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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Apr 10. 2022

꽃 따러 가세

오늘은 도화주를 담그자

 


  

   한 주 전의 작천정 벚나무엔 벚꽃송이와 사람이 어마무시하게 피었다. 오늘의 벚나무엔 어린 이파리들이 우후죽순. 꽃잎들은 낱낱으로 흩어지고 한데 모이며 갓길을 점령 중이다. 웃는 앞모습으로 왔다가 뒷모습을 남기는 사람처럼 누워 흔들리는 꽃잎들. 건너편의 작천정 계곡으로, 더 큰 버찌로, 누군가의 봄 앓이로 속속 스며들고 있다. 벚꽃송이처럼 산책객도 줄었지만 아기는 유모차에서 방글방글, 아이들은 롤러스케이트로 까르르, 친구들은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하하하, 연인은 꼭 잡은 손으로 빵긋빵긋, 가족은 하나 둘 셋 치즈 잇몸으로 왁자지껄 벚나무의 하오를 품는다. 잔디광장에선 버스킹 공연이 시끌벅적. 누구라도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장인 듯하다. 아주 천천히 벚꽃을 배웅하고, 트럭에서 파는 스테비아 토망고를 샀다. 이토록 다디단 토마토라니! 우리 집 앵두꽃도 다디단 열매 쪽으로 다 떠났다. 푸른 잎 시절이다.


시금치꽃이 피었다.



   이틀 전 아침엔 반쯤 남은 앵두꽃에 빗방울이 송알송알했다. 더는 기회가 없을 듯해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 곧 해가 나고. 해밝은 꽃잎들을 조심스레 땄다. 홍앵두꽃, 청앵두꽃, 홍장수매꽃, 백장수매꽃. 앵두꽃은 날개달기 과정을 완수한 단계였다. 손끝에 닿자마자 슝슝 공중부양. 한겨울말곤 수시로 꽃을 피우는 장수매는 꽃 세계의 전사들이 틀림없다. 텃밭의 복숭아꽃과 겨울초꽃도 땄다. 묘목을 심은 후 첫 대면인 복숭아꽃이 실하다. 꽃대가 오른 겨울초는 맛이 덜하지만 청계들에겐 기분 좋은 간식거리.

   시골살이 덕분에 과실나무의 해갈이를 알게 됐다. 지난해의 앵두나무는 한 줌의 열매만 내어줬는데 이번엔  꽃잔치를 벌였다. 꿀벌들도 덩달아 신났다. 온몸의 꽃가루 치장도 모자라 양다리에 꽃가루 통까지 매달았다. 꿀집은 어디에 숨겨뒀나. 부지런히 나르고 또 나르고. 꽃이 모두 열매로 익는다면 앵두팔이 소녀로 나서볼까. 열매로 익기 위해 긴 겨울을 기다린 봄 며칠 간의 목숨들. 한 주먹씩만 욕심냈다. 어차차, 담금주가 있어야지. 날짜를 보니 7일, 언양알프스장날. 식목일, 청명, 한식을 지나며 한껏 물올랐을 시장꽃밭으로 향했다.



언양알프스장날엔 할머니들의 파릇한 보따리전이 펼쳐진다.

   일부러 먼 곳에 차를 대고 읍내 길을 걸었다. 행인이 없을 때 마스크를 내리면 언양불고기 냄새가 꼬솜히 스몄다. 인도에 갖은 전이 펼쳐져 있다. 오천 원 옷전, 알록달록 사탕전, 옛날과자전, 도자기와 나무수저전, 고구마와 양파전, 딸기와 토마토전, 미나리와 오이와 달걀꾸러미전, 중닭들전, 전전전. 가장 많은 전은 할머니들이 펼친 보따리전이다. 이천 원은 한 움큼, 삼천 원은 두 움큼 정도겠다. 두릅, 당귀, 머위, 파, 고추, 방풍, 취나물, 쑥, 상추, 달래, 부추, 돌나물, 더덕, 미나리... 가지가지 봄이 빨간 대야에서 밥상을 고대하며 소복하다. 이천 원에 이 상추 떨이 좀 하소 손짓하는 할머니, 더덕껍질을 벗기며 삼천 원 삼천 원 노래하는 할머니, 만원을 받아 들고 거스름돈을 세는 할머니와 할머니들. 양복 입은 신사는 뭘 저렇게나 들었나. 보따리전 여기저기를 기웃대며 이 채소 저 채소를 산다. 손에 든 검정 봉지가 여럿이다. 할머니의 귀갓길 손수레가 가벼워지게 언양미나리 한 단을 사볼까. 앗, 휴대폰에 든 온라인 카드뿐이다, 이런 이런! 할머니, 죄송해요. 돈을 안 갖고 왔어요. 검정 봉지를 내밀던 할머니의 손이 무겁게 떨어진다. 차에 몇 천원은 있을 텐데 후딱 달려갈 거리도 아니고, 에효효. 죄지은 사람처럼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할머니들의 장날 저녁상엔 몇 장의 지폐가 봄나물처럼 돋을까.


그 많던 작천정 벚꽃이 푸른 이파리와 열매를 만나러 우수수 떠난다.

작천정벚꽃길은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라서 산책하기 좋은 곳.  


   낮술에 거나해진 중년이 각설이 엿장수의 리어카를 따라 돌며 장단을 맞춘다. 만두가게, 어묵가게, 왕호떡가게, 멍게 좌판, 오징어 좌판, 물미역 좌판, 김밥가게, 쇠고기국밥집, 반찬가게, 뻥튀기 좌판, 신발가게, 장판가게, 곰탕집, 족발가게, 이 가게 저 좌판을 지나 시장꽃집 구경 차례. 알프스봄꽃상이 울긋불긋 차려져 있다. 랜디, 비덴스, 노벨리아, 운간초, 석죽패랭이, 애니시다, 버베나, 캄파뉼라, 한련화, 시계국화... 낯선 이름이 오만가지다. 이 이쁜이들은 다 어디서 온 건가. 채소 모종도 갖가지. 곱슬아삭이, 장미상추, 샐러리, 조선호박, 청겨자, 잔대, 적치커리, 스테비아, 로메인,  미인고추, 다홍채, 곰취, 부지깽이, 미니양배추.... 어느 텃밭으로든 들어 식탁을 향기롭게 차릴 어린잎들. 코앞의 언양천 버들 바람을 불러 한들거린다. 지난 주말에 남편이 사 심은 여러 모종과 꽃들이 막 뿌리내리는 중이라 눈탐만 내고 돌아섰다. 카드 결제가 되는 액세서리점에서 4천 원짜리 머리핀을 사고,  아차차, 술 사러 나왔건만! 시장 안의 마트에 담금주를 사러 들어갔다가 또 아차차, 돌아 나왔다. 어찌 들고 가려고? 자주 이용하는 마트로 가는 수밖에는.  



   낮에 따둔 꽃들은 풀이 죽었다. 작년에 담근 술을 다른 용기에 따라 붓고 올봄의 꽃주를 담갔다. 3월 중순경에 담근 무실매화주와 백매화주가 잘 익어간다. 텃밭의 자두꽃과 살구꽃은 내 눈이 미치지 않은 틈에 봄바람이 모조리 따갔다. 꽃사과꽃, 배꽃, 보리수, 돌단풍이 피고 있으나 꽃술이 될지 모르겠다. 겨울초꽃에 이어 시금치꽃도 화들짝 피었다. 자연의 피고 짐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삼일만 멀어지면 몰라볼 정도다. 뭐든 모르면 검색. 겨울을 난 시금치는 꽃이 피어도 맛있단다. 다 거두니 두 바구니다. 꽃 핀 것들을 누구에게 줄 수도 없고. 그나저나 언제 고르고 삶아서 냉동하나. 저녁상의 주메뉴는 생굴에다 시금치 몇 줄기 넣어 끓인 굴국. 텃밭에서 딴 쌉쌀한 머위도 추가했다. 이것저것 차리고 보니 식탁 채소밭이다. 지난봄에 담근 동백꽃주를 열었다. 짙게 우러난 봄향과 식탁의 새 봄향에 부엌이 어질어질하다. 육고기 없는 밥상으로 아랫배도 설거지도 가벼워서 좋은 토요일 밤이다.          


도화주, 겨울초꽃주, 홍장수매꽃주, 백장수매꽃주, 홍앵도꽃주, 청앵도꽃주를 담갔다.

3월에 담근 무실매화주와 백매화주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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