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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21. 2018

할머니의 집

아파트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의 큰 품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동네 판자촌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개발  허가가  났지만  주민들과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수년간 개발이 지연되다 결국 15층짜리 여섯 동이 기다린 시간에 비해 턱 없이 빠른 속도로 완공돼 입주가 이뤄졌다.

 
그녀는 지역 토박이로  살아오신  할머니의 집을 상속 받아 지역조합원 자격으로 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처음에 아파트 입주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돈이 없으면 집을 팔고 떠나라는 조합원들의 멸시와 무언의 협박에 오기가 생겼지만, 정작 그녀는  이곳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할머니만 아니었으면  마을을 떠났을 것이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맞은 편  황량하고 삭막한 공사장을 쓸쓸하게  바라본다.  환경보호지로 묶였던 땅이 언제 허가가  났는지  재개발 현수막이 나풀대더니 곧이어 포크레인과 대형 덤프트럭이 드나들며 조용하던 동네를 소음에 시달리게 했다. 다시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서 굴삭기들은 큰 산에서 내려온 야트막한 산을 끄트머리부터 치고 깎고 부수고 파헤치며, 큰 산과의 연을 끊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동네가 주택정비로 말끔하게 바뀐지 얼마되지 않아 또 재개발에 들어가자  이사가길 거부하는 몇 집이 공사가 시작됐음에도 집을 떠나지 않고 위태로이 버티고 있었다. 먼지와 소음. 위협적인 공사 장비에도 꿈쩍 않던 그들이 결국 포기하고 이사를 가자 남은 집들마저 철거되기 시작했다. 부서지고 허물어진 집들에서 떨어져나간 잔재들이 무덤처럼 쌓여가고 그 위로 나무들이 시체처럼 쓰러졌다.


괴기하고 흉물스런 공사장을 바라보며 그녀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언젠가 그녀는 지인에게 할머니 젊은 시절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 하나를 낳고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노름으로 세 식구가 살던 집을  날리고 가출해 객지를 떠돌다 비명횡사했다. 할머니는 남편 시신을 거두면서 목놓아 울었다. 그동안의 설움을 다 토해버리고 어린 아들을 업고 떡장사도 하고  자판을 깔고 물건을 팔기도 하며 사는 날까지 생계를 위해 고단한 삶을 견뎠다.


할머니가 지금 살고 있는 산동네로 들어온 것은 아들이 학교를 가려면 정착할 곳이 필요해서였다. 처음엔 무허가로 살다가 아들이 성장하자 살고 있는 집을 불하 받았다. 온갖 허드렛일과 부업, 고물을 주워 파는 일 등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하루도 쉬지 않고 억척스레 모은 돈으로 장만한 집이었다.


아들이 결혼을 해서 예쁜 딸을 낳았다. 할머니는 고된 삶이지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을 시샘한 불행이 할머니를 덮쳤다. 사골에서  농산물을 싣고 돌아오던 부부의 작은 트럭을 살기를 띠고 달려오던  대형 땡크로리가  뒤에서 받았다. 젊은 부부는 어린 딸을 노모에게 남기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슬픈 기억을 뿌리치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럴수록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그녀의 뇌리에 낙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죄책감과 회한이 가슴을 휘저어놓을 때면 숨죽여 울곤 했다.


그녀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남들과 다름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가 아닌 할머니와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고 분했다. 친구들이 부모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할머니가 더 궁상맞고 구질구질해 보였다. 남들에겐 악착 같고 인색한 할머니가 그녀에겐 더할 수 없이 관대하고 후한 것이 싫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대학에 진학해 그곳에서 자취를 했다. 당시 그녀는 할머니 곁을 떠나려고만 했었다.


그녀가 할머니가 사는 곳으로 다시 왔을 때 힐머니는 연로해서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일주일에 두 번 지역복지센터에서 복지사가 방문해 할머니를 돌봐주고 있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에게 무심했던 과거가 시간이 흐를수록 후회의 부메랑이 돼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만 천착해 할머니의 고통은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대해 애써 외면해 왔다. 그녀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 그들의 몫까지 더해져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녀가 집을 떠난 후에도 할머니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녀에게  학비나 생활비도 꼬박꼬박 보냈다.  그녀가 알바로 충당할 수 있으니 학비만 보내달라 했지만 객지에서 고생하는 손녀가 안쓰러워 돈을 더 보내주곤 했다.


그녀가  할머니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은 안타깝게도 할머니 병이 악화되기 시작했을 때이다. 할머니는 집이 재개발될 거라는 소식을 접한 후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헛 것이 보이는지 생전 입도 뻥끗하지 않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곧 집으로 돌아올 테니 방을 깨끗이 치워놓으라고 그녀에게 당부하는 것이다.


그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몇 달 동안 정성을 다해 할머니를 간호하였다.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많이 할머니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때처럼 할머니가 소중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할머니도 간간이 정신이 들어오면 그녀를 보고 한없이 웃다가 또  눈물을 흘리셨다. 그녀는 할머니의 얼굴,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마음 깊이 새겼다. 이제 눈빛만으로도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 할머니의 정신은 여느 때보다 맑은 듯했다. 할머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 야야 우리 아가야,  부모 없이 얼마나 힘들었냐. 이제 이 할미가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손녀가 예쁘게 잘 자랐으니,  저 세상 가서 네 아비 만날 면목이 서겠네. 내 걱정 말아라. 너 땜시 좋았다.  그라고 이 집 말이다.  재개발하면 너 편하게 살아라. 난 괜찮다. 그러기 전에 내 눈 감아 좋구나. 이집 말이다. 내 희망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네 아비와 너의 체취가 배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그러니 걱정 말아라 난 괜찮다.'


할머니는 그날 밤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는 그녀 앞으로 꽤 많은 돈을 저축해 놓으셨다. 그녀는 그 돈과 집을 담보로 융자받아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그녀는 달력을 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어언 십년이 흘렀다. 매년 기일이 되면 그녀는 할머니 위패를 모신 절에 가서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온다. 할머니의 목숨과 같았던 집을 지키려고 했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흐르는 시간과 변하는 세상이다. 비록 할머니 집은 사라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할머니 삶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곳이며, 그녀 또한 전설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주변의 집들이  꿈틀대는 생명체로 느껴졌다. 집은 살고 있는 사람을 닮아가는 유기체 같았다. 수많은 사연과 희로애락을 품은 거대한 삶의 덩어리.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할머니가 왜 그토록 집에 집착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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