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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10. 2018

북한산, 특별한 만남

북한산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북한산과의 인연은 오래 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진입로도 좁아 여러모로 불편하였지만 큰 산이 에워싸고 있는 이곳의 맑은 공기와 고즈넉한 분위기가 단번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뒷산이 북한산 줄기라는 것을 알았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을 가곤 하였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여명 속에 듬직하게 서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산과 하되는 것을 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산은 항상 그곳에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올라갈 수 있었다. 산으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운동기구들과 주민들이 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작은 쉼터가 나온다. 처음에는 이곳이 산에서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당 높은 산에 혼자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후 좀 더 북한산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아이들과 같은 학급 친구의 엄마들과 친해지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에 다니게 되었다. 도시락도 챙기고 차와 과일 등도 준비해 가서 먹는 재미, 수다 떠는 재미에 한나절을 산에서 보내고 내려오곤 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가는 곳은 경사가 완만하여 비교적 힘이 안 드는 코스였다. 별생각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던 시간 속의 산은 나에게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한 편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러다 생활의 변화가 생기고 아이들 일로 바빠지면서 한참 산을 잊고 지냈다.


다시 산을 찾게 된 것은 공부를 시작하고 일을 갖는 과정에서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고혈압과 같은 가족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나면 무조건 등산장비를 챙겨 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산을 잘 아는 친한 언니와 함께 다녔다. 점점 먼 산등성을 지나 높은 봉우리에 오르게 되었고 북한산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북한산은 국립공원으로 서울과 도봉구 등 다섯 개 구와 경기도에 걸쳐 있는 제법 큰 산이었다. 북한산의 옛 이름은 三角山으로 주봉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봉우리가 마치 삼각뿔처럼 나란히 놓여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북한산을 오르는 행로도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지 그때 알게 되었다.

북한산의 수려함에 매료되어 혼자 산행하는 날이 많아졌다. 산을 내려오면 어느새 다시 가고 싶어졌다. 눈을 감으면 기암괴석과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진 산의 구석구석의 풍경이 떠오르고 나무를 흔드는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북한산과 열애에 빠진 것 같았다. 시간이 없어 산에 가지 못하는 날에는 뭔가 허전하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이런 산에 대한 나의 열정에 남편도 동참을 했다. 쉬는 날에는 남편과 함께 산에 올랐다. 남편과 같이 갈 때는 멀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보통은 진흥왕 순수비가 있던 비봉과  사모 바위, 청수동암문을 지나 태극기가 펄럭이는 문수봉까지 갔다 오지만 가끔은 백운대도 간다.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 하얀 구름이 머문다는 곳이다.

백운대는 우리 뒷산에서 넘어갈 수도 있는데 보통 사람이 가기에는 너무 멀고 힘이 든다. 남편은 산을 워낙 잘 알고 잘 타기 때문에 혼자서 새벽에 백운대까지 갔다가 오후 세 네 시경 예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갈 때는 북한산성까지 차를 타고 가서 주차하고 그곳에서 백운대까지 걸어 올라갔다.


북한산성 계곡 들머리에 서면 원효봉과 의상봉이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두 봉우리는 신라 불교 사에 우뚝한 두 스님의 사상과 생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스님은 서로를 바라보며 참선했다고 전해진다. 원효봉은 원융 무애한 삶을 살았던 원효를, 가파르게 치솟은 의상봉은 학승으로 빈틈없이 살았던 의상의 삶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산의 백미는 역시 백운대이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높은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잠겨 신비감을 더해주며 화강암의 숲이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암 봉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앞에 위치한 인수봉은 암벽을 타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오래 전 겨울 암벽을 타던 대학생들이 사고가 나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기도 한 곳이다.


백운대는 워낙 유명하고  진가가 잘 알려져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우리가 간 날도 일본, 중국인들이 매우 많았다. 올라가는 길이 무척 가파르고 힘이 들지만 정상에 도착하면 그만큼 더 짜릿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북한산을 자랑하자면 끝도 한도 없을 것 같다. 서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 북한산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는 북한산이 나에게만 특별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전부터 등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이곳으로 이사 오지 않았다면 아마 산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산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유난히 무서움이 많고 소심한 탓도 있었지만 기관지가 좋지 않아 숨이 찬 운동은 거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산이 옆에 있어 꾸준히 다닐 수 있었 산에 대한 두려운 마음도 서서히 없어졌다. 기관지도 좋아지고 생활하는데 자신과 의욕을 갖게 되었다. 건강에 자신이 생기면서 생활에 대한 의욕도 꿈에 대한 열정도 다시 샘솟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만으로충분히 북한산에 대한 나의 사랑과 특별함이 설명될 수 있겠지만 조금 덧붙이자면

산을 사랑하면서 내 삶의 태도가 변다는 사실이다. 삶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지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됐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지난 날을 반성하게 된다. 산 아래 펼쳐 작은 상을 보며  우주에 한 점 티끌도 안 되는 생에서 모든 욕심이란 부질없음을 느낀다.

지금은 더 이상 낭만과 열정에 사로잡혀 산을 오르지 않는다. 좀 더 세심한 눈으로 이제껏 모르고 지나친 소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모든 생명에 애정을 가지려 노력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라 각한다.

산에 다니면서 자연공부도 많이 한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피는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겉보기에는 많이 닮아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생강나무는 햇가지나 잎을 따서 손으로 비벼서 냄새를 맡아보면 진한 생강 냄새가 난다.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노란 동백이 생강나무 꽃을 가리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강나무를 중부지방에서는 동박 또는 동백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북한산을 통해 배워가는 것은 너무나 많다. 숨이 턱까지 차오는 고통으로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 그동안 품었던 욕심과 이기적인 마음을 흐르는 땀만큼 덜어내고 비야 한다는 을 깨닫게 된다. 소유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더 어렵고 가치가 있음을 알게됐다.


산에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이기심을 목도할 때가 있다. 그들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만큼 자연을 보살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먹고 버린 쓰레기는 여기저기 널려있고  나뭇가지나 꽃도 아무렇 않게 꺾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휴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패인 땅들로 산은 몸살을 앓는다. 건조한 요즘 산불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에게는 ‘인화물질 반입 불가’ 의 현수막과 팻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법도 벌금도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계에서도 북한산과 같이 웅장하고 수려한 산으로 둘러싸인 수도는 보기 힘들다. 북한산의 가치를 깨닫고 진정한 자부심을 느낀다면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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