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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Feb 15. 2022

냉이야? 냉이야!

텃밭에서 냉이 파기 

  



  ♪♪♪~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요즘 들어 자꾸만 흥얼거리고 있다. 머리도 모르게 마음을 건너고 목을 타 넘어 입술을 열고 나온다. 기다림이 계절을 앞질러가는 것일까. 그건 아닌 모양이다. 추위만 탓하며, 어릴 적 동무는 다 어디로 갔냐며,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지 않아서이다. 여기저기서 매화 향기가 들려오고 있어서이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시절이니 이웃에게 들은 얘기는 아니다. 그럼 텔레비전이었나? 그럴 리가. 내게 텔레비전은 거실의 장식물일 뿐인데. 그렇다면! 대자연이 자연스럽게 불러내는 신호였구나. 



 백만 꽃봉오리 매화가 벌과 새와 향기와 바람과 해와 달과 별을 데려오는 봄 


   냉이를 찾아 나섰다. 오늘은 기필코 알아내리라. 대문을 열고 나가 담장 아래를 훑었다. 앞집의 울타리 쳐진 밭 언덕을 돌아다녔다. 1년 전 이사하여 텅 빈, 옆집의 풀밭 마당에도 들어갔다. 당산나무 옆의 논두렁도 둘렀다. 우리 집 텃밭은 마지막 코스로 색출 시도. 인터넷을 수시로 뒤져본다. 냉이를 꼭 닮은 지칭개 때문. 아무리 봐도 사진으로는 도무지 모르겠다. 지인에게 전화로 물으니, 파보고 뿌리의 냄새를 맡으란다. 쩝! 나는 꼬마숙녀 시절에 냉이 캐러도 안 다녔나? 쑥은 쉽게 캤는데 왜 냉이는 어렵지? 아니네. 지난봄에 둘째 아들을 데리고 뒷산에 쑥을 캐러 간 적 있는데 그 또한 어려웠다(딸이 없으니 둘째가 딸 노릇을 해준다. 신라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처럼 여자애들 놀이와 치장을 즐기는 건 당연히 아니다. 엄마를 잘 거들어준다는 뜻(❁´◡`❁)). 내가 아는 쑥과 비슷한 것들이 가지가지였다. 식용버섯을 흉내 내는 독버섯 같은 게 쑥에도 있을까 봐 겁이 났다. 조금이라도 모양과 향이 다른 건 버렸다. 그래도 두어 주먹은 가지고 왔다.     

  


   갑자기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한창 집짓기 중이던 이맘때쯤, 실내 공사를 하러 온 중년 여성이 텃밭에서 냉이를 한 바구니 캐갔다는 이야기. 동네를 돈 시간은 운동한 셈 치자. 그래, 텃밭에 집중. 가뭄이 들기도 했지만 텃밭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부지런한 남편이 잔디뿐 아니라 텃밭의 풀도 수시로 뽑았기 때문이리니.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텃밭 냉이가 진짜 맛이다. 풀밭에서 캔 냉이는 향이 거의 없다. 냉이 뿌리는 흰색, 지칭개 뿌리는 자주색. 홍매화가 첫 입을 열었다.   


   와아, 진짜다. 냉이와 비슷한 쪼그만 것들이 납작하게 바닥에 붙어있다. 돌아다니며 만난 것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가물어서 이파리의 푸른색은 찾을 길이 없다. 낙엽 같다. 일단은 파보자. 그런데 이게 뭐람. 호미 날이 휠 지경이다. 땅이 굳어서 뿌리도 끊어진다. 삽을 들었다. 어쨌건 좀 더 깊이, 뿌리가 다치지 않게. 겨우 하나를 파내어 냄새를 맡으니, 햐아~ 이런 향이었구나! 겨울이 추울수록 뿌리의 향이 강해진단다. 이번엔 제법 겨울다웠으니. 무실 매화의 고결하고 은은한 향까지는 아니지만 그 나름의 깊이로 기분 좋게 퍼진다. 이게 바로 제대로 찾은 냉이 향. 본능적인 느낌이다. 두 뿌리를 더 파고 나니 포기하고 싶다. 어쩌랴. PC 앞에 코 박고 있는 둘째를 불러냈다. 양말도 안 신고 슬리퍼를 끌고 나왔음에도, 남자답게 팍팍 삽질을 시작한다. 



   들고 나온 양푼이 너무 크다. 저녁에 된장국 끓일 만큼만 욕심내기로 했다. 이파리가 조금이라도 커 보이는 것들로 팠지만 대개가 어리다. 줄기가 뭉쳐있고 흙에서 꺼낸 것들이라 스무 번은 헹군 것 같다. 씻어놓고 보니 지칭개로 보이는 게 하나, 민들레나 엉겅퀴 같은 게 둘, 냉이인지 지칭개인지 모를 만큼 어린 게 둘이다. 일단 정리한 구별법으로는 냉이 잎은 연두색, 지칭개는 쑥색에 가깝다. 지칭개의 잎은 혹이 달린 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지칭개는 약용으로 쓰는데 쓴맛이 너무 강하다. 한 뿌리라도 요리에 섞이면 못 먹는다. 어떤 이의 표현에 의하면 혀가 마비될 정도라니!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건 버리라는 구별법 고수님의 충고에 따라 그들은 요리에서 아웃. 뿌리를 파보라는 지인에게 냉이 사진을 보내줬더니 박수를 짝짝 쳐준다. 진짜 토종 냉이라면서.     



가문 텃밭에서 삽으로 토종 냉이를 파냈다. 이젠 냉이와 지칭개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주부들이 들으면 실소를 머금을 일이지만 냉이된장국을 생애 처음으로 끓였다. 아닌가? 봄기운에 한두 번은 끓였으나 제맛이 안 나서 멀리했을 지도.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이 좋다. 맏이가 추석선물로 받아온 ㅇㅇ된장마을의 된장이 만들어낸 요술인가? 나와 달리 외할머니의 피를 직통으로 받았는지, 요리에 얼마큼의 재능을 발휘하는 둘째가 우와~ 감탄까지. 둘이서 한 냄비를 다 먹었다. 물론 토종 냉이가 아닌 마트 냉이였다면 불가능했을 거란 말은 필요치 않겠다.  

   


   설 즈음에 첫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나무에 벌들이 날아든다. 백만 꽃봉오리 가운데 서른세 송이가 활짝 피었다. 매화는 피고 있으나 이번 겨울은 춥고도 길다. 긴 겨울밤의 심심풀이로 나는 '구구소한도' 놀이를 하고 있다. 동지부터 9일마다 날씨가 조금씩 풀려서 9번째를 맞는 81일이 되면 봄이 오는 놀이. 여러 방식 중에서, 가지 하나에 꽃잎 9장의 매화를 9송이 그리며 색칠하는 놀이를 한다. 3월 중순경이면 우리의 봄날이 진짜로 올까? 오겠지? 마당에 나올 때마다 매화향을 깊이 들이마신다. 시를 쓴다고 하여 시인이라 말하면 참으로 곤란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매화향을 표현할 말을 한 단어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3년이 넘었다. 매화향 앞에선 시를 쓴다는 사실이 그저 그저 부끄럽다. 매화향을 맡기만 하겠는가? 펜을 내려놓겠는가? 누가 물으면 펜을 던져버릴 것 같다. 



된장만 넣고 끓인 토종 냉이된장국. 진정한 밥도둑이다. 


   내일은 가장 긴 호스를 끌어내 텃밭에 물을 단단히 주어야겠다. 온 식구가 모이는 날에 다시 실력 발휘를 해봐야지 않겠는가. 비가 좀 오시면 좋을 텐데. 비 소식이 이틀씩이나 들렸건만 무슨 까닭으로 당도하지 않는 걸까. 어디로 마중을 가면 만나게 되려나, 그리운 비님아. 텃밭에서 겨울을 난 홍매화가 첫 꽃망울을 오늘 터뜨렸다. 냉이가 더 자라면 냉이밥에 도전해 볼까. 냉이 부침개, 냉이무침, 냉이 겉절이... 많기도 하던데 에이, 참자. 콤콤한 냄새가 좀 나는 ㅇㅇ된장마을 된장으로 토종 냉이된장국을 끓이는 게 최고겠다.  동의보감에도 적혀 있단다. 냉잇국은 간에 피를 운반해주고 눈을 맑게 해 준다고. 그래, 귀한 토종 냉이 맛을 훼손하면 곤란하겠다. 두 번째도 토종 냉이된장국에 도전하는 거다, 으쌰!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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