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 경 Mar 16. 2018

흔적

 

 민선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늦가을의 음산한 오후였다. 나는 거실에서 기우는 석양을 보며, 시를 읽고 있었다. 시에서 균형은 한 쪽이 다른 쪽을 위해 견디는 일이라고 말한다. 버티는 일이 다른 한 쪽을 위해서라지만 결국은 각자를 위하는 길임을 알고 있다. 시의 본질이 삶의 은유라면, 시의 옷을 입고 있는 삶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벨소리가 상념을 몰아냈다. 전화기를 들고  창가로 다가선다. 주택정비공사가 중지된 넓은 터에는 포클레인이 한 손을 땅에 박은 채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파인 구멍과 쌓인 훍산 옆으로 반 쯤 허물어진 집은 야생 고양이들의 숙소가 된지 오래다.  초라하고  헐벗은  집 앞에 운 좋게 살아남은 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웬일이니?”

“응, 우리 이번 모임, 저번에 말한 산 말이야, 그 산에 가는 걸로 했으면 해서 의견을 모으고 있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해서 말이야.”

“그래? 그럼 전부 다 갈 수 있대?”

“아니, 영진이와 나, 그리고 네가 간다면 우리 셋이라도 갔으면 해.”

“글쎄 나도 생각 좀 해 봐야…”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선은 다급히 말을 가로 막았다.

“윤경아, 네가 같이 갔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민선의 설악산 등반 제의는 정말 뜻밖이었다. 그녀를 비롯해 몇 명의 친구는 대학 졸업 후 10여 년 동안 정기적으로 만나며 모임을 가져오던 사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민선의 태도였다. 그녀는 평소 산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모임에서 종종 산악등반을 하곤 했는데, 근교에 있는 산으로 갈 때도 별로 내켜하지 않았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괴괴한 어둠과 침묵이 가라앉는 밤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어져 가로등이 켜지면 낮에는 없이 초라하고 을씨년스럽던 아파트 주변 풍경은 그로테스크한 빛을 띤다. 희미한 불빛에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흔들리고 있는 온갖 그림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마치 뭉크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쓰려져가는 폐가의 지붕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어둠 속에서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어쩐지 이번 등반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다음 날 민선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민선은 대학병원 수간호사로 있는데 우리가 약속한 다음 주 토요일에 중요한 수술 일정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 토요일에 가면 안 될까? 영진은 괜찮다고 하는데, 너한테는 왠지 미안해서, 이왕 가는 거 괜찮지?”

“사실, 민선,”

그 때 말했어야 했다. 난 갈 수 없다고, 아니 우리 가지 말자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 했다. 너의 목소리가 너무 들뜨고 기대에 차서, 실망 같은 것은 아예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은 너와 나 둘이서 설악산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영진이가 떠나기 전날 심한 설사에 시달려 함께 갈 수 없었던 것도,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운명이었던 것 같아.

 젊은 시절 올랐다가 늙어서 추억하기 좋은 산이 설악산이라 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 산을 올랐을까, 천개의 불상을 모아 놓은 것 같은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계속 이어져 있다는 천불동계곡, 우리는 그 곳으로 들어가기 전 비선대에 잠시 손을 담갔다. 물은 손이 시리도록 찼다.


“환자 한 명이 어제 죽었어.”

민선이 아무런 표정 없이 말을 툭 던졌다.

“무슨 병으로?”

“암.”

“암으로 죽는 사람이 참 많아.”

“누군가 그랬어. 암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인류의 부패한 영혼을 드러내는 은유라고.”

늦가을의 청명하고 차가운 대기 속에 웃음 짓던 그녀의 하얀 얼굴이 박제처럼 굳어진 채로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단풍의 절정을 지나서 그런지 사람들의 행렬이 평소보다 줄어든 11월 중순 토요일, 우리는 천불동계곡을 오르고 있었다. 가을의 막바지에 절정을 다하고 떨어지는 잎들로  우수에 젖은, 거친 산의 주름 속으로 파고드는 가을빛은 눈이 부시도록 투명하였다.


 해가지자 우리는 천불동계곡의 양폭산장에서 밤을 맞았다. 하늘의 별이 우리의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는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 세상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꾸 웃었다. 민선의 웃음소리는 유난히 맑고 높았다. 저 하늘의 별처럼.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잿빛으로 흐려져 있었다. 진눈깨비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하산하기로 하였다.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은 좀 가파르지만 중간에 온천이 있어, 그곳에서 산행의 피로를 풀고 서울로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민선이 이상한 말을 하였다. 이곳까지 왔으니, 또 언제 이곳에 올지 모르니 천불동계곡과 공룡능선자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희운각 대피소 바로 위 절벽이 있는데 그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가능하다는 말을 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나는 날씨도 좋지 않고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으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곳이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들어 민선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내려가기 아쉬워 그냥 하는 소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민선은 매우 우울한 표정을 짓더니 그만 시무룩해져서 말문을 닫아버렸다. 우리는 내려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씨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조금 기다렸다 날씨가 개이면 내려갈 걸’ 속으로 생각하며 간간이 안개 낀 설악의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백두대간의 주능선인 서북릉은 신비하리만치 장엄한 자태로 안개를 두르고 있었다.


 악몽과도 같고 꿈과도 같은  사건이 벌어진 것은 내가 이상한 체험을 한 것과 거의 동시였다. 조금씩 내리던 진눈개비가 바람과 안개에 싸여 더욱 거세기기 시작하더니 앞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눈이 되어 우리 앞길을 가로 막았다. 한 순간 길은 뭉클한 안개 속에 하앟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흰 생명체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 아득하고 서늘한 느낌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운명의 초월적 힘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존재의 커다란 손은 너무나 차갑 견고무엇이든 산산이 부셔버릴 것 같았다. 죽음 같은 두려움이 온 몸을 감싸는 순간 내 몸이 어딘가에 부딪쳐 튕겨나갔다.


 나는 너무나 놀라 앞서가는 친구의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말이 나오질 않았다. 목구멍에서는 이상한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런데 앞서가던 사람이 흘깃 돌아보았는데 친구의 모습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낯설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희미한 안개 속 그녀의 모습은 마치 분가루를 칠한 것처럼 너무나 하얗고 창백했다. 그녀는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두려움과 심한 갈증을 느꼈다. 육체적 고통에 정신이 몽롱해지려 할 때마다 그녀는 앞서서 기다리며 손짓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본능적인 힘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를 따라 정신없이 걸었다. 그리고 어떻게 내려 왔는지, 그 후의 기억은 통 나질 않는다.


 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옅어지면서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심한 한기를 느꼈다. 온 몸이 여기저기 아팠지만 왜 그런지 상황판단이 되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친구를 찾았다. 그때 한 무더기의 사람들과 구조요원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들것에 실려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옆을 보며 소리쳤다.


“민선이는? 내 친구는 어디 있어요?”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에 파묻혀 버린 그 물음의 답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구조원들은 민선의의 시신을 하산하던 반대 방향에서, 그러니까 다시 천불동으로 올라가는 계곡에서 발견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녀는 분명 내 앞에서 가고 있었다. 나에게 빨리 오라 손짓하며 창백하게 웃고 있었다. 몽롱했지만 그녀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희미한 안개 속 실루엣은 그녀의 윤곽, 체취, 색깔, 소리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뒤틀리고 포개지고 흘러가는 듯 했지만, 내가 비틀거려 그렇게 보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그 시각에 반대방향으로 올라갔다고? 왜? 죽어야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전혀 짐 가지 않는 어떤 의혹들을 떠올릴 때마다 인생이, 내가 그다지도 믿고 의지했던 신념들이 허상일지 모른다는 의혹에 시달린다. 이 기묘한 경험으로 나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세상에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으로 풀 수 없는 사실들이 더 많다는 것을, 상식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초월적 세계가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함께 한 친구의 흔적이며, 나의 생명을 구해준 그녀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