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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불 Dec 18. 2021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알아낼 수 없는 지금

바다의 대답

또 하나의 계절이 간다. 또 하나의 세월이 간다. 또 하나의 자릿수가 간다. 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은 가고,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은 온다. 시간이란 쓰면서도 참 달고, 달면서도 쓰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던 나의 소망들은 푸르른 잎새처럼 피어나다가도, 뜨거운 태양빛처럼 타들어가기도 하고, 익어가는 곡식처럼 숙성되다가도, 차디찬 입김처럼 날아간다. 지금껏 잘해왔다고 토닥이기에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텅 비어있다. 무엇이라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왔건만, 채웠던 것들은 온데간데없고 텅 비어있는 나 자신만 존재할 뿐이다. 그 공허함은 추위가 더해져 더 깊게 느껴진다.


그저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는 것뿐이고, 그저 하나의 세월이 지나가는 것뿐인데, 나이 하나 먹는다는 이유로, 년도가 바뀐다는 이유로 마음은 싱숭생숭해진다. 어수선한 마음과는 대조되어 세상은 연말을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울려 퍼진다.


이러한 마음을 달래주고자 찾은 곳은 다름 아닌 겨울바다. 추운데 웬 바다인가 싶다. 더위를 날리기 위해 찾는 여름 해수욕장과는 달리 고독을 위로하기 위해 겨울바다를 찾는다. 조용하나 잔잔히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는 고요하나 시끄러운 나의 내면을 알아주는 기분이다. 그러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포근하여 나를 토닥여주기까지 한다.



길과 방향을 잃어 겨울바다를 찾으러 온 수많은 존재. 그들은 바다에게 말을 건다.


"나, 괜찮을까?"


바다는 무언의 파도소리로 응답해준다.


파도소리에 건드려진 나의 마음은 바다에 기대기라도 하는 듯 이것저것 모두 쏟아낸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방황을 했고, 어떤 아픔을 겪었고, 지금은 어떤지.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파도는 아무 말 없이 나의 이야기들을 모두 흡수한 뒤 다시 나에게 고스란히 가져다준다. 그리곤 나에게만 들릴 수밖에 없는 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인다.


"괜찮아.


네 안에 있는 것을 알려줄게.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생명력, 과거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존재하는 성장,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반짝이는 꿈. 이 세 가지가 안내해 줄 거야"


그 말을 집에 가는 내내 한참 동안이나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



"이번 해에 삶이 너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어.

어찌 되었던 온 힘을 다해 이번 연도를 살아내었고, 크게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배운 것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도 네 안에 꿈들은 분명 있을 테니까.

그걸로 충분해.


그러니,

길을 잃고

방향이 잡히지 않더라도

괜찮아.


네가 걸어온 흔적들이

길을 만들어 줄 거고

방향을 잡아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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