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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바다 Mar 15. 2022

이면

아이를 키우면서 뜻밖에 이면(裏面)을 생각한다. 며칠 전 아이 목욕을 시키다 헛웃음이 나는 일이 있었다. 요즘 고집이 부쩍 세어진 아이는 이제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 목욕을 하는 것도, 갑자기 목욕을 끝내는 것도 모두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가 목욕을 좋아하는 편이라 목욕시간은 대체로 즐겁고 순탄하다. 다만 날이 갈수록 목욕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날도 목욕을 즐겁게 하고 있었는데 목욕 시간이 너무 길어져 조바심이 났다. 물이 식어 뜨거운 물을 넣어주었는데 다시 물이 식을 때까지 나가고 싶어 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살살 꼬드겨 목욕통에서 안아 올렸더니 몸을 뻗대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왕 울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수건으로 후딱 몸을 닦고 온몸에 로션을 발랐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너무 서럽게 우는 것이다. 걱정이 되어 아이의 안색을 살폈더니 아이가 눈을 뜨지 못하고 입으로만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미처 옷을 입히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알몸으로 잠든 아이의 옷을 입히고 이부자리에 눕혔더니 세상 곤하게 잠이 들었다. 가끔은 갓 돌이 넘은 아기가 어린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정말 아기는 아기다. 귀여워서 너털웃음이 났다.      


사람들과의 사소한 대화에서도 이면을 읽는 일은 중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상대가 의중을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아 그 이면을 읽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요즘 의외로 아이를 대할 때에도 이면을 잘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다만 아이 자신도 모르는 이면을 읽어내야 하므로 성인과의 관계에서 쓰이는 능력과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한 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목욕시키던 날 아이가 눈을 비비기도 했고 하품을 했다. 미숙한 엄마인 나는 평소에도 아이가 목욕물에 들어가면 졸려했기 때문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아이가 얌전했다. 손 장구를 치지도 않고, 바가지를 가지고 놀지도 않았다. 그저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목욕을 수월하게 시킬 수 있어 편하다는 생각을 했지 이미 아이의 온몸은 수면상태로 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리고 아이를 안아 올렸을 때 만사가 귀찮아진 아이는 크게 울었고, 나는 그것이 목욕을 계속하겠다는 신호인 줄 알았다. 아이가 보내는 이면의 신호를 깡그리 잘못 읽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아이의 이면은 색깔이 선명하다. 잘 놀다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면 의외로 그 놀이가 싫증이 나는 경우보다는 잠이 오거나 배가 고프거나 무섭고 낯선 것을 발견했거나 아픈 경우가 빈번하다. 아이가 짜증을 내는 이유는 단순하므로 하나하나씩 도장깨기 하듯 욕구를 만족시키다 보면 울음을 멈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고집이 세어지는 것을 보니 자기만의 생각이 성큼성큼 자라고 있나 보다. 요즘은 용가리같은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자신도 처음 겪는 낯선 감정과 생각을 밖으로 잘 표출하지 못해서 이면의 영역에서 이름 없는 생각들이 응어리처럼 뭉쳐있다가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듯하다. 물론 이것도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마치 자연스럽게 레벨업을 하듯 1년 동안 아이의 생리적 욕구를 채워주면서 바쁜 한 해를 보냈더니 이제 다채로운 생각과 감정에 알맞은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정리하고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련만 부모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감정도 아닌 남의 감정을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일이 주어지다니.      


문득 요즘 육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비슷한 말만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반성해본다. 아이가 계란찜을 만져도 모래를 만져도 “아 느낌 참 이상하지” 란 말로 뭉뚱그렸던 바로 몇 시간 전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푹신푹신 매끈매끈 까끌까끌 울퉁불퉁 재밌고 신나는 형용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촉감들을 이면의 영역에 남겨뒀구나. 갑자기 아이의 이면에 이름을 얻지 못한 몽달귀신같은 수많은 촉감들과 감정들과 생각들이 우글우글거리고 있을 것만 같아 속이 시끄럽다.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섬세하고 꼭 맞는 이름으로 예쁘게 입혀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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