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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n 13. 2021

보이는 것들 속에

 

 공원의 고요함은 일부러 꾸며진 듯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소리가 지척임에도 먼 곳처럼 아득했다. 몸은 한없이 노곤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졸았던 걸까? 눈을 떠보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짧은 순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공원은 작은 놀이터 수준으로 주택가 어느 골목 한편에 외따로이 서 있었다. 작은 그네 하나가 누군가 앉아주길 기다리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적극적으로 유혹하며 살짝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도 같았다. 오싹한 기운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벤치는 내가 앉은자리를 포함해 고작 네 개 정도 있었다. 가운데는 구정물이 얼룩져 내린 플라스틱 미끄럼틀과 그 옆에는 삭은 듯 보이는 밧줄에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매달려 있는 그네가 하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제멋대로 자란 야생풀들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뒤엉켜있었다. 피곤에 지친 몸이라도 오랫동안 방치돼 지저분하고 음침한 기운이 도는 이곳에 잠시라도 쉬어가기란 선뜻 내키지 않을 것 같았다. 고요와 침묵을 침범하는 자를 주시하고 있는 눈처럼 가로등이 공원을 비추고 있었다.


 공원은 분명 마을 속에 있었지만 외지인처럼 겉도는 느낌이었다. 마을은 허름해 보이는 빌라들과 주택들이 섞여 있었는데, 마치 재개발의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길, 혹은 오래되고 낡은 것을 고수하길 바라는 기대와 고집처럼 분분히 나눠져 있었다. 우연히 오게 된 장소에서 첫인상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일은 특별한 유희 중 하나였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조롭게 이어진 큰길 사이에 난 작은 골목은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큼 정겨웠다. 예전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낯선 마을을 헤매고 다닌 적이 종종 있었기에 돌발적 행동이 생경하지 않았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종이에 그림과 키워드로 마을에 대한 묘사를 대충 정리한 후 고개를 들자 어둠이 더한층 깊어졌다. 밤이 되자 공원이 술렁댔다. 권태와 건조로 무겁게 가라앉던 낮의 공원이 아니었다. 뭔지 모를 스릴과 공포의 기운이 바람처럼 일어났다. 수군대는 소리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몇 명의 청소년들이 담배를 꺼내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려 보였지만 학생이 아닌 것도 같았다. 빤히 쳐다보기가 두려웠다. ‘불량 청소년들 어르신에게 못할 행동’ 뉴스에서 자주 듣던 멘트가 귓가를 맴돌았다. 가방을 메고 공원을 빠져나오는데 뒤에서 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볼까 했지만 몸이 거부했다. 그래도 비굴해 보이기 싫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공원 입구라고 만든 아치형 쇠막대에 말라비틀어진 장미 넝쿨이 둘둘 감겨 있었다. 이 공원 처음에는 분명 신경을 써서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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