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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새벽 Jul 11. 2022

긍정적인 미루는 습관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훈련

 미루는 버릇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제자리걸음 하게 하는지 혹은 퇴보하게 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시리라 믿는다. 그런데 '긍정적인' 미루는 습관이라니. 제목을 보고 응? 하진 않으셨을까 싶다. 긍정적인 미루는 습관이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덜 중요한 가치를 뒤로 미루는 것을 통해 우선순위에 있는 가치를 미루지 않는 습관이다.



 디바이스를 통한 끊임없는 알람 때문에 소중한 덩어리 시간이 자잘하게 부서지고 시간 부스러기를 끌어안은 채 시간이 부족해, 시간이 없어를 외치곤 했다.


 시간이 쪼개지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주의가 점점 더 산만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고 사야 할 물품을 갑자기 검색하기도 하고. 디바이스에 정신이 팔리는 문제를 넘어서 책을 읽다가 이 일을 하고, 저 일로 갑자기 전환하기도 하는 등 결국 집중해서 끝마친 일이 없었다. 투두 리스트를 지워나가며 집중해서 일을 했다면 투두 리스트에 머무는 시선은 점점 짧아져야 하는데 이것도 못했네, 저것도 다 못했네 하며 시선이 불안정해지는 것이 안타까운 결말이었다.


 더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러한 악순환의 피해를 자녀들이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부산스럽게 이 일 저 일을 하노라면 아이들은 엄마를 부르며 끊임없이 방해하고(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아이들의 필요보다 더 급하게 느껴지는 내 일을 처리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지치지 않고 롱런하는 홈스쿨링을 논하는 곳에서 갑자기 '미루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미루는 연습을 통해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습관에 관한 많은 책에서 나쁜 버릇을 고치려면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고들 이야기한다. 고치고 싶은 습관 대신 새로 만든 좋은 습관을 선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보았다. 아침부터 커피 마시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정수기 옆에 티와 예쁜 컵을 놓아두고 커피를 멀리하려고 얼마간 노력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새로운 습관을 선택하는 것 자체의 허들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미루는 연습이 습관을 고치는 데 있어서 더 효과적이다. 허들이 높지 않아서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홈스쿨러를 위한 긍정적인 미루는 훈련 4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디바이스 대신 할 일부터. 

 디바이스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이런 어플도 깔아보고 미디어 금식도 해보고 스크린 타임을 찍어보기도 했다. 그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단순히 폰 사용량을 줄여야지 하는 식의 연습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허들이 낮고 훨씬 신나는 연습 한 가지. 무의식적으로 폰에 손이 가려고 할 때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하는 것이다. 엄마들이 집안에서 쉬는 행위가 불가능한 이유는 해야 할 집안일이 눈앞에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습관을 긍정적으로 활용해보자. 폰으로 가는 손을 멈추고 눈을 들어보면 적어도 SNS 알림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급한 집안일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디바이스를 미루고 눈에 보이는 할 일부터 선택하는 것이다. 집안일 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우선순위의 일들은 많다. 자녀의 필요가 될 수도 있고, 남편의 필요 또는 나의 필요에 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번씩, 두 번씩 디바이스를 미루고 그 외의 것을 선택하다 보면 디바이스를 멀리하고 시간을 벌고 있다는 성취욕에 신이 난다. 결과적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폰 사용량을 급격히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디바이스를 미루고 눈앞에 보이는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노라면 어떤 때는 너무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무엇이 더 우선순위에 있는 일인지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디바이스부터 선택하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가만히 앉아서 무엇이 더 우선순위에 있는 일인지 따져보는 연습을 할 시점이다. 그러한 연습을 통해 일상이 우선순위 중심으로 재편되어갈 것이다.


 둘째, 다른 할 일보다 지금 시작한 일부터.

 긍정적인 미루는 훈련 4가지 중 두 번째는 지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중에 뭔가 더 중요한 일(더 중요하다고 느껴질 뿐인 일)이 생각나서 다른 일로 옮겨가는 일을 멈추자. 방금 떠오른 일이 정말 긴급하고 중요한 일인지는 조금만 미뤄보면 저절로 결론이 난다. 지금 시작한 일을 계속 진행하다 보니 잊어먹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내가 마감 날짜를 착각한 것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다른 일을 할 때 같이 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숙성시키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아까 올려둔 국이 끓어 넘치는 정도의 긴급한 일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미뤄도 되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독서 신학'의 저자는 디바이스의 폐해 때문에 책을 읽을 때의 집중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책 한 챕터를 단 한 번의 멈춤 없이 온전히 집중해서 읽었는데 요즘은 몇 번씩 다른 일이 떠올라 주춤주춤 하게 된다고. 과거의 나는 어떠했는지 비교해보자. 과거의 온전한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방금 떠오른 일은 잠시 미뤄두고 지금 시작한 일에 집중하자.


 셋째, 내 할 일보다 자녀의 필요부터.

 엄마의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어쩌면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인 경우가 많다. 그 긴급성을 따져볼 때 말이다. 교직에 있을 때 선배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이 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집이 더러워서 거지 소굴 같더라도 아이들과 노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더러운 것은 내일 치워도 된다고. 어쩌면 너무 당연하지만 선택하기 힘든 상황임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미혼인 나에게 그런 조언을 미리부터 해주셨다.


 집안일은 그렇다 치자. 집안일은 잠시 미뤄두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 개인 시간은? 내 시간이 없으면 내가 죽을 것만 같고 나는 왜 이렇게 내 시간 없이 혹사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간보다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중요한 시간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물론 개인 시간을 통해 활력을 얻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내가 내 몫 챙기기를 내려놓고 자녀의 몫을 챙길 때 내 몫은 주님이 책임져주신다. 나의 계획으로는 확보할 수 없는 의외의 시간들을 챙겨주신다. 또한 짧은 시간으로 충족되게 하시기도 한다. 첫 편 "엄마의 시간"에서도 나눴지만 개인 시간으로 긴 시간을 가끔 갖는 것보다 적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갖는 편이 엄마의 정신 건강에 이롭다. 그리고 설사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선택하기 위해 오늘 하루 종일 내 시간이 없었더라도 괜찮다! 오늘 하루를 가장 중요한 가치들로 채웠고, 다른 무엇보다 자녀를 선택하는 엄마의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본 하루였을테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집안일도 포함된다.)은 잠시 미뤄두고 자녀의 필요부터 채우는 선택을 하자.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일부터 선택해야 중요한 가치를 중심으로 일상이 재편되고 가정 안의 질서도 세워질 것이다.


 넷째, 정말 해야 할 일도 가끔은 미루자.

 정말 해야 할 것 같은, 우선순위가 높아 보이는 일 조차도 휴식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하고 또 어떤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안식의 시간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도 여섯 날을 열심히 일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심으로 모든 창조를 다 이루셨다. 안식이 모든 창조 안에서 필히 이루셔야 할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할 일 다한 다음에 쉬자! 가 아니라 쉬는 일조차 모든 해야 할 일 가운데 속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 정말 휴식이 필요한 상태인지, 단순히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 건지는 내가 아는 나의 한계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평균적으로 이 정도의 일정은 감당했던 사람이라면 지금 쉬고자 하는 마음이 나태한 데에서 출발한 마음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넘어가면 많이 지쳤던 기억이 있다면 과감하게 할 일을 미루고 자녀와 함께, 가족과 함께 안식을 선택하자. 그것이 우선순위에 있는 일을 위해 낮은 순위의 일을 미루는 일이 될 것이다.



 전편에서 홈스쿨링의 이정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홈스쿨링을 선택하게 된 첫 마음이 홈스쿨링 여정의 이정표이자 푯대가 된다는 요지였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그 글과 부딪치는 일들이 일상에서 일어나 네가 과연 그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공격이 들어온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연약하기 때문에 쓰시고 나 또한 주님이 쓰시는 이 글의 독자임을 알기에 꿋꿋이 써 내려간다.


 나의 첫 마음은 "관계"였고 그것이 내가 걷는 길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고 전편의 글을 썼다. 그런데 그 글을 쓸 즈음 둘째와 계속 삐걱거리는 일이 있었다. '관계'가 나의 이정표라면 나는 여기서 잠시 해야 할 일을 멈춰야 할 타이밍이다. 문제가 생겼다는 적신호가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걷고 있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인이다. 내가 얼마나 과업 중심의 엄마였는지 반성하고,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주님이 가르쳐 오셨던 것을 스스로 정리하고자 오늘의 글을 썼다. 다시 청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더 중요한 일을 선택하기 위해 덜 중요한 일을 잠시 미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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