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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Apr 28. 2023

아침형 인간이 되어간다는 것

가끔 흥미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천천히 따라가 볼 때가 있다. 드문드문 뒤를 밟아보는 몇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김진애 박사다. 꾸준히 공부하고, 글 쓰고 무엇보다 즐겁게 살아가는 에너지 넘치는 이 젊은 할머니를 보고 있자면 한 사람의 영역이 도대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경이롭다. 그녀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3년에 한 번씩  느슨한 주제를 바꿔가며 주제에 따라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는 신박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리고 새벽 4시쯤 일어나 공부를 한다고 하였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시간밖에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를 키워보기 전에는 그저 꿈같은 이야기였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새벽 4시는 나에게는 그저 어둠 속에 묻힌 시간이었고, 그 시간을 활용해야 할 유인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일반인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어느 에너지 넘치는 유명인의 존경스럽지만 기괴한 삶의 패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에게도 새벽 4시라는 시간이 생겼다. 아이가 첫 돌을 맞기까지 나에게는 일정한 수면 패턴이 없었다.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지라 부지런한 엄마들처럼 아이를 재우고 나와 집안을 정리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이의 수면 패턴에 따르기 급급한 나머지 씻지 못하고 여러모로 불편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가 한두 시만 되면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늦은 샤워를 하고 나서는 새벽 서너 시가 될 때까지 놀다가 다시 잠에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이 되면 항상 졸렸고, 몸에 여러 이상신호가 왔다. 안구건조증이 왔고, 피부 상태도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잠이 들더라도 깰 수 있도록 알람을 맞추어 놓고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남편에게 깨워달라고 부탁하며 잠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초저녁잠이 생각보다 깊게 드는 것인지 아이와 함께 잠이 든 지 30분 만에 남편이 깨워도 너무 졸려 일어나지 못했고, 다시 잠이 들었다. 잠을 이기려 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잠을 청하는 것이다. 


나의 수면패턴을 찾느라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아이는 성장했고, 엄마가 샤워를 하는 10분 정도는 참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때로는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하고, 때로는 아들에게 10분간의 양해를 구하면서 잘 준비를 완벽히 마친다.  침대에서 아이와 책을 읽고 노닥거리다 9시 반쯤 잠이 드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다. 잠이 깊이 들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오랜 시간 힘들게 했던가 보다. 이제는 누구보다 기분 좋게, 깊이 잠을 청한다. 가능하면 알람을 맞추지 않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노력하는데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확실하게 기상을 해야 할 때는 알람을 맞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날은 알람을 맞춘 시간보다 1-2분씩 빨리 깨버린다. 


고요한 새벽 4시는 온전히 나의 시간이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인 이상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자고,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운 삶의 패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물론 나도 아이 곁에서도 잠이 들지 않는 능력을 가졌더라면 즐거운 아침이 아닌,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테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은 아직 들쭉날쭉하다. 아쉽게도 밀린 일을 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써버릴 때도 있고, 오디오북과 전자책을 듣거나 읽을 때도 있고, 가벼운 체조를 할 때도 있다. 지금처럼 글을 쓸 때도 있고, 노래를 들을 때도 있다. 앞으로는 읽거나 쓰는데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보다 하루를 조금은 더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데 큰 즐거움을 느낀다. 허겁지겁 하루를 시작할 때보다 나에 대해서, 내 시간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면서 하루를 연다는 것, 그리고 아들이 일어났을 때 반갑게 안아줄 수 있다는 것, 조용히 앉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하나하나가 참 고마운 일이다. 


아직은 아침형 인간 초심자로서 권태기가 오기 전까지 이 즐거움은 계속될 것이다. 권태기가 온다고 해도 별다른 대안이 없는 나로서는 아침을 여유롭게 여는 일상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하는 일들을 바꿔가며 권태기를 극복해야지. 지금은 이 즐거움에 충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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