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승님을 만날 복
두 번째 직장을 다니던 20대 중반 시절, 나의 사수이자 우리 팀 소재 실장님은 누가 봐도 멋진 분이셨다. 탤런트 오연수를 닮은 우아한 외모에 상냥함과 애교를 더하면 실장님과 비슷한 분위기가 된다. 소재 관련 업무는 처음이라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모든 것이 서툰 내게 소재 업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신 감사한 분이다. 유치원생 딸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으로 회사에서 늘 우아하고 센스 있는 옷차림에다가 여유와 위트가 가득한 말투로 우리 팀의 분위기 메이커셨다.
서양화과를 졸업한 나는 학창 시절부터 소재 디자인, 머천다이징 같은 패션 실무를 익히는 학원을 다니거나 의류 회사에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와서 사무 업무를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디자이너적 센스 같은 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실장님께서는 내게 '매주 시장 조사하기' 같은 숙제를 내주셨다. 우리 브랜드와 비슷한 타깃의 의류 매장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파악하는 목적의 시장 조사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흥미로웠지만 어렵기도 했다. 원하는 옷을 구입하러 아이쇼핑을 하는 것과 자료 조사로써의 쇼핑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쇼핑도 즐기지 않는 나는 주말마다 과제하듯 리포트 쓰는 게 괴로웠지만 대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알짜배기 정보를 빠르고 알차게 습득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디스플레이에 따라 진열된 옷들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유행하는 디자인 디테일이나 소재의 특징을 파악하는 일, 주력 상품과 보조 상품의 비율이나 배치 등을 조사하면서 이곳에서 생각보다 많은 그림자 노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업무를 보는 방법, 샘플 원단을 관리하는 방법, 업체를 핸들링하는 요령 등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셨다. 사회초년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벼운 정도의 앎에 그쳤지만, 실장님과 함께한 시간은 대체로 유익했다.
실장님께 소재 업무의 정수를 건네받았지만, 나의 회사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러 상황과 사정이 있었지만 그중 제일은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한 부담이었다. 디자이너로서 재능이 없기도 했고, 쌓여있는 재고를 활용하여 계획적인 기획과 영업으로 이익을 만들어내는 유통 구조를 알게 된 후 ‘왜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만들고 구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으로 이어졌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주신 감사한 분을 만났다.
“요즘 뭐하고 지내? 재미있는 일 하고 있는데 같이 하지 않을래?”
2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한 후,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친한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집에 틀어박혀 고민하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는 제안이었다. 대학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교수님께서 진행하시는 프로젝트인데 도와드리게 되었고, 같은 학교 선후배들이 모여 팀으로 같이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2학년 2학기 때 전공 필수 수업으로 만난 적이 있는 분이셨다. 선생님께서는 국가 지원 사업 공모에 채택되어 강원도 홍천, 경기도 강화, 안성, 광명 등 양질의 교육 기회가 적은 낙후 지역 아이들에게 양질의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나누어주고 계셨다. 그런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에 '교'자도 모르는 쌩초보지만, 눈치 하난 빠르니까 선생님과 선후배님들 사이에서 잡무나 심부름 같은 걸 하면서 조금씩 익혀나갔다.
"00이는 목소리 톤이 낮고, 말투가 편안해서 아이들과 수업하기 적당한 것 같다."
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교사를 꿈꾸게 되었다. 당시 퇴사로 인해 사회 부적응자라도 된 것 같은 고민에 빠져있었는데 '나도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라는 긍정의 힘으로 나의 가능성을 꿈꾸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전국 방방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특기적성 수업’처럼 공교육 기관에서 정규 미술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여러 곳에 교육 다니며 인연을 맺은 학부모님, 아이들과 함께 미술 캠프도 다녀왔다. 1박 2일, 2박 3일 동안 팀을 이루어 미션을 수행하고, 미술 활동을 했다. 때때로 공신력 있는 기관의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시각예술 영재 선발 도구’ 연구 프로젝트에 함께 하면서 경력과 능력치도 넓혔고,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시절 모든 경험은 내 능력치를 넘어서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선생님께서 따온 사업을 우리에게 공유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용되어있는 사이가 아닌데도 선생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용돈'을 주셨다. 사업비가 많지 않아서 급여가 적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받은 돈보다 훨씬 넘치는 에너지와 가능성을 선물 받았다.
선생님과 함께한 많은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넌 잘할 수 있어.'이다. 콕 집어서 그 말을 건네주신 건 아니지만, 함께하는 모든 순간 응원하고 지지해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생님은 나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을 사랑으로 대하셨다. 대나무처럼 한결같은 모습, 그것이 선생님께서 내게 알려주신 교육의 정수이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 덕분에 의미 있는 미술교육의 지향점에 대한 생각을 키울 수 있었고, 가장 재미있는 미술교육의 형태를 체험할 수 있었고, 공식적인 경력도 생겼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4~5년간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홀로서게 된지도 벌써 7년째이다. 함께했던 선후배님들은 모두 다른 직업으로 떠나갔고, 나만 그 언저리에 남아있다. 사교육 시장이라는 샛길로 빠져나왔지만, 선생님과 함께한 그 시간을 잊을 수 없기에 의미 있는 미술교육에 대한 고민을 잊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를 성장하게 한 스승님 덕분에 지금 내가 여기에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절 실장님처럼 우아하고 분명하게, 스승님처럼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지 못한다. 그때 그 시절 실장님의 나이는 40대 초중반이었고, 선생님은 40대 중반쯤.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많은 나이다. 서로 돈을 주고받으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가 아닌데도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좋은 사수가 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함께 일하는 후배 선생님에게 어떻게 관계 맺는 게 효과적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실수가 잦고 마음 삐죽이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버벅거리고 있는 나와 한 팀으로 일하던 그분들의 고충을 조금 알 것 같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법정스님의 말씀이 담긴 책 '좋은 말씀'(시공사, 2020)에서 스님은 소원 같은 원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좋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거 말고 함께 잘 사는 법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사수, 나의 은사님, 나의 스승님처럼 누군가에게 나누고 베풀면서 쓰임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싶다.
살아갈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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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