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갔다. 바람과 어둠이 화선지 같은 피부에 스며들자 서늘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빨라질수록 하루를 견뎠다는 안도감에 심한 피곤이 몰려왔다.
현간 문을 열고 들어서자 군침이 돌 만한 냄새와 훈훈한 공기가 나를 맞았다. 바깥공기와 다른 따스함, 붉은 조명 아래 놓인 익숙하고 정겨운 것들과 마주하니, 어떤 충만함이 몸에 붙어 있던 찬 기운을 녹여주는 듯했다.
집안을 가득 메운, 설렘과 기대로 마음을 들뜨게 만든 냄새의 정체는 남편표 콩나물국이다. 대구 몸통에서 떼어낸 머리와 다시마를 넣고 푹 끓인 육수에 양념을 털어낸 김치를 잘게 썰고, 통통한 콩나물을 푸짐하게 넣었다. 흔하고 특별할 것도 없는 재료로 만들었지만, 나에겐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고, 풍성했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이 목을 타고 흐를 때 느껴지는 진하고 깊은 맛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손색이 없다. 마치 이것을 먹기 위해 오늘을 고군분투한 것처럼. 적어도 나에겐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춥고 지친 마음을 이처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남편은 종종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 오이지나 고추, 깻잎 장아찌 같은 요리도 하는데, 정작 본인은 즐겨 먹지 않기에 향토 음식을 좋아하는 날 위해 만든 것이라 믿게 된다.
평소 남편은 드러내지 않고 일을 하는 편이고, 우린 서로 표현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라 남편의 공치사란 그저 음식을 바라보며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일이고, 나는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고마움을 대신하곤 했다.
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즐겼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재능도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요리에서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것이 인내와 정성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이 퇴직을 한 후 더 자주 요리를 하게 된 것은 시간적 여유가 생긴 탓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더 바빠진 내가 요리를 등한시한 탓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음식을 대할 때마다 염치없음에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마음이란 간사스러운 데가 있다. 처음엔 남편이 요리나 가사 일을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자주 반복될수록 익숙해졌고, 당연해졌고, 또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은 무엇이든 억지로 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남편의 정성과 사랑에 고마워하고, 노고에 감사한다. 표현은 하지 않지만 그도 알고 나도 안다. 비언어적인 것이 주는 깊고 진지한 대화와 공감, 그것은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의 특권일지 모른다. 눈빛, 표정만으로 전해지는 감정들이 모락모락 김 나는 뜨거운 콩나물국과 함께 피어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