이다.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야단치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같이 놀아주자. 같이 놀아주는 일이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일이라는 면에서 야단치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또한 놀아주면서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면 습관 훈련에 대한 부담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내가 화가 나있는 상태인가? 뒤로 물러서자. 지금 하는 훈육의 동기가 사랑이 아닌가? 그저 내 몸이 힘들어서 하는 꾸지람이라면 뒤로 물러서도 된다. 화내지 않아도 된다. 야단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아무것도 못 배우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공감이 아이에게 늘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엄마. 선물이가 내가 하고 있는데 뺏었어."

 글을 쓰고 있는 방금도 아빠와 동생과 놀고 있던 첫째가 화난 얼굴로 나를 향했다. 이미 첫째의 말 이면에 있었을 상황, 첫째의 말과는 다를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지만, 그래서 구구절절 동생과 놀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연습시킬 수 있지만 그저 안아주었다. 그냥 안아주는 것이 첫째에게는 더 많은 것이 전달되기 때문이고 그저 안아주는 것이 나의 말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벌써 웃으며 다시 놀고 있다. 엄마가 할 일이란 어떤 면에서 얼마나 단순하고 큰 힘을 들일 필요가 없는 일인지. 심리적 허들감을 마구 낮추어 주자.



 홈스쿨맘들이 아이들의 습관 훈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부담감을 갖고 있고 또 그것 때문에 홈스쿨링을 지속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블루베리즙 그게 뭐라고 오늘도 너무 쉽게 화의 사슬에 묶일 뻔했다. 주님이 가르쳐주셨던 한 걸음 한 걸음을 다시 기억하고 결박처럼 느껴지는 화의 사슬로부터 자유함을 얻기 위해 오늘의 기록을 남겨보았다.


 주님이 엄마에게 자녀 양육에 관하여 명하신 것은 크고 어려운 걸음들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꾸준한 한 걸음 한 걸음들이면 된다. 크고 어렵게 성큼성큼 걷는 걸음보다 작지만 꾸준한 걸음들이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이고 멀리 간다. 습관 훈련의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허들감을 낮추자. 아이들의 습관 훈련에 대해 심리적 허들감을 낮출 수 있는 팁에는 여기에서 논한 다섯 가지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허락하신 작지만 꾸준한 한 걸음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주님이 풀어주신 오늘의 글로 주님의 자녀인 엄마들이 자유함을 얻어 기뻐하며 나아오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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