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안전함으로 믿게 되는 우리들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인생도 그만큼 수월해야 한다고 믿는 듯이 생각하게 되는 나를 보며 사는 것에도 초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늘 변한다. 계속 변하는 세상과 변하는 내가 만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자꾸 이미 알고 있는 것들, 겪어본 것들에 기대어 지금도, 앞으로도 쉽게 살려고 하는 내 안일함이 오히려 날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귀찮은 게 싫다며 더 이상 삶에 직접 뛰어들어 온 마음으로 사는 것을 미루게 된다. 맨 마음이 던져졌을 때 때론 너무 아팠고, 쉽지 않았고, 생각과는 달랐던 기억이 내가 갑옷처럼 입은 가면과 회피를 정당화시키는 것 같다.
사실 전부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고 겁 없이 준비 없이 일단 시작했던 모든 일들이 내게 좋은 경험만 남긴 것은 아니다. 때론 좋다가도 생채기를 남겼고 그 아픔이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렇게 두려움이 생겨났다.
미리 걱정하면서 최대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아플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처음 본 듯이 사는 것은 나의 안정적인 일상에 너무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을 모를 수 없었다.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말이다.
그렇게 익숙함에 의지해서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을 다루고 이번 일, 이번 사람 또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너무 많은 기대나 설렘 없이 적당히, 약간의 틈만 열어둔 채 사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실망하는 것도, 적응하는 것도, 너무 많은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나간 빈자리가 너무 아파 내 중심을 흔들어 놓을까 두려워지는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더 이상 설레고 두근거리는 것이 아닌, 혹시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마주한 새로움들 보다 앞으로 내게 남겨진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산다는 것의 본질은 그러한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 그래서 때론 치명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을 그럼에도 마주하고 적응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할 때에야 도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그 많은 시간의 총체적인 결과들이 우리의 인생안으로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위험요소로 느껴지는 삶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삶의 민낯은 아닐 것이다. 분명 나와 다른 것들과의 만남에서 이질적인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여린 마음의 의지가 미지의 것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픈 기억들 때문에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흐름을 억지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런다 해도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들은 손틈 사이로 물살이 빠져나와 가야 하는 방향으로 흐르듯이 결국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막을 수없고, 내 기운이 세상으로 전달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나의 기준에서 피하고 싶은 흐름이라 해도 세상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하고 당연한 이치에 따른 것이라면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여리고 유약한 마음을 가진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복잡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조건에서 이 삶을 시작했고 그렇게 피하고 싶었든,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든 시간은 흐르고 경험이 쌓이며 완성해 나간다.
언젠가는 우리의 삶은 끝이 날 것이다. 완결의 날이 올 때까지 새로운 순간과의 만남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그동안 어떤 경험을 했든 그리고 그것이 어떤 흔적을 남겼든 상관없이 빈칸의 마음으로 새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두려웠지만 용기를 냈고, 여유가 없었지만 한 번 더 믿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유의미한 기쁨에 그간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는 것은 산 날이 많을수록 쉽지 않은 것 같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처럼 살기 힘든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두려움 위에 서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인생을 향해 마음을 여는 사람에게 그만한 행복을 줄 것이라 믿는다.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같지만 다른 것들이 보인다. 귀를 열고 들어보면 또 다른 것들이 들린다. 세상은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보고, 기꺼이 담으려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기쁨으로 응답하는 것 같다.
그래 그렇게 살으라고. 마음을 열고 새 마음으로, 쫒아오는 두려움에 가끔은 시야가 좁아져도 마음에 그늘이 생겨도 다시 털고 일어나 새 날의 빛을 담으라고.
해가 매일 새로 뜨듯이, 새 햇살을 받고 새 바람결을 느끼듯이 우리의 마음도 매 순간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