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볼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 채 2020년을 맞이한 지도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 작년 이맘때와 너무나 다르게 변화한 요즘의 일상이 감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건강하니 감사하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일상이 두렵다. 코로나로부터 맞이한 무기력 덕분에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 중심에서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있다.
철부지 어린 시절에는 도전이 두려운 적이 없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어려울 게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켜내야 하고,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아서 무턱대고 변화를 시도할 수가 없어졌다.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새로운 화장품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집안 인테리어를 바꾸는 정도로 기분전환을 하지만, 그만큼이 전부이다. 그 정도도 쉽지가 않다.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 한해 한해 해가 바뀔수록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진심으로 소통하는 관계는 없나 보다. 기대하다가 실망하다 보니 더 바라지도 기대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로 적당히 느슨해졌다. 새 인맥을 찾고 또 멀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지금 이 정도를 유지하는 정도만 노력 중이다. 이런 느슨한 연대가 다들 괜찮은데 나만 버거운 건지. 인간관계든 뭐든 그저 지켜내는 것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나를 억누르고 책임과 의무만 앞세우는 적당한 거리감, 이게 나의 진짜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누구일까.
도전이 두렵지 않았을 뿐, 어릴 때라고 힘들지 않던 건 아니었다. 힘겹고 추잡했던 지난날을 돌이키고 싶지 않던 적이 있었다. 연애나 친구 관계, 성적, 취업 같은 것에 집착하다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엔 전부 지워버리고 싶었다. 휴대전화 번호를 세 번이나 바꿨고, 개명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도 내 지난날의 일부일 뿐 나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는 것, 그때 그 사람도 나고 지금 이 모습도 나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가고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은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 욕심 내어봤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라는 게 생겨났고 더 많이 갖고 싶어 졌다. 2019년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관심사에 파고들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젠 좀 더 욕심을 내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자꾸만 치이고 놓치고 엇갈린다. 나 혼자만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시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걸 알고 있다고 지금 겪는 무기력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번 아웃되었다. 모두가 그렇듯 나도 지쳐버렸다. 그래도 정신 차리기 위해 걷고, 커피를 마시고, 식욕을 돋우는 음식을 챙겨 먹고, 청소를 하고, 명상을 한다. 가라앉은 나를 깨우기 위해 토닥인다. 그런다고 진짜 용기가 생기진 않지만 노력해본다. 하지만 근원적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자영업자이자 교육서비스업자로서 회복될만하면 도루묵이 되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버텨내는 게 맞는 건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정신을 붙잡고 중심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지만, 고민 많고 걱정 많은 내게 이 상황은 버겁기만 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를 실감하는 요즘, 글의 힘을 느낀다. 별 볼일 없는 내가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지금 걷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옳은 건지, 이어지는 길이 있긴 한 건지 모르지만, 돌아가더라도 다시 찾아 나올 수 있는 지도를 그리는 중이다. 이만큼 쌓인 고민거리를 털어내기 위해 오늘도 쓴다. 자꾸 쓰다 보면 구질구질한 속마음도 나오고 헛소리도 나오고, 그러다 운이 좋으면 해탈한 마음도 얻는다. 이것저것 끄집어내다 보면 머릿속이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허한 말보다는 단어 하나하나 온전히 곱씹을 수 있는 글자가 좋다.
많이 쓴다고 셰익스피어처럼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노자처럼 성인이 될 것 같지도 않지만, 복잡한 마음이 정돈되고 후련해진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지금은 나만을 위한 글쓰기가 전부이지만, 언젠가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역시 새로운 욕심 하나일 뿐일까.
올해 남은 시간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언지 알아내고 싶다. 자꾸 쓰다 보면 어두컴컴한 구렁텅이를 헤집고 나갈 길도 보이고 뭐라도 건질 수 있겠지. 그것이 인간관계인지 성공인지 돈인지 사랑인지 아직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그게 뭐든 지금 보다는 나은 상황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