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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Mar 12. 2018

 고양이의 눈

01 마음의 눈

나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밤이 되면 내 눈은 살아 움직인다. 어떤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 집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슬금슬금, 꼬물꼬물, 꿈틀거리며 나타나는 벌레들의 세상이 된다.

사람들이 혐오하는 벌레지만 나는 웬만하면 작은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기절시킨 적은 많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 번은 몸이 편평하고 납작한 흑갈색의 바퀴벌레가 길고 가느다란 더듬이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싱크대 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집 딸이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벌레이다.

“잠깐 나 좀 볼까?”

“무엇 때문에 그러지?”

벌레가 경계하는 순간 광택 나는 몸뚱어리에 큰 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널 좀 잡으려고 하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퀴는 달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싱크대 위 선반으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나도 따라 움직였다. 앞발로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발톱을 내밀며 싱크대로 올라갔다. 앞발로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그것은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그러더니 날개를 펴고 훌쩍 천장으로 날아올라 들러붙었다. 이때, 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환히 켜졌다.

“아니 이게 무슨 난리야?”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고양이가 도대체 늦은 시간에 싱크대 위에 올라가서 뭐 하는 거야!”

“정말 못 살아, 그렇잖아도 음식에 고양이 털이 자꾸 들어가서 속상한데.”

나는 생선을 훔치다 들킨 고양이처럼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달아났다.


사람들은 어떤 현상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싱크대 위로 올라갔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올라간 사실만 보고 화를 낸다. 가족의 문제도 그렇다. 마음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늘 싸우고 서로를 원망한다. 갈등과 오해를 풀 수 있는 진실,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맹이를 보지 않고 귀신처럼 허망한 껍데기만 본다. 말과 행동 속에 감춰진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일어난 일만 해도 그렇다. 나는 해충을 잡으려 그런 행동을 했는데 오히려 나를 쫒아내다니.


나는 사람의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언어를 쓰고 그것을 너무 믿기 때문이다. 언어보다 중요한 눈빛, 표정, 호흡을 느끼지 못해서이다.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는 여자의 공허한 마음을 이해한다. 그녀도 나를 보며 위로 받는 걸 보면 말보다 교감이 더 큰 힘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밤이 깊어간다. 표면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어둠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은 오히려 더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왕성한 생명력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사랑한다. 사람들이 잠들 동안 나는 그것을 본다. 마치 초월적  존재를 보는 것처럼 내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둠 속에서 더 커지고 더욱 빛난다. 그래서 '고양이는 귀신을 본다.'는  속설이 생긴걸까?  방문이 열리면서 남자의 기척이 느껴졌다. '남자가 운동을 가는 걸 보니 어느 새 새벽이 됐나 보다.  이제 나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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