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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Oct 08. 2020

가을  상념

 

가을이 다시 찾아왔다. 시간에 업혀 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일상이 돼 버린 날들, 이미 많이 변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란 체념에도 여전히 그대로인 자연을 보면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숲의 나무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면 그 빛에 마을이 익어가는 듯했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골목에 즐비한 작은 집들은 나란히 붙어 마치 담소를 나누듯 정겨웠다. 해가 지면 작은 창문으로 새어 나온 따스한 불빛이 좁은 골목길을 비추었다. 고요하고 평온한 가을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꼈던, 오순도순 둘러앉은 작은 집 마당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대추알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던,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을을 닮은 갈색 일기장에 아름답고 행복했던 마음을 쏟아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모든 경험과 추억은 한동안 기억 속에 머물다 언젠가 사라진다. 하지만 붙잡고 싶은 기억도 자연스레 잊히게 되므로 좋은 느낌으로 남는다. 익숙하고 낯익은 공간이 개발과 편리라는 문명에 휩쓸려 기억의 뒤안길에 잠시 머물다 쓸쓸히 사라진다 해  잠시의 공허와 아쉬움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구수한 냄새가 흠씬 풍겼던 빈곤하지만 소박했던 삶의 정취가 차갑고 딱딱한 철근 콘크리트 벽들로 단절된 또 다른 삶의 모습으로 변할 뿐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서서히 다가오는 변화는 대처할 시간을 주기에  관용적이다.  그러나 너무도 급작스런 변화는 잔인하고 냉혹하다. 일상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사람과의 단절을 강요하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무엇을 시도할 수 없게 만든다. 언제든 불행이 전염될 수 있다는 의심이 자칫 마음속 섬을 만들어 고립을 자초하진 않을지 두렵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나로 인해 가족이 또 지인이 고통을 당하면 안 되기에, 가을 따라 깊어지는 상념에  가을은 왠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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