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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 Aug 18. 2020

퇴사 : 고통만큼 의미있던 인생의 한 장을 간직하며

드디어 퇴사했다. 


목요일까지 근무를 하고, 금요일 이사를 했다. 토요일에는 친구를 만났고, 일요일에는 하루종일 집에서 핸드폰이랑 킨들만 들여다봤다. 흐트러진채로 음악을 듣고. 


2017년 2월부터 2020년 8월까지 3년 반.


정말로 이 스테이지가 끝났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보다 아쉽고 슬픈 건 없다. 그건 아마도 그 동안 정말 아팠고, 정말 후회없이 완전히 노력했기에, 그리고 또한 방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기뻐했기에 그런 것일테다.


다만 왜인지 모르게 헛헛한 이 마음은 내가 최선을 다하고 애정을 담았던 그 시기를 보내는, 너무 아프면 사랑이 아니라지만 나에게 너무나 밀접했고 나의 많은 것을 구축해냈던 그 시기를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보내는 마음일 것이다. 약간은 소강상태에서 헛헛한 마음을 가진다해도 그건 강도높은 행복을 막연히 기대하는 미생의 마음일테다. 그저 이 조용함에 익숙치 않을 뿐이겠거니, 덤덤히 받아들여본다.






지난 3.5년간의 기간은 내 인생의 새로운 스테이지였다. 꽤 오래 만나던 사람과는 헤어졌고 기쁨을 함께하던 친구들은 본국으로 떠났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었지만 즐거움도 슬픔도 많았던 한 때였다. 


직장생활에 병행했던 박사과정 준비는 꽤나 고됐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일을, 천직이라 믿는 일을, 최선을 다 했는데 할 수 없게되면 어쩌지?' 열망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삶을 그리는 것은 유한한 우리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집 때문에, 이어지는 고됨과 질문에 몸도 마음도 많이 다쳤다. 이제서야 생각컨데 내가 가지고있던 자본 수준에서 통상적으로 얻기 어려운 성과를 품에 안고서야, 내가 지나쳐왔던 그 시간들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은 아니없음을 슬쩍 짐작해본다. 성공의 조건에 대해 점차 깨닫는 과정은 장님 외골수가 눈을 뜨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성공과 관계에 대해 이어져온 질문들을 하나씩 해결해왔던 것들은 나의 내공이 되었다. 때로 동동거리고, 때로 이것이 정말로 포기해야하는 순간이라고 믿겨지던 그 순간들을 하나씩 넘어온 것이 나의 부분부분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래, 돌이켜보건데 나는 성공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추동이 되어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그 당시 스스로가 원하던 모습에서 그만큼이나 떨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배움과 터득의 과정을, 결과를 알지 못하고 걸어가는 것은 어려웠다.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위로 태양이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있네. 이 가슴속에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샤이닝 - 자우림


지난 시간동안 연구적 커리어는 정말 내 분야와 주제에서 만족스럽게 쌓아왔다. 물론 가장 큰 기관에서 저명한 분들과 작업하는 것은 연구 뿐 아니라 리더의 자질, 성품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타고난 환경이나 선호하던 사람들 외에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안정적인 사랑에 대해 배웠다. 힘들 때마다 아주 일관적이고 예측가능하게 옆을 지켜주고, 비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준 분들 덕분에 나는 사람을 더 애틋하게 보고,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배려하며 조금 더 너그럽게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줄 안다고 변함없이 배려받고 사랑받을 때의 감각들이 내 안에 충만히 차올랐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일이란 이익이 얽히고 때로는 지고 이기는 게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함과 자기완결성에 대한 뒤틀린 아집을 가진 이들 덕분에 말과 행동에 깃든 의도를 고려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때로 사랑이나 증오하는 마음이 지나쳤던 경험을 통해 상대가 욕망과 고통을 지닌 하나의 분리된 개체임을 진심으로 존중하게 되었다. 사람이 거대한 심리적 기제일 뿐만 아니라 그저 기분과 감각에 따라 날카로워지기도 너그러워지기도 약해지기도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조금 더 면밀히 맞춰주는 것이 최고의 갈등예방책임을 깨닫게된 것이다. 그건 내가 미처 몰랐던 배려의 가벼운 속성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인연을 시간 속에 흘려보내며 인간관계와 갈등에 대한 해결방법을 터득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마음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인연에 대한 씁쓸함이 더 나은 미래와 관계에 대한 희망의 이면에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막 종결된 이 단계가 고통이었냐면, 그렇다. 나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불편했고, 현실에서 이상으로 성장해내는 건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격렬한 감정은 우리를 밖에서 안으로 인도하고,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과 정신의 온 힘을 다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우리는 폭발적으로 변태하여 휴-하고 훌쩍 멀어진 지난 모습을 어느새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원래도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도와주는 분들은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주셨고 그 분들의 호의나 지성의 나눔은 내게 울컥하는 기쁨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옥스퍼드에 합격하고 나는 조금 더 가시적인 인정을 받게되었다. 


새로운 곳을 나아가면서, 성공과 관계에 대해 내가 지난 몇 년간 이루고자 한 것을 대충 이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뤘기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하고 치열했던 만큼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드디어 한번 더, 나는 지금의 세계도 사람도 떠나가 새로운 삶의 단계를 시작할 것이다. 끝은 시작과 이어져있기에. 동시에, 성장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그 애정하는 무엇도 필연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며 아쉽기도 하다. 많은 기쁨과 고통의 순간들은 기억으로 남게되고, 앞으로 펼쳐진 상황과 사람은 어떤 것일지 알 수는 없다. 비록 최대한 내 발치의 다채로움을 느껴본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 길을 천천히 걷게된다 하더라도, 지금은 나름은 애정을 들여 가꾼 세계와 시간과 사람들을 훌쩍 떠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 스테이지의 끝에서도 나는 이별을 고하며 스쳐지나쳐감을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내 삶의 시간을 함께 흘러가며 웃음과 기쁨과 눈물을 나눠가졌던, 새로운 면면을 내 세상에 들여와준 이들을 평생 나의 일부로 삼아두고자 한다. 나의 깨달음, 기억, 축적된 감정들은 나를 구성하며 평생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치열하게 울고 웃으며 고민했던 것들, 끊이지 않는 삶의 문제를 풀고 또 풀던 나의 추동과 그러한 욕망을 검열하던 시간도 나의 일부가 되어 평생 함께할 것이다. 또한 지난 날의 깨달음을 발판삼어 앞으로 더 우호적이고 선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내 곁엔 내가 있으니,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가는 것만은 아니기도 하다.


지난 날 성장의 나날들 그러나 많이 괴로웠던 그 인생의 단계가 끝난 지금. 새로운 세계와 사람으로 나아가는 지금. 조금 더 풍성해진 나의 세계를 의식적으로 더 긍정적으로 느껴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다. 나를 믿고 힘! 


그 동안 수고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원했던가보다. 원했던 것을 이루다니 대단한 걸. 고생 많았어.


앞으로도 이 생경한 고통과 인내와 기쁨과 애틋함과 배려함과 안정감을 내 속에 지닌채로 새로운 생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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