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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02. 2018

밤이 그리운 까닭

밤이 되면 어김없이 어둠이 찾아와  낯익은 사물들을 하나하나 지운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불빛들은 서로 앞다퉈 그것들을 다시 되살려 놓는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아쉬운 날은 하루의 피로를 풀 겸 친구나 지인을 만나러 작열하는 도시의 숲으로 들어간다. 그런 날이면  여지없이  선심 쓰듯 쏘아대는 과도한 불빛 세례를 받곤 한다.

  

밤 문화가 자리 잡은 지도 한참을 지났건만 아직도 내게는 12시를 넘겨 집으로 귀가하는 일이 동화 속 신데렐라 만큼이나 초조하다. 어두워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 활동하는 것이 당연시됐던 시절에 밤은 하루를 정리하고 심신을 충전하는 보약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밤의 묵직한 어둠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필사적으로 어둠을 몰아내려 여기저기 켜지는 현란한 불빛들은 사람들이 깨어있도록 부추긴다. 빛의 과잉은 사람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불면에 시달리게 한다. 어둠 속에서 평온하게 안식을 취하던 사람의 생체리듬이 빛의 공해로 무너지고 변형될수록 점점 숙면을  취하기 어렵게 됐다.


밤이 찾아오면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하늘을 예쁘게 수놓은 별들, 연인과 걸어가던 길을 낭만적으로 밝혀주던 달빛, 밤에 슬피 울던 소쩍새소리 등은 밤을 밤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밝은 인공 불빛으로 인해 별빛은 희미해지고 가로수는 병들고 야생동물들의 짝짓기는 힘들어졌다.


인공 불빛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병들게 한다. 생태계를 교란시켜 결국 우리 삶을 저해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인공 빛에 오랜 시간 노출돼 밤을 잊게 되면 태양 대신 불빛에 의존해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책상의 조명등 아래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니터를 보며 글을 쓸 때면 예전의 깜깜했던 밤을 그리워하면서도 이제 밝은 불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둠을 밝혀주는 조명은 밤에 일하는 사람들에겐 태양처럼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문명의 이기와 흉기의 양면성은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고 불필요한 조명을 끄고 빛을 절약한다면  도시에서도 밤하늘에 별빛을 좀 더 또렷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 나는 집안의 조명을 다 끄고 깊은 어둠 속에서 밤을 온전히 느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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